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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주 Nov 14. 2024

사랑은 기억을 타고

큰 딸 학교 상담을 마치고 와서

“어머니, 지안이가 세상을 보는 눈이 참 선해요. 교실 어디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하면 지안이 주변이더라고요. 점심시간에도 웃고 떠드느라 밥을 못 먹어서 좀 염려되긴 하지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닮은 걸까요?”    

 

 그을쎄요. 그건 저라기 보다는,



 따뜻한 심성, 시시콜콜한 웃음거리, 순진무구한 창으로 세상을 보는, 그래서 매일 한 바가지의 잔소리를 퍼부어도 흥얼흥얼 본인의 콧노래로 세상 모든 소음을 차단해버리는 단 한 사람. 



 단번에 떠오르는 지안이 외할머니. 아, 우리 애가 나의 엄마를 닮았구나.      






 모두가 자리를 비운 고요한 집, 홀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신문을 느리게 넘기면서도 시종일관 흥미로워 보이던 엄마의 옆모습. 하교 후 문을 열면 ‘왔니.’ 하는 인사처럼 퍼지던 헤이즐넛 커피 향. 한달음에 달려 나와 반겨주지는 않았지만 슬쩍 고개를 들어 안경 너머 짓는 눈맞춤으로 충분하던 어린 시절, 그래봐야 중학생 무렵. 학교가 끝나면 아주 멀리서부터 찹쌀떡 장수처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엄-마. 어엄—마 큰소리로 외치며 위풍당당 집으로 향하곤 했다. 사춘기가 다 무어냐 동네방네 엄마를 외쳐대는 딸 때문에 엄마는 1층에 살면서도 커튼 한번 제대로 치지 못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밖에서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걸 감수하며 반강제 오픈 마인드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혼자 고요히 있는 시간을 누구보다 즐기는 사람이었는데 망아지 같은 나는 그런 엄마의 취향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어쩌다 집에 가는 방향이 맞아 이야기라도 좀 하며 걸을라치면 금새 꼬리를 흔들며 죄 우리 집에 가자고 줄줄이 사탕을 꿰어 들어오곤 했다.


 "너네 엄마한테 안 물어봐도 돼?"

 "응, 괜찮아."


  떡볶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 어쩌면 피자를 시켜주시려나 친구들의 동그란 눈에 별빛이 반짝 스칠 때 은근 의기양양 우쭐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혹 너네집이 좀 살아서 자랑하려는 심보 아니었냐 의심한다면 아니, 그럴 수가 없는게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지극히 평범했고 뭐 하나 그럴듯한 가구가 있거나 내 방이 넓은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세상물정에 어두워 그런 걸 알지도 못할 때였다. 


 그저 엄마가 평소와 다름없이 예상 가능한 모습으로 집 어딘가에 있을테고, 누구에게나 친절할 거라는 것. 그리고 뭔가 맛있는 걸 내어주리라는 믿음이 ‘거봐!’ 하는 확신으로 바뀌는 그 순간이 짜릿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내가 뽐내고 싶었던 건 거기에 있을 나의 엄마였다.






 뭐야, 웬 자랑질이야 라고 생각하셨다면 안심하셔라. 지금은 나 역시 배 아프도록 부러운 사람이 뉘 집 자식 공부 엄청 잘하더라는 사람도, 한 탕 크게 벌었다는 부자도 아닌, 친정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사람이니까. 다만, 내가 다시 두 딸을 키우며 그 아이들에게서 비춰 보이는 저 해맑음과 충만한 사랑만은 내 엄마의 그것이 고스란히 나를 통하여 내 아이에게 흘러들었음을 부정할 도리가 없다. 나이 든 부모란, 특히나 엄마란, 얼마나 쉽지 않은 존재이고 가슴 뻐근하게 복잡한 관계인가.      



 엄마가 손을 잡아줘야 겨우 징검다리를 건너던 소녀가 엄마 손을 놓고 겅중겅중 뛰게 되고, 이제는 계단 내려오는 엄마의 손을 되려 힘주어 떠받치게 되는. 당연하게 걸어온 그 수많은 날 동안 우리의 관계도 여기저기 나사가 헐거워지고, 어영부영 그녀가 또 다른 나인 듯 어쩔 땐 아주 타인인 듯 끊임없이 애정은 끓었다 식어 빠졌다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실히 감사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이제는 팍팍해진 딸내미가 마흔 줄이 되어도 토끼풀 꽃을 보면 싱긋 내 손가락을 당신 무릎에 얹어두고 반지를 맺어주는 사람인 것, 아름다운 한 줄 노랫말에 여전히 눈시울 붉히는 사람인 것, 딱딱하다 푹신하다 가리지 않고 내 옆에 언제든 털썩 드러누워 자기 허벅지에 내 다리 한쪽 척 올려놓고는 시답잖은 농담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밤새 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그런 것들.    

  

 아이가 쪼그려 앉아 낙엽을 주울 때, 가만히 그 옆에 30년 전의 우리를 그려 본다. 손 끝 꺼메지도록 낙엽과 은행잎을 줍던 나와 어디선가 비닐봉다리를 구해와 차곡차곡 담던 엄마의 젊은 손을. 지금처럼 다리가 휘지도, 허리가 굽지도 않은 젊은 엄마. 야단칠 힘이 남아있고 자식 눈치를 보지 않던 강하고 믿음직한 엄마가 꼭 지금의 나와 같은 표정으로 아이를, 나를 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속을 내가 다 알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따뜻하게 엄마아- 불러 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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