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숲

세대문제

by 김신혁
ChatGPT Image 2025년 12월 27일 오후 01_29_29.png

작품명: 아파트의 숲

제작 시기: 급격한 도시화로 우리 도시에 아파트가 심어진 이후부터 현재까지

재료: 빽빽하게 자라난 아파트, 아파트 생활양식, 세대문제

설명: 도시의 전경을 지배하고 있는 고층 아파트를 은은한 녹색을 섞어 숲처럼 표현했다.


여러분은 어디에 살고 계신가요? 우리는 살고 있는 공간을 ‘집’이라고 합니다. 집은 본질적으로 비바람을 막아주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안식처이죠.

어렸을 적 집을 그리면 어떻게 그렸는지 기억나시나요? 저는 네모난 벽을 그리고, 그 위에 세모 모양의 지붕을 얹은 주택을 그렸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친숙한 모양의 집이죠?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집을 그렇게 그리지 않습니다. 기다란 직사각형을 그리고, 그 안에 창문을 빽빽하게 찍어 넣습니다. 바로 아파트를 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굴뚝 대신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문하신다고 믿는 아이들도 있죠. 주거환경이 아이들의 상상력에도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도시는 아파트로 빽빽합니다. 숲에 나무가 있다면, 도시에는 아파트가 있는 셈이죠. 지금 저희 눈앞에 있는 <아파트의 숲> 작품이 그 풍경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시의 전경을 아파트가 점령하고 있는 이 시대에 아파트 외의 주거양식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채 성장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태어난 곳도 아파트요, 놀이터도 아파트 단지에 있고, 산책도 그 안에서 하며 자랍니다. 옛날 동네의 범위가 이제는 아파트 단지의 경계와 거의 겹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산 신도시에서 자란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면서 처음으로 빌라와 오피스텔에서 살아봤는데요. 뭔가 아파트 단지가 주는 포근함(?)이 없어서 적응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습니다.

아마 아파트의 삶을 바라는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모로 아파트가 다른 주거양식보다 편리하고, 쾌적하고, 무엇보다 환금성이 좋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아파트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아파트 세대’가 아닐까요?



아파트의 시대


독일의 철학자인 오토 볼노(Otto Bollnow, 1903~1991)는 집을 ‘삶의 기준점’이라고 보았습니다. ‘거주한다’는 것은 단지 어디에 머무르는 것 이상으로, ‘특정한 장소를 집으로 삼아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에 속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파트의 시대에 우리 삶의 기준점은 지상이 아니라 공중에 있고, 우리가 뿌리내린 곳은 땅이 아니라 다른 집의 천장입니다.

오늘날 우리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현대식 아파트는 20세기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했는데요. 이 말은 집이 차갑고 비인간적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집도 다른 것보다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유럽 도시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대량의 주거공간을 빠르게 공급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때 르 코르뷔지에는 주거의 기능에 초점을 맞춰 표준화된 고층 공동주거양식이 가장 효율적이고 적합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최초의 현대식 고층 아파트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이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아파트는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주거양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아파트는 획일적이긴 했지만, 단기간에 대량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식이었습니다.

1962년에 10개 동의 마포아파트가 완공되어 고밀도 단지형 아파트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입주자들이 장독 묻을 곳이 없어 당황했을 정도로 아파트는 굉장히 생소한 주거양식이었습니다. 하지만 70-80년대 서울 강남과 90년대 수도권 신도시가 대규모 아파트 주거지역으로 개발되면서 아파트는 도시를 대표하는 주거양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9051605247276.jpg 1962년에 완공된 마포아파트


