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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 중독 Jul 04. 2017

캠핑카 유럽 여행 요약

캠핑카를 타고 55일 동안 유럽 어디를 어떻게 헤맸는지 정리해봅니다.

우리 가족은 2017년 4월 3일부터 5월 27일까지 55일 동안 유럽 9개 나라를 여행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영국의 25개 도시들을 때로는 여유롭게, 또 한편으로는 숨 가쁘게 달렸다. 여행하는 동안 일지 대신 열심히 기록한 가계부를 보니 총 7,000킬로 미터를 운전하고 다녔다. 보스니아, 벨기에, 네덜란드는 머물지는 못하고 슬쩍 바퀴만 올리고 지나갔다. 처음 생각으로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며칠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꼭 가고 싶었으나 여행 초반에 포기했다. 첫 여행이라 욕심이 과했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가까이 여행을 있는 방법은 없다.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안된다. 제도적으로 직장인이 달씩이나 놀도록 내버려두는 회사는, 최소한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달이나 여행을 있었던 내가 육아휴직 중인 덕분이다. 만약 아이들의 학교 문제가 아니었더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기간 여행을 했을 거다. 육아 휴직씩이나 있었던 상팔자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그냥 '영혼을 판 대가'라고 해두자.


돈은 거의 2,000만 원쯤 썼다. 이는 우리가 사는 남인도 띠루바난타푸람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간의 항공료와 캠핑카 예약 비용, 주유비, 캠핑장 사용료 등 여행 시 사용된 직간접적인 비용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수월한 여행을 위해 떠나기 전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이나, 아이들이 들르는 성당에서마다 소원이랍시고 하도 열심히 빌어서 사게 된 Nintendo Switch 게임기, 그리고 쉽지 않은 인도 생활을 견디기 위해 돌아오기 직전 구입한 식료품 비용 등 개인적인 쇼핑 금액은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2,000만 원은 순수하게 여행 비용이라고 보면 되겠다.


평범한 직장인에게 2,000만 원은 큰돈이다. 당연히 우리 가족에게도 부담스러운 액수다. 그런데 우리는 운이 좋았다. 7년 가까이 인도로 파견을 나와 주재원 비스무리하게 지낸 덕에 약간의 여윳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하면서 홀딱 털어먹긴 했지만... 그 7년 동안 무슨 개고생을 했는지도 나중에 얘기하자. 말하자면 엄청 길다. 개인적인 형편을 떠나서 아이 둘을 동반한 4인 가족이 두 달간 유럽 구석구석(?)을 누린 것을 감안하면 2,000만 원은 나름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믿고 싶다(?). 배낭 여행객의 경우 두 달 여행하면서 200만 원 정도 썼다는 글도 보긴 했는데, 이건 좀 극단적인 경우다. 합리적인 수준이려면 배낭여행도 최소 300~400만 원 정도는 필요하다. 밥값 낼 때마다 손을 바들바들 떨긴 했지만, 우린 제법 럭셔리하고 우아하게 여행을 즐겼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우리 가족이 쓴 2,000만 원보다 적은 돈으로 더 알차게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지출의 타당성을 직접 검증하고, 자신만의 계획을 세우는데 참조할 수 있도록 자세한 경비 내역을 다음에 공개하겠다. 그때 더 살펴 보기로 하자.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유럽과의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호주와 미국에서 2~3년 살았고, 이곳저곳 제법 출장을 다닌 나도 이상하게 유럽 쪽으로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뭉뚱그려서 흐릿하게 '유럽'을 알고만 있었지,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조차도 잘 몰랐다. 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하고, 관련 책을 들여다보면서도 아는 게 너무 없어서 애를 먹었다. 한마디로 뭘 모르는지도 몰라서 공부를 시작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나 할까? 당장 어디를 가고 어디를 건너뛸지를 선택하는 문제부터가 쉽지 않았다. 파리, 런던, 로마 정도를 빼곤 딱히 떠오르는 도시도 없었다. 결국 나중에는 세부적인 경로를 짜는 것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한국 사람이 유럽 모르는 게 딱히 창피한 일은 아니지 말은 하면서도, 사실 살짝 부끄럽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떠나는 사람도 잘 즐기고 온 여행이니, 약간의 사전 준비를 할 의지가 있는 분들이라면 우리가 즐긴 여행 이상으로 좋은 경험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여행을 시작하고 끝내는 도시와 시작일과 종료일만 정해놓고 떠났던 여행의 결과가 아래 지도에 담겨 있다.

