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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혁 Aug 03. 2024

신도시의 탄생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 르페브르의 공간의 생산


1. 신도시의 탄생


    ‘상전벽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되듯, 세상이 몰라보게 확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보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게 있을까?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의 현재 모습과 과거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다. 논과 과수원이 즐비하던 시골 촌구석 강남은 서울 GRDP(지역 내 총생산)의 16.5% 정도를 차지하는 서울 경제력 1위 자치구가 되었고, 버려진 쪽방촌이었던 목동은 서울의 대표 학군지로 변했으며, 오랫동안 농업용 미개발지로 남아있던 마곡은 기업들이 모인 업무지구로 바뀌었다.


목동의 과거와 현재


    이를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가 있다. 바로 신도시(new town)이다. 신도시는 말 그대로 ‘새로운 도시’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도시가 아니라 특정 기능을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개념상 공업, 교육, 행정, 관광, 주거 기능 등 다양한 유형의 신도시가 있지만, 왜인지 우리는 일산이나 분당처럼 국가가 나서서 주택을 빠르게 때려 짓는 수도권 신도시 감성에 익숙하다. 그만큼 수도권 신도시가 줬던 임팩트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응팔에도 나온 신도시 개발 계획 발표 (tvN 응답하라 1988)


    이러한 신도시의 시작은 일산, 분당, 평촌, 중동, 산본 5개의 1기 신도시였다. 1기 신도시는 우리나라 도시계획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도시개발 사업이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치솟은 집값을 잡기 위해 대선 공약으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인 주택 200만 호 공급을 약속하였다. 그 일환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군인 출신 특유의 추진력으로 1989년부터 수도권 5개 지역에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 30만 호를 공급하였다.  


노태우 대통령의 1기 신도시 (연합뉴스, 2022. 08. 19.)


    1기 신도시의 특징에는 정부 주도의 도시계획으로 대규모 택지 개발이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다수의 국내 토건업체들이 달려들어 불과 5~6년 만에 초고속으로 미개발지를 새로운 도시공간으로 탄생시켰다는 점이 있다. 1기 신도시의 탄생은 서울의 집값을 크게 떨어뜨려 수도권의 공간구조를 변화시켰다. 또한 그동안 단독주택 위주의 주거문화가 대단지 아파트, 각종 편의시설, 소비공간 등 중산층 친화적인 주거문화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어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신도시 개발 방식은 일정 기간 동안 집값 상승을 억제하고, 건설 경기를 활성화하며, 주택 공급으로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1기 신도시의 맛이 꽤 좋았는지 노무현 정부 때 집값이 또 스멀스멀 상승하자 2기 신도시를 개발하였고, 역시 집값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한 3기 신도시 개발도 현재진행 중이다.      


수도권 신도시 현황 (연합뉴스, 2019. 05. 07.)


    이렇게 하루아침에 미개발지를 신도시로 개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후죽순 탄생하는 신도시 개발의 원리는 무엇일까? 오늘은 공간을 연구한 프랑스 사회학자로부터 신도시를 보는 렌즈를 빌려오도록 하자.




2. 르페브르의 공간의 생산


    오늘의 사회학자는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이다. 르페브르는 포드주의식 대량 생산양식이 정착되고 도심이 자본주의 체제에 맞춰 구조화되던 1960년대 프랑스의 변화를 목도한 사회학자이다. 이렇게 상전벽해하는 도시 환경에서 르페브르는 공간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 가에 관심을 가졌고, 공간 역시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배층의 기획에 의해 상품처럼 만들어진다는 ‘공간생산론’을 제시하였다.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공간의 생산(The Production of Space)’에는 이러한 그의 공간에 대한 논의가 잘 담겨 있다.


앙리 르페브르와 공간 사회학의 근간을 이룬 그의 저작 '공간의 생산'


    사실 이전까지 공간은 우리의 세계관에서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던 개념은 아니었다. 인문·사회과학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진보와 발전에 대해 수많은 논의가 오고 가는 동안 공간은 그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전까지 공간은 물리적이고 객체적인 개념으로 ‘이미 주어진 것’이라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르페브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마르크스주의를 공간에 적용하여 공간을 자본과 권력에 의해 생산되고 이용되는 ‘사회적 생산물’로 정의하였다.    