그 결과 1970년에 우리나라 전체 주택 중 0.7%에 불과했던 아파트 비율은 2024년 기준 65.3%로 급등했습니다. 반대로 93.7%였던 단독주택 비율은 19.3%로 확 줄어들었죠.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단독주택으로 이루어진 동네의 풍경은 이제 그리운 추억으로만 소비되고 있고, 그 자리를 아파트가 대신 채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처럼 아예 신도시에서 나고 자라 아파트 외의 주거양식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볼노의 말처럼 집이 삶의 기준점이라면, 어디서 어떻게 거주하는가는 당연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신도시 아파트에서 자란 저와 단독주택에서 자란 제 와이프도 비슷한 또래이지만, 생활 속 감각과 사고방식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직선으로 쭉쭉 뻗은 길에서 마음이 편해지는 반면, 제 와이프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의 정취를 좋아합니다. 또 굳게 닫힌 현관문 안에서 자란 제가 다소 개인주의적인 편이라면, 와이프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 사람들과 교류가 많아 공동체적인 면모가 있습니다. 물론 이걸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주거 경험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세대문제 (The Problem of Generations)


이런 집단과 집단 간의 차이 중에 우리가 가장 쉽게 떠올리는 개념은 ‘세대’입니다. 세대에 대한 논의는 어느 시대에서나 늘 존재해 왔습니다. 기원전 1700년 경의 수메르 점토판에는 자녀를 책망하는 기록이 남아 있고,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일리아스>에도 요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비해 나약하다는 푸념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세대를 어떻게 구분할까요? 보통 연령대를 기준으로 합니다. X세대(1970~1980), 밀레니얼 세대(1981~1996), Z세대(1997~2012), 알파세대(2013~)처럼 말이죠. 그리고 뉴스나 각종 매체에서는 이런 나이 기반의 세대 구분을 통해 특정 집단을 쉽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MZ세대는 자기표현이 확실하다”와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단 저부터 MZ세대에 속하긴 하지만, 자기표현을 잘 못하거든요. 또한 흔히 기성세대는 보수적이고 젊은 세대는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데요.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86세대가 더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고,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경제 성장과 실리를 우선시하는 젊은 세대가 더 보수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즉, 연령대로 세대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다소 협소할 수 있다는 것이죠.

헝가리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 1893~1947)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만하임에게 세대란 단순히 특정 연도에 태어난 사람들의 묶음이 아닙니다. 같은 사회적·역사적 사건을 경험하면서 형성되는 특징적인 사고방식과 세계관의 공유가 세대를 구성한다고 보았습니다. 쉽게 말해, 나이라는 생물학적 요소보다도 어떤 사회적·역사적 경험을 언제, 어떤 조건에서 겪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0210917512788.jpg 출생 연도 이상으로 사회경제 이슈도 세대 구분에 중요하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가 개인화되고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면, 그건 단순히 1970년대에 태어나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국가가 개인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던 IMF 외환위기라는 사건을 겪으며 형성된 감각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만하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동일한 사건을 겪더라도 그 경험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IMF 외환위기 때 집이 한순간에 무너진 사람과 그 시기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한 사람은 같은 세대적 위치에 놓여 있더라도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하임은 이런 질적인 차이를 통해 하나의 세대 안에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험을 소화하는 ‘세대단위’가 여럿 존재할 수 있다고 본 것이죠.

지금 저희가 이야기해 온 주거양식도 역시 중요한 경험의 축이 됩니다. 아파트가 표준화된 시대에 아파트 주거양식에 익숙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취향 차이를 넘어선 생활양식의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같은 시대,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주거에 따라 서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아파트 키즈 다음 세대는 누굴까?


만하임의 관점에서 보자면, 소위 ‘아파트 키즈’라고 불리는 아파트 세대는 아파트가 주거의 표준이자 삶의 기준점이 된 시대에 성장하며, 아파트의 생활양식을 체화한 사람들입니다.

경제성장기에 아파트 중심으로 도시가 계획되고, 현대적인 주거의 편의성이 각광받으면서 아파트는 곧 중산층이 상징이 되었고, 좋은 아파트는 주거공간을 넘어 자산가치를 가진 상품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서 작은 단독주택에서 도시 외곽 아파트를 거쳐 다시 서울의 더 큰 평수 아파트로 옮겨가는 것이 성공한 인생의 공식처럼 여겨지게 되었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생활양식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더 좋은 아파트를 찾아 이사가 잦아지면서 동네에 대한 애착이 옅어졌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답게 이야기 나누던 골목길은 엘리베이터에서 몇 초의 순간이 되었고, 밥숟가락 개수까지 알던 이웃은 이젠 얼굴도 모르는 여러 입주자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또 동네의 대소사를 나누던 모임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바뀌며 비대면화되었죠.

