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거리의 풍경

거리의 눈

by 김신혁
Gemini_Generated_Image_pnwzkmpnwzkmpnwz.png


작품명: 밤거리의 풍경

제작 시기: 활기찬 도시의 밤

재료: 거리를 걷는 사람들, 거리를 바라보는 건물들, 거리의 눈

설명: 안전하고 질서 있는 도시의 밤거리를 각자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 위에서 함께 만들어내는 하나의 풍경으로 표현했다.



만약 늦은 밤, 누군가가 여러분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1) 지하철역 근처나 번화가 쪽으로 뛰어간다.

2) 몸을 숨기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공사 현장으로 들어간다.


당연히 망설임 없이 첫 번째를 고르시겠죠? 이유는 명확합니다. 사람들이 많고, 불이 켜져 있으며, 여러 사람의 시선이 닿는 곳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서 이처럼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보이는 곳’을 선택하죠. 반대로 영화 속 범죄 장면을 떠올려 보면, 사건은 주로 공사 현장 같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벌어집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범죄를 가능하게 만들죠.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공간입니다. 거리 위에서 우리는 대체로 서로를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도시에 살면서 우리는 거리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길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발걸음을 늦추게 되고, 누군가 쓰러져 있으면 되돌아보고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이러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덕분에 낯선 사람이 가득한 도시도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지금 저희 앞에 있는 <밤거리의 풍경>는 바로 이 장면을 포착합니다. 거리 위에는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그 무질서 속에서 하나의 질서가 형성되는 풍경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제목처럼 마치 무대 위에서 각기 다른 동작을 수행하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발레 공연의 한 장면 같기도 합니다.



도시의 시선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설에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제게 대가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Could you keep an eye on my bag?”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가방을 봐달라는 부탁이었죠.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둔 채로 자리를 비우는 게 그렇게 낯설지 않은 우리 민족답게 처음에는 이런 요청이 ‘참 유별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곧 알게 되었죠. 한 순간의 방심이 곧 분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요. 알고 싶지 않았지만요...

왜 어떤 공간에서는 물건이 잘 사라지고, 어떤 공간에서는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면, 카페의 휴대폰이나 공원 벤치에 놓인 가방, 그리고 동네 마트 외부에 진열된 물건들은 잘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진짜 희한하게도 유독 자전거는 거의 공공재처럼 쉽게 사라집니다. 대부분의 경우, 물건이 없어지지 않는 장소는 사람이 많거나 CCTV가 눈에 띄는 곳입니다. 반면에 자전거는 보통 밤이 되면 인적이 드문 거치대에 홀로 남겨지죠. 누군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순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mania-done-1615369144_c0SAbI3N_1d7574b8c6d30fe8f.jpg 엄복동의 나라 (출처: 2soom_toon)


상당히 경험적이고 직관적이긴 합니다만, 도시의 범죄 통계도 어느 정도 시선의 중요성을 뒷받침합니다. 2024년 경찰청의 <범죄발생장소> 통계를 보면, 범죄는 안전할 거라고 여겨지는 아파트(120,716건) 보다 보도와 골목길 같은 통행로(75,257 건)에서 덜 발생했습니다. 왠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직접 마주치며 갈등이 생기고 범죄가 많이 일어날 것 같은 거리가 오히려 범죄발생 건수가 적은 것입니다. 밤이면 고요해지는 아파트보다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이 꾸준히 오가고, 서로를 바라보는 공간이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도대체 그 시선이 뭐길래 무질서하게 느껴지는 거리 위에서 질서와 안전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일까요?


거리의 눈


이 질문에 인상적인 답변을 제시한 사람은 바로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1916~2006)입니다. 혹시 바로 앞에서 <공원에서의 휴식>을 감상하면서 뉴욕의 도시계획가 로버트 모제스를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제이콥스는 당시 오래된 공동체를 파괴하여 재개발하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데 앞장선 모제스와 대척점에 선 사람이었습니다. 정규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1950년대부터 독립적인 연구와 활동으로 오늘날 도시계획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제이콥스는 도시를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정의했는데요. 도시에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렇기에 외견상 도시는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녀는 그 해답을 ‘거리의 눈(Eyes on the Street)’에서 찾았습니다. 거리의 눈은 ‘복잡하게 이용되는 거리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선들의 연속’을 의미합니다. 출근하는 사람, 장사하는 상인, 등교하는 학생, 산책 나온 주민들 등 각자의 목적은 다르지만, 이들이 거리를 함께 이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시선이 범죄를 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효과를 내는 현상을 설명하죠.


screenshot-2025-08-04-120131_1754292462006.png


제이콥스가 보기에 진정으로 안전한 도시는 조용하고 비어 있는 곳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는 가운데서도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그녀는 3가지 조건을 제시하는데요.