    르페브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의 생산과정을 세 가지 갈래로 해석하였다. 먼저 공간 재현(representations of space)이다. 공간 재현은 그 사회 지배층의 사상, 즉 이데올로기에 따라 추상화된 공간 생산하는 방식이다. 추상공간은 권력의 공간으로서 사물과 기호로 구성된 형식적이고 계량화된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의 추상화는 지배층의 의도에 따라 도시계획가, 기술관료 등이 공간을 구획하고 배열하는 과정을 거쳐, 공간이 내재하고 있던 다양성과 역사적인 발생 기원 등을 획일화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 권력은 이러한 공간의 추상화를 통해 비교와 교환이 가능해진 공간을 토지, 부동산 등의 상품으로 변환하여 사고팔아 자본을 순환한다. 사용함으로써 가치가 있는 공간이 교환함으로써 가치가 있는 상품스러운 공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여러분이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살았던 집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여러분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편안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단순하게 매기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추억의 집도 부동산 시장에서는 2차원 평면적인 지도 위에서 공시지가, 주변 환경, 시세로 가격이 쉽게 결정된다. 공간의 절대적인 가치가 무시되고 자본주의의 논리에 맞게 상품처럼 가치가 표준화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순한 도시의 도면(국토교통부)과 매물 정보(연합뉴스)로 추상화된 분당신도시


    두 번째는 공간적 실천(spatial practices)이다. 공간은 우리가 오감으로 지각하고 일상을 보내면서 생산된다. 공간적 실천을 통해 건축환경, 노점상, 레스토랑, 거리 등 물질적인 도시의 생활무대가 구체화된다. 공원을 떠올려 보자. 공원은 도심 속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생산된 공공공간이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산책을 하고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우리는 공원에서 산책하고 휴식을 취할 때 100% 제멋대로의 자율성을 가지고 행동하는가? 아니다. 도시계획가나 조경학자, 혹은 지자체 관료가 기획한 산책로를 따라서 산책하고, 그들이 특정한 기준에 따라 배치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즉, 공간적 실천은 앞서 공간 재현 과정에서 기획된 공간이 현실 공간에 실현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형성한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공원에서의 공간적 실천 (아시아 경제)

     

    세 번째는 재현 공간(spaces of representation)이다. 재현 공간은 경험되는 공간으로 주관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이다. 재현 공간은 공간에서의 주관적인 경험, 기억, 감정 등으로 이미지와 상징을 형성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배층이 기획한 공간에 공감하기도 하고 혹은 저항하기도 한다. 상상력에 기반한 재현공간을 통해 우리는 공간을 저마다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대안적인 공간을 제안하기도 한다. 도심 속에서 파쿠르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그 누구도 도심 속의 건물을 타고, 난간에서 점프하며, 계단을 뛰어오르라고 만들지 앉았다. 그렇지만 파쿠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상상력으로 도시를 놀이터로 이용하면서 공간 기획자들의 의도를 따르지 않는다. 그들의 도시 경험은 도시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는다.


도시를 놀이터로 이해하는 파쿠르 (노컷뉴스)

     

    르페브르에 따르면 재현 공간은 공간 재현과 불화를 일으킬 수 있고, 공간적 실천은 재현 공간과 공간 재현을 절충하기도 하는 등 이 세 갈래의 공간 개념은 서로 상호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과정을 르페브르는 공간에 대한 삼항 변증법(trialectics of space)이라고 불렀다. 문과생들은 대충 알 텐데, 변증법이란 서로 다른 두 주장의 대립(정-반) 속에서 새로운 진리(합)를 찾는 과정이다. 즉, 본래 변증법은 항이 '정-반' 두 개다. 르페브르는 공간 속에서 공간 재현, 재현 공간, 공간적 실천 이 세 항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공간을 생산한다고 보았다.       


