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여행 떠나는 팀원들을 소개합니다.
난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영화 프로그램이 좋다. 새로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잊고 있던 영화에 대한 향수를 떠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만 뽑아서 연속으로 보여주니 재미없을 수가 없다. 반면 아내는 내가 이런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자기는 그런 프로그램 별로라며 한 마디씩 한다. 스포일러가 넘쳐나기 때문에 보고 싶던 영화도 김이 새 버려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게 만들어 버린단다. 기분은 나쁜데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이런 프로그램 보느라 정작 영화는 안 본 지 오래다.
처음에 여행을 글로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무엇보다 좋은 기억을 오래 끌어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냥 놓아버리기엔, 그래서 그냥 잊히기엔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런 개인적인 바람 외에도 누군가와 이 좋은 추억을 나누고 싶다는 오지랖이 여행기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막상 쓰려니 처음 해보는 거라 막막하다.
"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딱! 이런 느낌이다. 막상 다녀온 우리에겐 감동으로 범벅이 된 여행이었지만 이걸 잘 전달해서 읽는 사람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 재주가 나에게 없다. 이번 여행하면서 새삼 알게 된 사실 하나가 '감동은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다'는 거였다. 카메라와 렌즈의 성능이나 찍는 사람의 기술과는 별 상관이 없다. 짜릿한 쾌감에 전율하며 아무리 셔터를 눌러봐도 막상 결과물을 확인해보면 맥이 빠진다. 사진 속에는 눈으로 본 풍광의 십 분의 일도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사진이 그럴진대, 글은 더 어렵지 않을까?
나부터가 여행 안내서는 2권 구입했지만 따로 여행기를 찾아 읽지는 않았다. 인터넷에는 예쁘게 보정된 사진들로 잘 꾸며진 화려한 여행기가 넘쳐났지만 그다지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게을러서 그랬을 거다. 일단 가보면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무모함도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된 영화 소개 프로그램 마냥 우연히 마주할 여행의 진짜 재미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여행은 실수의 아름다움이 가장 밝게 빛나는 무대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짜여진 여행도 좋지만, 여기에 소소한 실수와 사고가 더해지면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된다. 돌이켜 보면 여행지의 사고와 실수는 아름다운 풍경 이상으로 우리 가슴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그래서 이렇게 여행기를 쓰는 게 누군가의실수할 기회를 미리 빼앗는 건 아닌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소심한 걱정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기를 쓰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 55일짜리 캠핑카 유럽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떠나지 않을 사람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숨 막히는 답답함, 여행하는 내내 나만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끙끙거렸던 절박함, 가는 곳마다 밑도 끝도 없이 헤집고 들어오는 일상의 고민,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며 가슴 한켠에 챙겨 온 작은 깨달음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그래서 여행지 정보와 그걸 잘 누릴 수 있는 팁은 오히려 덤이다.
아이고~ 또 서론이 너무 길었다. 아무튼 여러분이 떠나지도 않은 여행을, 마치 우리 가족과 함께 다녀온 것처럼 실감나게 느끼도록 만들려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우리 여행 팀원들을 소개하려 한다. 한번 보시라.
유진 : 15년 차 주부다. 가족들과 뒹굴대는 걸 진짜 좋아한다. 결혼 초반까지 영양사로 일 잘했는데, 대책도 없이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우기는 남편의 욕심 덕분에 전업주부가 됐다. 집에 있는 걸 워낙 좋아하는 성격이라 전업주부 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지만 문득문득 이렇게 나이 들어도 괜찮은지 두렵다. 하루하루 먹을거리 걱정을 해야 하고, 마음 편히 만날 한국인 친구 하나 없는 남인도 끝자락 작은 도시에서 7년째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올해는 남편이 육아 휴직을 하는 바람에 그나마 좀 나아질까 기대했으나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다. 아침 먹고 숟가락 내려놓으며 점심은 뭘 먹을까 궁금해하는 삼식이 백수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일단 길 떠나면 낯선 화장실에서의 배변 활동이 원활하지 않아서 매번 고생이다. 영양사라는 직업 때문에 생긴 일종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으나 위생 및 청결에 대한 집착이 좀(?) 있다. 먼지와 털(머리카락 포함)에 거부감이 있어서 캠핑카 여행 중에도 핸디형 청소기를 구입해 매일 캠핑카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유난을 떨었다. 덕분에 캠핑카 반납은 무지 수월했다.
