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환경
작품명: 재건축의 풍경
제작 시기: 오래된 아파트를 헐고 난 뒤
재료: 자본, 사업시행인가, 건조환경
설명: 재건축 아파트의 풍경을 순간을 강조하는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려내어 오랜 시간이 남긴 흔적과의 단절을 표현했다.
지금 저희 앞에 있는 <재건축의 풍경>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늘 공사 중입니다. 어딘가에서는 새 아파트를 짓기 위한 뼈대가 올라가고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보도블록이 뜯겨나간 자리에 새것이 깔리고 있습니다. 도시는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낡은 것을 헐고 새것을 짓는 과정을 반복하며 변화하는 중입니다.
이런 도시의 변화를 대표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재건축입니다. 낮은 단독주택이나 낡은 아파트가 모여있던 동네가 어느새 번쩍번쩍 빛나는 고층 아파트 숲으로 바뀐 모습은 가히 상전벽해 그 자체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도 그런데요. 지금은 주거시설과 오피스텔이 들어와 사는 환경이 꽤 괜찮은데, 그 동네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 가끔씩 어르신들이 “이야, 여기 달동네였는데”라고 감탄하시는 걸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재건축으로 주거환경이 정리되어 깔끔해지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지대와 집값이 상승합니다. 이 과정에서 오래된 집이나 땅을 보유하던 사람들은 한순간에 벼락부자가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하죠. 그래서 아예 재건축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낡은 동네에 미리 들어가서 불편을 감수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몸은 힘들어도 기대한 것처럼 재건축이 되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어마어마하니까요. 이걸 ‘몸테크(몸으로 재테크)’라고 부릅니다.
이런 맥락에서 재건축은 단순한 도시정비사업이라기보다 부동산이 핵심 자산인 우리 사회에서 한 번에 곱절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같은 옷을 오랫동안 입다 보면 자연스럽게 옷이 해지고, 구멍 나고, 얼룩이 묻죠?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의 흔적에 의해 도시도 낡습니다. 옷을 수선하는 것처럼 도시도 고쳐야 할 게 생기죠. 이때 주거환경의 개선이 필요한 지역을 정비하는 사업을 도시정비사업이라고 합니다.
재건축은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도로, 상하수도, 공원 같은 기반시설은 양호하지만 주거시설이 노후화되어 개선이 필요할 때, 기존 건물을 헐고 같은 부지에 더 높고 밀도 있게 건물을 다시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고로 만약에 기반시설까지 열악하면 아예 그 지역 자체를 싹 다 갈아엎는 재개발을 시행합니다.
재건축 사업은 꽤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정비구역 지정, 안전진단, 조합 설립, 시공사 선정, 사업시행 인가, 자산 평가와 분담금 산정, 이주와 철거, 착공과 분양, 입주까지.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수년씩 지연되기 일쑤입니다. 실제로 중간에 분담금을 둘러싼 조합원들끼리의 갈등이나 시공사의 사정으로 인해 사업이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재건축은 보통 15~20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재건축을 추진할 때쯤 자녀를 낳았는데, 그 자녀가 대학생이 될 때서야 비로소 재건축된 새 아파트에 입주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이렇게 오랜 시간을 끝까지 인내하고 노후화된 주거환경에서 버티는 이유가 뭘까요? 바로 그 끝에 확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낡고 허름한 아파트들은 재건축을 통해서 지역을 상징하는 ‘대장 아파트’로 탈바꿈됩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아현동, 금호동, 옥수동의 불량주택 밀집지역도 재건축되어 지금은 고급 주거지가 된 것처럼 말이죠. 물론 분담금도 만만치 않겠지만, 이곳 조합원들은 새로 태어난 럭셔리한 아파트를 분양받아 자산을 불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기대감에 입지만 괜찮다면 오히려 아주 오래된 아파트가 신축보다 주목받기도 합니다. 아직 삽도 뜨지 않은 47년 된 서울 잠실주공 아파트의 집값이 순식간에 45억 원을 돌파한 것처럼 말이죠.
이런 재건축은 더 나아가 건설 경기를 활성화하고, 금융과 부동산 시장 전반에도 파급효과를 미칩니다. 건설사는 일이 생기니까 노동자를 더 뽑고, 분양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거죠. 그렇게 되면 임금을 받은 건설 노동자들의 소비가 늘어나고, 주택 수요자들은 금융권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새 집을 사며, 분양으로 수익을 얻은 건설사는 또 다른 곳에 투자를 하면서 돈이 돌고 도는 겁니다. 이걸 자본이 ‘순환’한다고 표현합니다.
영국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1935~)는 건조환경(built enviornment)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본의 순환이 도시 공간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건조환경은 주택, 공장, 사무실, 도로, 철도, 상하수도, 공원, 전력망 등과 같이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모든 물리·공간적 구조를 의미합니다. 하비는 이런 건조환경이 자본의 순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산물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먼저 마르크스로부터 이어진 자본의 순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자본을 투자해 노동자를 고용하고 상품을 생산·판매하여 이윤을 얻습니다. 이 과정에서 돈이 도는데요. 하비는 이런 기본적인 자본의 순환을 '1차 자본순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미덕은 투자된 자본보다 더 큰 자본이 회수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기업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여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죠. 이를 위해 기업은 노동시간이나 급여를 조정해서 노동비용을 최소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더 큰 수익을 얻고자 하는 기업의 전략은 노동자의 구매력을 약화시켜 소비를 위축시키고, 그 결과 상품은 넘쳐나지만 이를 구매할 수요는 부족한 과잉생산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합니다. 따라서 생산과 소비로 축적된 자본을 마냥 생산성 향상에만 투입할 수 없는 노릇이죠. 이렇게 자본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기침체의 적신호가 켜집니다. 마치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동맥경화가 우리 몸에 이상을 발생시키듯 말입니다.