르페브르의 공간에 대한 삼항 변증법


    광화문 광장을 떠올려 보자. 광화문 광장은 본래 국가의 발전을 상징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국민적 화합을 의도한 공간 재현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와 달리 광화문 광장은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인 만큼 권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재현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반대되는 광화문 광장의 역할은 공간적 실천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을 구성한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을 바라보며 민족적인 소속감을 느끼기도 하고, 시위에 참여해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세 갈래의 공간 개념이 상호작용하면서 총체적인 광화문 광장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양한 공간적 의미를 가진 광화문 광장


    이러한 시각에서 공간의 생산은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공간이 어떻게 기획되고, 어떻게 경험되는지에 따라 우리의 일상적 공간이용 방식이나 활동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지역 일자리를 고려하지 않고 아파트만 때려 짓는 도시 개발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출퇴근 길을 지치게 만들고, 편리한 자동차 이용을 증대시켜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르페브르의 공간생산론의 핵심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삼항 변증법을 통해 지배층의 공간 기획, 즉 공간 재현으로 추상화된 공간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여, 권력과 자본에 의해 감추어진 공간적 모순을 일상 속에서 밝혀내는 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특성상, 특유의 용어 사용과 난해한 개념 정리로 인해 이론이 쉽게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이제 김 씨의 고향인 일산신도시를 르페브르의 공간생산론을 적용하여 분석해 보자!       




3. 일산신도시의 탄생     


    다른 신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일산신도시는 국가, 지방정부인 고양군(현재 고양시), 토건기업, 도시계획가 등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산된 공간이다. 김 씨가 나고 자란 일산은 원래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짓던 한가로운 농촌 마을이었다. 이후 625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들도 국경 근처 일산에 자리를 잡았고, 집이 강제 철거를 당하거나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주변 사람들이 모여 일산 곳곳에 소규모 주거지를 형성하였다.        


현재 일산신도시의 주엽동과 백석동의 옛 모습 (일산신도시 30년사)


    이렇게 한가롭고 평화롭던 일산은 어떠한 계기로 상전벽해를 경험하는데, 바로 노태우 정부의 신도시 개발 계획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막대한 돈이 풀리자 물가가 상승하고 부동산 투기가 횡횡해지면서 집값도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었다. 특히, 서울의 경우 1988년 한 해에만 집값이 20% 상승하여 서민들의 주거 문제가 대두되며 노태우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전 중동 건설사업 이후에 할 일이 없어진 토건기업들의 잉여 노동력 문제로 국내 건설 경기 부양과 자본 순환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때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바로 서민들의 주거 문제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여 정권 지지를 도모하고, 토건기업에게 일거리를 줄 수 있는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는 신도시 개발이었다.     


분당과 일산을 비롯한 신도시 개발 계획을 보도한 1989년 4월 28일 자 조선일보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그럼 왜 하필이면 신도시 구상에 일산이 포함되었을까? 일산이 처음부터 신도시 개발 계획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분당신도시를 개발하던 정부는 수도권 개발의 한강 이북과 한강 이남 불균형에 대한 비판을 우려하여 뒤늦게 한강 이남 지역의 부지를 고려하게 되었다. 이때 노태우 대통령이 군인 시절 복무한 지역이라 잘 알고 있던 일산이 분당신도시의 상대지역으로 급하게 채택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린벨트로 지정되어 있었던 분당과 달리 일산에는 농업에 종사하던 원주민들이 있었다. 일산 원주민들은 본인들의 생활터전을 지키기 위해 거세게 저항하였다. 그 과정에서 몇몇 주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도의 강력한 신도시 개발 계획은 결국 농촌 마을 일산을 신도시 설계 도면 위로 올렸고, 추상공간으로 변화시켰다. 르페브르식으로 보면 정권과 토건기업, 즉 권력과 자본에 의한 도시계획으로 일산이 공간 재현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1989년 일산신도시 반대 시위 (고양신문)


