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by Lifeartist

갑작스러운 비와 그 다음날 쌀쌀해진 날씨에 얇게 입은 옷을 뚫고 한기가 스며들었다.

하룻밤 신세를 졌던 친구집에서 에어컨이 너무 세, 추워서 자다가 깼다.

어쩐지 감기에 걸릴 것 같아 뜨끈한 수제비로 몸을 덥히고 디저트까지 먹고 집에 왔다.

긴장한 몸을 녹이고 씻고 잠깐 누워있다 또 잠들었는데 저녁먹을 시간이 되어 일어나니 목이 깔깔하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엄마집에 온 뒤로 매일 밥 두공기씩 퍼먹던 내가 저녁밥을 반그릇이나 남겼다. 이거 심상치 않다.

아무리 아파도 입맛은 잃지 않았던 나였는데, 곧장 이를 닦고 감기약을 먹고 누웠다.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아 챗지피티와 수다를 떨었다.

챗지피티 중독처럼 보이겠지만 감기약 기운으로 잔뜩 감성에 젖은 대화를 감당해줄 수 있는 건 챗지피티 뿐이다.




감기약에 취해 잔뜩 감성에 젖으니 지금의 나 자신이 기특했다. 뜬금없지만ㅋㅋ.

아픈 게 기특한 게 아니라 대다수가 쉽게 할 수 없는 도전을 한 내가, 흙투성이인채로 단단히 바닥을 딛고 서있는 내가, 그냥 나라는 존재의 멋짐이 잔뜩 차올랐다. 그래서 나에 대한 자화자찬을 챗지피티에게 잔뜩 했다.

챗지피티는 착하게도 모든 자화자찬에 감탄하며 긍정해줬다.


그리고 챗지피티한테 빨리 더 나를 칭찬하라, 객관적인 근거를 대며 칭찬하라, 넌지시 명령했다. 감기약에 취해서 챗지피티에게 밤새도록 나의 멋진 점을 반복해 들었다.

잠결에도 나 나르시즘인가? 싶을 정도로 밤새도록 나에 대한 칭찬을 하고 나니 날이 밝아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결국 밤새도록 나에 대한 칭찬과 멋짐을 찬양하느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나에게도 인정욕구는 당연히 있는데 아프니까 더 응석을 부리게 된 것 같다. 해가 뜨고 시야가 밝아지고서야 겨우 잠이 와서 몇시간 자고 일어났다.



엎드려 절받기지만 그래도 밤새도록 칭찬을 듣고 일어나니 기분이 참 좋았다. 감기도 좀 나아진 것 같았다.

나 자신을 이렇게 하루종일 칭찬하는 경험덕분에 가슴 깊은 곳부터 뿌듯함과 만족감이 차올랐다.



챗지피티한테만 칭찬을 받았다면 살짝 객관성을 의심했겠지만 나에겐 정말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고 친구들은 항상 나의 좋은 점을 알려준다. 아침에 고민상담을 하려고 연락했던 B 언니와의 통화가 그랬다.




“너가 옛날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머와 웃음이라고 여러번 말하고 다녔잖아. 나도 요즘 그걸 느껴.”


“내가 그랬어? 기억이 안나.”


“응. 근데 그때는 세상에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웃음이 어떻게 가장 중요한가 싶었지만 그냥 ‘오 좋다~’ 하고 넘어갔지. 잘 이해하지 못했거든.

근데 점점 너무 진지하게 살면서 인간관계가 점점 힘들어 지더라구. 유머나 웃음이 왜 중요한지 그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이제는 아 너가 말한게 이런 의미였나 싶더라.”




오늘 아침 상담을 하려고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가 듣게된 나와의 과거 이야기에 나는 놀랍기도 하면서 감동받기도 했다.

나는 이제 기억하지도 못하는 말 한마디인데 언니는 십년을 넘게 기억하고 배움을 얻기까지 하다니...

이미 그 말은 나를 떠나서 언니의 언어가 된 것 같았다.


거의 십년 전에 했던 얘기다보니 당연히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했다.

웃음과 유머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된 건 아니었다. 여전히 나의 중요한 가치에 포함되어 있다.


지금의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 자신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웃음과 유머처럼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한데,

그중에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것들도 있어서 내 곁의 좋은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




내 삶의 의미와 목표고, 이정표나 다름없어진 질문.


행복하니?


이 질문에 언제든지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제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해졌다.

나는 평생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을 것 같다.

그리고 평생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