55일 동안 유럽을 헤매고 다닌 루트 요약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가 사는 남인도 작은 마을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이에는 직항 항공편이 없다. 오만의 무스카트(Muscat)를 경유해서 가는 게 그나마 제일 빠른 방법인데, 경유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서 무지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프랑크푸르트로 시작점을 잡은 건 항공권이 제일 쌌기 때문이다. 위에서 전체 비용에 대해 잠시 언급했지만 여행에서 항공권과 캠핑카 렌트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 따라서 적절한 가격에 항공권을 구하는 게 경제적으로 여행을 하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이다. 우리는 석 달 전에 미리 예약을 한 덕분에 일인당 60만 원 중반 대에 왕복 항공권을 구할 수 있었다. 비슷한 가격으로 갈 수 있는 도시로는 프랑스 파리가 있었는데, 프랑스에서 캠핑카를 빌리는 비용이 독일에 비해 훨씬 비싸서 결국 프랑크푸르트로 결정했다. 캠핑카 렌트는 독일이 싸다. 그 차이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독일에 캠핑카를 만드는 회사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그 이유를 짐작해본다. 캠핑카 렌트는 독일에서 하고, 가능한 빌린 곳과 같은 도시에서 반납하는 게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캠핑카를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움직이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러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같은 도시에서 픽업하고 반납하는 게 좋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도시로 반납해야 하는 캠핑카를 하루에 1달러에 빌려주는 서비스도 있다. 우린 해당 사항 없으므로 패쓰!~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캠핑카를 받고 출발하는 순간에 우리 머리 속에는 막연하게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로 가자'는 계획이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계획 밖에 없었다. 매일 아침 차에 시동을 걸며 서로 묻곤 했다. "오늘은 어디로 가지?" 우린 이 정도로 무모했다. 원래 계획은 독일에서는 차만 픽업해서 일찍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거였는데, 결국 로텐부르크(Rothenburg), 뮌헨(München), 슈방가우(Schwangau) 등 가는 곳마다 넋을 잃고 노느라 독일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말았다. 덕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땅은 밟아 보지도 못했지만, 다시 여행을 간다고 해도 어디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만큼 독일에서 갔던 모든 도시가 좋았다.

독일 로텐부르크 시내

독일을 떠나 우리가 향한 곳은 체코였다. 가는 길에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에 잠시 들렀다가 체스키 크룸로프(Český Krumlov)로 올라갔다. 이름도 제대로 모른체 책 속에 담긴 멋진 오렌지색 지붕 사진에 끌려서 갔던 이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한국 단체 관광객들을 만났다. 여전히 중국이나 일본 관광객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 유럽 어디를 가도 한국 관광객과 마주치지 않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나만 모르는 사이에 다들 유럽 여행쯤 쉽게 하는 세상이 된 건가 하는 생각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프라하다. 유럽 3대 야경을 자랑한다는 프라하는 매력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프라하 성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 전경

프라하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오스트리아 땅을 밟았다. 빈(Wien)은 여러 가지로 재미가 가득한 도시였는데, 특히 오페라와 박물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페라 극장에서 하루, 미술사 박물관에서 하루, 자연사 박물관에서 또 하루를 홀딱 보냈다. 빈 다음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Budapest)다. 처음엔 너무 멀리 툭 떨어져 있어서 갈까 말까 많이 망설였는데, 안 갔으면 어쩔 뻔했냐는 말을 끝도 없이 되풀이하며 떠나왔다. 비가 오는 바람에 잘 즐기지 못했던 프라하 야경의 아쉬움도 여기서 다 풀었다.

부다페스트 성 이슈트반 대성당 앞에서

발라톤 호수 근처 티하니(Tihany)라는 작은 마을을 살짝 찍고 이번엔 크로아티아로 향했다. 크로아티아는 별다른 정보 없이 무작정 가게 됐는데, 아무래도 '꽃보다 누나'라는 TV 프로그램의 영향이 컸다. 프로그램을 보는 둥 마는 둥 했던 나와는 달리 아내에게 크로아티아는 'Must go'였다. 수도인 자그레브(Zagreb), 몇 시간을 걸으면서도 그 길이 끝나지 않길 바랬던 플리트비체(Plitvice) 공원, 바닷가의 작은 보석 자다르(Zadar), 푸르스름한 야경이 가슴에 콕 박힌 스플리트(Split), 그리고 중세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두브로브니크(Dubrovnik)까지. 우리는 숨은 보석을 발견한 듯한 즐거움에 폭 빠졌다.