    어찌저찌 1990년에 첫 삽을 뜬 일산신도시 개발은 빠르게 진행되어 1992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었고, 1995년에 개발사업을 마무리하였다. 농촌이었던 일산에는 총 6만 9천 호의 주택이 공급되었는데 대부분이 중산층 선호하던 대규모 아파트 단지 형태였다. 이를 위해 동부, 건영, 대우, 현대, 금호, 롯데, 태영, 우성, 쌍용, 동아, 한신공영, 청구 등 토건기업이 참여하여 성공적으로 당시의 잉여노동력 문제를 해결하고 주택을 분양하여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쾌적한 공원, 신도시의 생활 편의시설, 마트와 백화점은 중산층의 마음을 얻어 가족 단위의 고학력·전문직 직장인들을 유입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산신도시 개발 계획에 빼곡한 토건기업들


    이러한 중산층 친화적인 도시 분위기로 한 때 일산은 '천당아래 분당'에 맞서는 '천하제일 일산'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천하제일 일산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자족용지의 무분별한 용도 변경 때문이었다. 자족성은 모든 도시에 필요하다. 도시 스스로가 자족할 수 없으면 타 도시에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일산은 본래 계획 단계에서 통일, 외교,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도시기능을 도입하여 자족성을 갖추도록 기획되었다. 그러나 지방정부, 즉 고양시는 일산신도시 건설 이후, 자족시설을 위한 토지의 용도를 무분별하게 변경하여 건설사 및 유통 대기업에 매각하였고, 기업들은 이를 분양하고 상업활동을 하며 자본을 축적하였다. 이에 따라 일산신도시 공간은 아파트, 오피스텔, 대형마트 등 주거 및 상업시설 위주로 형성되었다. MBC 일산 제작센터는 시설 건립 당시에 통신촬영시설 및 관련시설 상당 부분을 오피스텔에 할애하였다. 지금은 파주로 간 출판단지도 원래 일산신도시에 조성되었어야 했지만 대신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가 들어왔다. 일산에 있는 국내 최대 컨벤션센터인 킨텍스 인근에도 킨텍스의 기능을 지원할 수 있는 업무, 관광 시설이 들어왔어야 하나,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업시설로 가득 차 있다.


아파트,  오피스텔, 상업시설 위주로 조성된 일산신도시 공간


    이러한 일산신도시 공간은 일산 주민들 특유의 단순한 일상생활을 형성하였다. 일산신도시 주민들은 지천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널려 있는 반면, 일할 곳은 없고 소비할 것만 많은 일산신도시 공간에 길들여졌다. 대단지 아파트에서 나와 서울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 하루를 보내고 다시 대단지 아파트로 돌아오는 삶,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 대형마트에서 장보고, 쇼핑하고 가족들과 외식하며 시간을 보내는 삶이 일산신도시의 일상생활을 대표한다. 베드타운(bed town)에서의 공간적 실천인 것이다.     

    이러한 공간 경험은 주민들의 일산에 대한 저마다 여러 가지 주관적인 이미지를 형성했는데, 일산 하면 떠오르는 ‘노잼 도시’, ‘은퇴해서 살기 좋은 도시’, ‘애 키우기 좋은 도시’, ‘살기는 좋은데 떠나고 싶은 도시’ 등등이 일산의 재현 공간인 셈이다. 일산 주민들은 재현 공간을 통해 정부의 기획에 따라 권력과 자본으로 탄생한 신도시의 공간적 모순을 인지하고 있다.

    정부의 공간 재현에 따라 일산의 원주민은 떠나고 새로운 주민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권력과 자본에 따라 생산된 도시는 자족성 있는 쾌적한 중산층 도시가 아니라 아파트와 소비공간만 즐비해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특별한 이벤트는 없는 베드타운이 되었다. 보통 도시의 주인을 시민이라고 하던데, 지금 일산의 모습은 일산 주민들이 바라던 공간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일산신도시의 주인은 정말 시민이었을까 의문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가 우리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생산되고, 그에 따라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일산신도시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하자 있는 생산품이었던 것이 아닐까?