첫째,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가 구분되어서 사람들이 주시해야 할 곳이 명확할 것. 둘째, 건물들이 거리를 향해 있어 거리의 눈이 커버하는 영역이 넓을 것. 셋째,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활발히 오고 가며 거리가 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례도 소개하는데요. 1958년에 크리스마스 행사를 위해서 뉴욕의 워싱턴 하우스(Washington House)라는 공공주택단지에 크리스마스트리 세 그루를 설치한 적이 있습니다. 제일 큰 트리는 단지 내부에 두었고, 나머지 두 개는 단지 외곽 활기찬 거리의 모퉁이에 놓았습니다. 이 중에서 도난당한 트리가 있는데, 어디에 설치된 트리였을까요? 바로 가장 안전하게 두었다고 생각한 단지 내부의 트리였습니다. 이 트리를 지켜보는 거리의 눈이 부족했던 것이죠.

물론 도시의 안전은 상당 부분 경찰력과 제도로 유지되고 있지만, 제이콥스는 그 외에도 매일 거리를 이용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지는 질서와 안전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거리의 눈과 도시 속 발레


그런데 근대 도시계획은 제이콥스가 강조하던 거리의 눈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오늘날 도시계획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용도지역제는 도시를 업무지구, 상업지구, 주거지구 등으로 명확히 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의도 같은 업무지구에 가면, 퇴근 시간 이후에 도시가 텅텅 비어 버리죠. 이와 더불어, 자동차 중심적으로 발전한 도시의 구조는 대로로 구성되어 왔습니다. 자동차가 이동하기에는 효율적이긴 하겠습니다만, 교차되는 가로 없이 긴 대로를 걷는 동안, 사람들의 마주침과 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벤트가 줄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시간에 따라 거리의 눈이 사라지고, 거리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이 생기게 되었죠.

제이콥스는 이런 도시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능의 혼합과 작은 블록을 강조했습니다. 우선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로 다른 목적으로 늘 도시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주거, 업무, 교육, 상업이 적절하게 한 데 섞여야 하루 종일 살아 움직이는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로보다 소로와 교차로가 도시를 촘촘하게 엮어서 사람들이 다양한 길을 선택하고, 우연하게 마주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거리의 눈은 24시간 더 넓은 영역을 커버할 수 있게 되죠.


AKR20230312047200004_03_i_P4.jpg
images?q=tbn:ANd9GcS_3THOV96CbWvTxuu00s0ATWPgkYR30ONdtA&s
도시의 복합용도와 이곳저곳에 나 있는 소로는 거리의 눈에 기여한다


오늘날 도시는 또 다른 전환점에 서있습니다. 거리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을 CCTV가 대신 비추고, 발전된 인공지능은 위험 상황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분명 이런 기술은 도시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합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시선을 대신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죠. 그리고 아무리 인공지능이 탑재된 CCTV로 도시를 잘 지켜보고 있을지라도, 문제 발생 시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제 대응을 하려고 하면 CCTV의 감시와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에 부딪히게 되죠. 그래서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사람들이 거리 위에 존재하고, 서로를 의식하는 게 소중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이콥스는 도시의 질서가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면서, 전체로서 하나의 질서를 이루기 때문에 도시가 안전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이콥스는 도시의 활동을 칼군무가 아니라 각각의 무용수가 구별되는 역할을 하면서 한 무대를 이루는 ‘발레’로 비유했습니다.

함께 감상한 <밤거리의 풍경> 속에는 밤을 밝히는 가로등 아래 집으로 향하는 학생, 한 잔 기분 좋게 걸쳤는지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걷는 어르신들, 반려견과 밤공기를 쐬며 산책하는 동네 주민이 함께 등장합니다. 이들은 아마 서로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 서로를 바라보죠. CCTV의 감시하는 시선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런 시선들이 겹치고 겹쳐, 우리의 도시는 낯섦 속 편안함을, 두려움 속 안전함을 만들어냅니다.

어쩌면 도시에서 느끼는 안도감은 수많은 도시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활동을 이어가며 만들어내는 무언의 발레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거리 위에서는 낯선 이들과 함께 하는 무대가 열리고 있는 듯합니다.





도슨트의 인문사회학 노트 22: 거리의 눈


“오래된 도시가 제대로 기능을 하는 곳이라면 어디나 외견상의 무질서 아래에는 거리의 안전과 도시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사의한 질서가 존재한다. 그것은 복잡한 질서이다. 이 질서의 본질은 끊임없이 얽히고설킨 보도 이용과 그 결과물인 끊임없는 보는 눈의 연속이다.”

-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1961 -


제인 제이콥스가 제시한 ‘거리의 눈(Eyes on the Street)’이란, 도시의 안전과 질서가 제도나 감시 장치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이라기보다,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활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겹쳐지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개념이다. 출근하는 사람, 가게를 지키는 상인, 길을 오가는 아이와 주민 등 각자의 목적을 가진 이들이 거리 위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활동할 때, 그들의 시선은 특정 개인을 감시하려는 의도가 없어도 서로를 의식하게 만들고 범죄를 억제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이런 맥락에서 제이콥스에게 안전한 도시는 조용하고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분명히 구분되고, 건물이 거리를 향해 있어 거리 곳곳에 끊임없이 시선이 닿는 곳이다. 이런 도시의 구조는 다양한 기능이 혼합되고 촘촘한 소로와 교차로로 이루어져 있어, 하루 종일 사람들의 마주침이 이어지고 거리의 시선이 유지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제이콥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각기 다른 움직임들이 얽혀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발레처럼,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환경 속에서도 질서와 안정감을 느낄 있는 좋은 도시가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