크로아티아 자다르 씨 오르간(Sea Organ)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해변 거리 야경

두브로브니크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페리를 이용했다. 캠핑카를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경험은 그 자체로 신나는 모험이었다. 배가 도착한 바리(Bari)에서 우리는 로마(Roma)로 달렸다. 그리고 피렌체(Firenze)로, 다시 베네치아(Venezia)로 이어진 이탈리아 도시들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세 도시 밖에 들르지 못했지만 모든 도시가 볼거리와 즐길거리들로 가득한 종합 선물세트였다. 이번에 들르지 못한 도시들과 엮어서 이탈리아만 따로 한번 더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지금도 들 정도다.


이탈리아 다음은 스위스다. 스위스에서의 일정은 짧고 강렬했다.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마테호른을 보고야 말겠다는 집착을 불태웠던 체르마트(Zermatt)의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전망대와 감탄과 감동으로 범벅이 됐던 루체른(Luzern)의 필라투스(Pilatus) 산은 잊지 못할 풍광으로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엔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에서는 가보고 싶었던 도시가 여럿 있었는데, 시간을 다 써버린 탓에 다 포기하고 파리(Paris)로 갔다. 에펠탑을 직접 본 뻐근한 벅참, 개선문과 몽마르뜨 언덕 위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의 모습, 오르세와 루브르 박물관에서 느낀 전율과 분노, 파리 디즈니 랜드의 아기자기한 재미까지... 사람들이 왜 '파리!~ 파리!~'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영국의 런던(London)이다. 중학교 첫 영어 교과서 표지에 실렸던 빅벤(Big Ben)과 타워 브리지(Tower Bridge)를 본 것만으로도 영국을 다 본 듯한 감흥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 하이드 파크(Hyde Park), 그리고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까지...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아쉬움을 달래기에 런던은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렀던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에서 때맞춰 펼쳐진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멋진 무료 클래식 공연은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영국 타워 브리지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며

놓고 보니 다녀온 내 입장에선 기억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 감격스럽기까지 한데, 읽는 사람 입장에선 꽤 지루했을 듯 싶다. 55일간의 일정을 이렇게 구구절절 다 나열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55일이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기간 안에 정말 적지 않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캠핑카 여행이 아니었다면 초등학교 4학년, 1학년, 두 아이와 함께 이 일정을 다 소화할 수 있었을까? 결코 쉽지 않았을 거다. 잘 먹고, 충분히 쉬어가며 여행한 덕에 큰 탈 없이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운전하느라 개고생한 건 그냥 가장의 숙명쯤으로 해두자.


일정을 자세히 기술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대략적인 일정을 산정하는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런던, 파리, 로마, 프라하, 빈 등 크기도 크고 볼 것도 많은 도시라면 최소 2~3일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제대로 볼 수 있다. 반면 로텐부르크, 자다르, 체스키 크룸로프와 같은 도시들은 하루 혹은 반나절만에도 돌아보고 지나갈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실제로 도시를 돌아보는데 필요한 시간 외에도 꼭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이동시간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50여일 동안 거의 7,000미터를 운전하고 다녔는데, 이 시간과 노력이 일정에 포함되어야 한다. 유럽 여행에서 나라는 별 의미가 없다. 국경을 넘어가는 게 경기도에서 강원도 가는 것만큼이나 쉽기 때문이다. 대신 도시가 중요하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꼭 가보고 싶은 도시를 정해서 그 수에 2일 정도를 곱하고, 한국에서의 항공 왕복 시간을 더하면 대략 필요한 날짜를 알 수 있다. 


캠핑카 유럽 여행을 떠나기 위해 꼭 2달 휴가를 내야 하는 것도, 2,000만원을 모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여행 중에 마음에 드는 부분을 골라 짧게 떠나보는 건 어떨까? 캠핑카 유럽 여행, 진짜 할만하다.

스위스 루체른 캠핑장에서 만난 쌍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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