물론 이런 변화가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적인 공간에서 편히 지내고 싶어 하지 않나요? 이때 현관문을 굳게 닫으면 나와 우리 가족만의 공간이 되는 아파트의 개인화된 구조는 이런 현대인의 욕구에 딱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들자면, 아파트라는 주거양식이 필연적으로 구별의 공간이 되기 쉽다는 점입니다. 아파트 단지에는 놀이터가 있지만, 요즘에는 입주민만 놀이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곳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친구가 다른 단지에 살면 놀이터에서 같이 못 노는 거죠. 더 나아가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자가인지, 전세인지, 임대인지에 따라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아파트 키즈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빗장 친 공동체에서 자라며 구별짓기를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것이죠, 이로 인해, 아파트가 표준화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세대 내에서도 주거 조건에 따라 다양한 세대단위가 존재하게 됩니다.


227599_136391_1743.png
2022101202374_4.jpg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하는 구별짓기


‘아파트가 최고야’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는 사회에서 자라는 아파트 키즈는 커서도 아파트를 당연한 삶의 형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주요 뉴스에는 늘 아파트 매매 동향이 등장합니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또 어떤 아파트에서 사느냐가 ‘나’의 위치를 보여주는 수단이 되었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드라마 제목만 봐도, ‘서울 자가 아파트’에 사는 게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죠. 이런 맥락에서 결혼을 ‘잘했다, 못 했다’도 부모님이 어떤 아파트를 물려주었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아파트에 대한 욕망을 더욱 강화하고, 아파트 세대는 아파트 외의 주거양식을 지혜롭지 못한 선택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런 아파트 세대가 성장해 다시 아파트를 선택할수록, 다양한 주거양식이 등장할 공간과 기회는 점점 사라집니다. CCTV와 비밀번호로 타인의 접근을 철저히 막는 아파트 숲이 우리 도시를 더욱 촘촘히 채워가고 있습니다. 빽빽한 아파트 숲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언젠가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게 될까요? 아파트 밖의 삶을 잘 모르는 아파트 키즈 다음에는 어떤 세대가 등장할까요? 그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 어떤 주거 경험을 물려줄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파트의 숲>에 표현되어 있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아파트는 마치 잭의 콩나무처럼 하늘을 뚫고 쑥쑥 자라며 한 세대를 조용히 형성하고 있습니다.





도슨트의 인문사회학 노트 17: 세대문제


“동일한 계급에 속한다는 사실과 동일한 세대 내지 연령집단에 속한다는 사실은 개인들로 하여금 사회적/역사적 과정 속에서 공통의 위치를 점하도록 하고 잠재적 경험의 범위를 한정하며 특징적 기질과 사고방식 그리고 역사적으로 적합한 행동의 형태를 공유하게 만든다.”

- 카를 만하임, ≪세대 문제≫, 1928 -


헝가리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이 말한 ‘세대문제’는 세대를 단순히 나이로 구분하는 관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만하임에게 세대란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라, 동일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사건을 함께 겪으며 형성된 경험의 공동체였다. 그는 같은 시기에 태어나 사회 속에서 공통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의 범위를 공유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특징적인 감각과 사고방식, 세계를 해석하는 틀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공통의 경험이 항상 동일한 의식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계급, 생활환경, 조건의 차이에 따라 경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고 내면화되며, 그 결과 하나의 세대 안에서도 서로 다른 ‘세대단위’가 형성된다. 만하임의 세대문제는 바로 이 지점, 즉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사람들이 왜 서로 다른 세계관과 행동 양식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