4. 공간 생산의 미래         


    자본주의 시대인 지금, 권력과 자본에 의해 일산뿐만 아니라 수많은 추상공간이 생산되고 있다. 정치가 혼란할 때마다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인지 대규모 택지 개발과 주택 공급이 발표된다. 건설경기가 어려울 때도 대출과 규제를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펼친다.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새롭게 계획되는 택지 개발과 재건축으로 공간이 지닌 이전의 기억은 제거되고 콘크리트로 우뚝 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선다.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의 공간 기획에 따라 공간의 가치는 그저 도면과 기호로 치환되어 버린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도시계획은 지배층에 의해 자본주의를 더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공간이 가진 절대적인 특성들을 계량하고 등질화시키는 도시의 추상공간화는 이제 우리의 인식 체계를 지배하며 우리 삶으로까지 깊이 침투하였다. 우리는 신도시가 계획될 때 표면적으로는 지역의 특성과 장소적 의미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관심은 투자 가치가 얼마나 있을지, 그리고 과연 제2의 강남이 될 수 있을지에 있다.       


제2의 강남과 판교가 궁금한 우리들


    이 와중에 과거에 생산됐던 공간도 권력과 자본의 흐름에 따라 거듭 재생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30여 년 전 신도시로 탄생한 일산도 이제 노후도시 취급이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라면 재건축, 재개발을 하는 것이 맞겠지만, 안전진단을 면제하면서까지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을 통해 공간을 재생산하려고 한다. 일산을 비롯한 전국의 108곳, 215만 가구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 의해 재건축이 가능해졌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대상 지역 (경향신문)


    과연 누가 이득을 볼까? 이 질문의 답은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에 달려 있다. 우리가 바라는 도시는 생산 없이 소비만 하는 재미없고 깨끗한 베드타운일까, 아니면 사람들로 늘 활력 넘치고 매일매일 축제 같은 이벤트가 벌여지는 역동적인 도시일까? 실제 도시에서 일상을 보내는 시민들의 필요와 상관없이 공간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르페브르는 외친다. 도시는 시민의 것이고, 우리에겐 누구나 도시 공간을 그 나름대로 향유할 수 있는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있다!  


르페브르가 외친 구호, '도시에 대한 권리'





앙리 르페브르 (1901 – 1991)


    르페브르는 1901년 프랑스 랑드에서 태어났다. 파리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였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르페브르는 1930년에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나, 스탈린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공산당에서 쫓겨났다. 이후 르페브르는 스트라스부르 대학교를 거쳐 낭테르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다. 낭테르 대학에서 그가 가르친 걸출한 제자 중 한 명이 다음에 다룰 장 보드리야르이다.     

    르페브르는 그의 생애에 걸쳐 프랑스의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를 직접 목격하였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도시와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되었다. 르페브르는 이 시대가 공간을 통해 지배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이행되어 간다는 현실을 통찰하였고, 그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마르크스이론을 공간에 적용한 공간생산론으로 계급혁명의 시대를 넘어 도시·공간 혁명의 시대를 열었다. 르페브르가 1968년에 집필한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는 그가 가르치던 낭테르 대학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어 자본주의 권력으로부터 도시를 되찾기 위한 프랑스 68 혁명(Protests of 1968)의 불씨를 제공하였다.     

    모호한 저술 방식과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대로 개념화하지 않아서였을까? 사후 그의 공간생산론은 사회학계에서 철 지난 마르크스주의의 한 부분으로 잊혀져 갔다. 그러던 중 오히려 지리학계에서 르페브르의 이론이 재해석되면서 르페브르는 공간이론의 선구자로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최근까지 영미권을 중심으로 사회학, 지리학, 도시계획학계에서 ‘르페브르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유엔에서도 ‘도시에 대한 권리’를 중요한 의제로 정하고 관련 정책을 개발하고 있어 그의 영향력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연구와 이론 덕분에 우리는 2차원 도면에 갇혀 있던 공간을 마침내 일상생활의 무대에서 3차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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