이때 하비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건조환경에 대한 투자가 활용된다고 하는데요. 상품의 생산과 소비(1차 순환)로는 더 이상 흡수될 수 없는 자본과 노동을 도시의 건조환경에 투입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혈액순환을 돕는 것입니다. 이걸 2차 자본순환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를 고용하여 고층 오피스 건물을 지어 임대료 수익을 얻고, 도로를 깔아 상품 유통을 속도를 높이거나, 부동산을 개발해 지대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죠.
하비는 3차 자본순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요. 과학기술, 교육, 연구, 복지, 문화 등 사회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력을 재생산하면서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하비에 따르면 이 세 가지 자본순환이 맞물려 동시에 돌아가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위기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재건축은 2차 자본순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안전 확보와 불량한 주거환경을 명분으로 오래된 주거지역을 허물고 새 고층 아파트를 지어 순환되지 않던 자본을 도시 공간에 흐르게 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죠. 건설사는 분양을 통해 이윤을 얻고, 조합원은 새 아파트를 받아 부동산 자산 가치의 상승을 경험합니다. 입지가 괜찮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안에 재건축 동의 촉구 안내문이나 여러 건설사가 경쟁적으로 건 재건축 환영 플래카드는 자본을 흡수하는 장치로 도시공간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건축으로 인해 같은 부지에 더 높은 층의 주택이 들어서면 국가적으로도 주택공급과 경기 부양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도 재건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비는 건조환경을 창출하는 2차 자본 순환에서 대규모 공사에 필요한 금융을 지원하고 보증하는 국가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가 재건축 제도와 금융을 관리하며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죠.
원래 노후화로 인한 안정성 문제와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본래의 목적에 따라, 재건축 대상이 되려면 지어진 지 30년 이상이 되어야 하고, 안전하지 않다는 진단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파트가 ‘안전하지 않다’라는 판정이 나면 오히려 축하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정부 정책에 따라 2024년부터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1기 신도시를 비롯해 노후계획도시로 지정된 택지의 재건축이 이전보다 원활해질 예정입니다. 기존과 달리, 노후화의 기준이 20년으로 바뀌었고, 안전진단이 사실상 면제되며, 용적률이 상향되는 등 건축규제가 완화되었거든요. 다시 말해서, 아직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고 비교적 정정한 주거지역이라도 조건이 맞으면 허물고 더 높이 새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재건축은 ‘위험하고 불편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정비’가 아니라, 아직 멀쩡한 도시를 더 높은 가치로 재편하는 수단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건조환경을 통한 자본순환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건조환경은 일단 만들어지면 쉽게 이동하거나 처분할 수 없는 ‘고정된 자본’이기 때문입니다. 재건축한 아파트의 분양이 지지부진해서 손해를 입게 된다고 해서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분양 문제처럼 고정된 건조환경이 자본을 흡수하는 데 한계에 다다르면 오히려 자본의 순환을 저해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더해, 사람도 문제입니다. 너무 높게 책정된 분담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주민과 소유권이 없는 세입자는 재건축 과정에서 살던 집에서 떠나야 합니다. 재건축이 이후의 주거지는 돈이 많이 들고, 살기 좋아진 만큼 임대료가 상승하여 아무나 살 수 없는 배타적인 공간이 되어버리죠. 즉, 재건축은 가진 사람의 자산 증식에는 도움이 되지만, 가지지 못한 사람을 밀어내면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공고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자본이 공간을 통해 끊임없이 순환하는 오늘의 도시에서, 재건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부동산에 '몰빵'된 자본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면서 촉발되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산증식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무거운 대출의 무게와 세입자들의 퇴거를 감수해야 하는 재건축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자본을 흡수할 수 있을까요? 잠재된 위기를 애써 외면하면서 우리 사회는 <재건축의 풍경>에 담긴 것처럼 추억과 삶의 터전 대신 도시의 자산 가치를 끊임없이 쌓아 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건조환경에서 고정자본은 이에 결합된 가치가 파괴되지 않고서는 지리적으로 이동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공간에서 비유동적이다. 따라서 건조환경에 대한 투자에는 생산·유동·교환·소비를 위한 전반적인 욉 경관의 창출이 뒤따른다."
- 데이비드 하비, ≪자본주의적 도시과정≫: 분석을 위한 틀, 1978 -
데이비드 하비의 건조환경 개념은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자본은 생산과 소비의 흐름 속에서 순환하며 이윤을 창출하지만, 일정 시점에 이르면 상품은 팔리지 않고 자본은 과잉 상태에 빠져 성장이 둔화된다. 이때 자본은 공장, 도로, 주택, 각종 인프라와 같은 건조환경에 투자되어 도시 공간 속으로 흡수된다. 이러한 건조환경에 대한 투자는 정체된 자본순환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효과를 가지지만, 동시에 자본을 장기간 회수하기 어려운 형태로 공간에 고정시켜, 향후 자본의 유연한 이동을 제약하는 장애물이 된다. 그 결과, 자본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찾아 도시를 재구조화하게 된다. 하비의 관점에서 건조환경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이를 미루기 위한 전략적 산물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풍경은 이러한 자본순환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