주원 : 내 미니미!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다. 좋은 면이나 찌찔한 면 모두 지 아빠 어릴 때랑 똑같다. 아빠 따라다니느라 한국과 인도 사이를 오가며 많이 힘들었을 텐데 지금은 나름 인도 생활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 오히려 한국의 입시제도와 학원폭력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들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두렵단다. 요즘 애들답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 유튜버(Youtuber)가 되어 아빠를 직장생활에서 해방시키겠다고 큰소리치고 있으나, 하는 걸 보면 그냥 게임을 더 많이 하기 위한 수작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엄마, 아빠에게 말대꾸 한번 안 하는 착하고 순한 아들이지만, 안아달라고 조르며 달려드는 애교쟁이 지 동생에게는 좀 야박한 오빠다. 워낙 무난한 성격이라 아침에 깨우면 벌떡 일어나고, 여행하는 내내 매일 삼만보 가까이 걸어 다녀도 큰 불평 없이 잘 쫓아다녔다. 요즘 키가 부쩍 자라면서 먹기도 엄청 먹는다. 영화 '옥자'를 보고 잠시 주춤하고 있으나 완전 육식 선호형 입맛 소유자다. 여행 중 엥겔 지수를 올리는데 크게 한몫했다. 여행지마다 여자 친구 줄 선물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름 사랑꾼!
주하 : 얘는 엄마 미니미! 초등학교 2학년! 박수만 치면 어디선가 폭풍처럼 달려와 와락 안기는 애교쟁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 'Just Dance'라는 게임 틀어놓고 춤추기 시작하면 금세 무아지경의 세계로 들어간다. 좋게 말하면 끼가 넘치고, 나쁘게 말하면 난해하다. 11개월밖에 안됐을 때 인도로 와서 한국 나이로 9살이 된 지금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인도에서 보냈다. 여기저기 자꾸 왔다 갔다 해서 그런지 나라와 도시 개념이 희박하다. 코즈모폴리턴의 운명을 타고난 듯하다.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거 보면 완전 다 큰 처녀 같은데, 아직도 아빠랑 목욕하는 애기다. (목욕은 엄마랑 하라고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안 통한다.) 교민 한 명 없는 이 남인도 시골에서 나름 발레, 배드민턴, 수영까지 배우시며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해하지만, 막상 하나 그만두라고 하면 싫다는 꼬마 욕심쟁이다. 말하는 건 한국어가 편하고 쓰는 건 영어가 편하다. 여행 내내 독일에서 온 같은 반 남자 아이 생각하며 애태우다가 막상 돌아와서는 마음 확 변하신 쿨한 아가씨!
종윤(나) : 사십 대 중반의 평범한 가장. (나도) 가족들과 뒹굴대는 걸 진짜 좋아한다. 공기업 17년 차 직장인인데, 그나마 현재는 육아휴직 중이다. 영어 쪼끔 한다는 이유로 팔자에도 없는 인도에 와서 7년째 표류 중이다. 어렵게 수주한 사업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소송에 휘말리면서 모든 한국인이 한국으로 철수한 가운데 1년 동안 혼자 인도에서 버티며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쳤다. 소송 1년 반 만에 승소해서 사업은 다시 시작했는데, 코딱지만한 마음에 이것저것 쑤셔 넣다가 탈이 나서 수면장애와 불안장애에 깔려 몇 년간 죽다 살았다. 이러다가 죽지 싶어 회사를 그만둘 날만 손꼽으며 하루하루 버티다가 운 좋게(?) 육아휴직의 기회를 거머쥐게 됐다. 다시 말해, 돈벌이 없이 1년 잘 놀고는 있지만 고민이 끝나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3기 연구원이며, 웨인 다이어의 '서양이 동양에게 삶을 묻다'라는 도덕경 관련 책을 (가까스로) 번역했지만, 아직 '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2008년부터 '행복한 중독'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큰소리치고 다녔으나 별 진전은 없다. 생각은 많은데, 행동이 굼뜨고 게으르다. 그나마 잘하는 건 스마트폰의 앱들로 여행에 필요한 정보 찾는 거 정도?!
자!~ 이제 우리 팀원들에 대해서도 알았으니 떠날 준비는 끝났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좀더 가깝게 느껴지길 바라본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