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사무소 앞의 고뇌

추상공간

by 김신혁
ChatGPT Image 2025년 12월 31일 오전 10_37_08.png

작품명: 공인중개사 사무소 앞의 고뇌

제작 시기: 집값 상승기

재료: 무주택자, 집, 추상공간

설명: 고공행진하는 집값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무주택자의 심정을 고뇌에 찬 뒷모습으로 표현했다.


도시에는 참 숫자가 많습니다. 버스의 번호, 신호등에 표시된 남은 신호 시간, 아파트의 동과 호수까지. 그중에서도 요즘 제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저희 앞에 있는 <공인중개사 사무소 앞의 고뇌>에 묘사된 것처럼 공인중개사 사무소 벽면에 붙은 매물정보 속 숫자들입니다. 이사 갈 때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공인 중개사 사무소 앞을 지나칠 때면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문득 관심 가는 매물을 보고 공인중개사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공인중개사님이 “어떤 집을 찾으세요?” 질문합니다. 여기에 나름대로 준비해 온 조건들을 이야기하면, 해당 매물 정보를 말씀해 주시는데요. 거의 모든 설명이 ‘숫자’입니다. “이 집은 84㎡에 10층이라 시야가 터 있고, 지하철까지는 도보 10분 거리고, 매매가 10억입니다.” 물론 그 지역에 오래 계셨던 공인중개사님은 동네의 간단한 역사나 분위기도 설명해 주시지만, 사실 그건 제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제 머릿속의 대부분을 평수와 가격이라는 숫자가 차지하고 있거든요. 이 숫자에 맞춰 고민하고, 계약을 할지 말지 결정합니다.

예로부터 집은 삶의 기준점이자 안식처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집을 넓이와 가격으로 요약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삶을 숫자로 환원하는 것과 같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살(live) 집 vs. 살(buy) 집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집은 사는(live) 곳이면서 사는(buy) 곳이기도 합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점점 buy의 의미가 강해지는 추세인데요. 국가적인 부동산 광풍 속에서 ‘자가인지 임대인지’, 더 나아가 ‘어떤 집을 가지고 있는지’가 곧 그 사람의 계급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보니, 월급을 모아서 집을 산다는 게 이제는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국토교통부의 <2024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서울의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13.9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다 모아도 집을 사는 데 14년 가까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집의 가치는 계속 올라 집을 가진 사람은 자동으로 부자가 되고, 집이 없는 사람은 한순간에 ‘벼락거지’가 됩니다. 마치 집이 돈을 벌어주는 것 같네요.

이렇듯 자산으로서 집의 가치가 확실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65%나 됩니다. 일본(35%)이나 미국(30%)의 2배 수준이죠. 아무리 열심히 직장 생활해봤자 집의 유무에 따라 계급이 바뀌다 보니, 전 국민의 촉각이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뉴스에서도 부동산 이야기, 친구끼리도 부동산 이야기, 직장에서도 부동산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도시에서 부동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바로 공인중개사 사무소입니다. 2024년 기준, 전국에 등록된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총 10만 7천 개로 편의점 개수(5만 5천여 개)의 거의 2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파트 단지 상가 하나에 공인중개사가 기본 2~3곳 정도는 있으니까요.


img_168354_1.png 세상은 넓고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많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국민 자격증’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험 응시자 수도 굉장히 많은데요. 재미있는 게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 수는 부동산 시장의 흐름과도 연관성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침체기였던 2013년에는 10만 명 수준이었던 응시자가 부동산 과열기였던 2021년에는 27만 명을 넘겨 정점을 찍었습니다. 2025년 제35회 시험에만 16만 5천 명이 응시했고, 시험이 시작된 1985년부터 누적된 합격자가 55만 명에 달한다고 하네요. 물론 합격자 모두가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개업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부동산에 대한 공부는 필요하고, 알아두면 손해 볼 일이 없으니 겸사겸사 자격증도 따는 경우가 많죠.

이런 맥락에서 도시에 촘촘하게 위치해 있는 수많은 공인중개사 사무소와 공인중개사 시험의 인기는 단순히 ‘직업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전 국민의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추상공간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집은 숫자로 요약되어 상품으로 거래됩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숫자로 측정되고 계산되지 않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예술 작품도 예외는 아닙니다. 고흐가 그린 작품도 경매 시장에서 가격표를 달고 거래되잖아요. 이때 고흐 작품의 가치는 벤틀리 20대의 가치와 비교 가능해집니다. 예술 작품과 고급 자동차는 애초에 너무나도 다른 대상이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그 질적 차이는 제거되고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상태가 되는데요. 이걸 ‘추상화’라고 합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는 공간 역시 추상화되어 상품처럼 거래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역사를 되짚으며 절대공간(absolute space)이 추상공간(abstract space)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탐구했습니다.

절대공간은 말 그대로 절대적인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 공간으로서 ‘자연의 신비한 힘’이 머무는 공간입니다. 예를 들어, 신성함이나 금기를 기반으로 하는 사원, 궁궐, 무덤 등이 있죠. 이런 절대공간은 체험의 공간으로서 우리의 이성보다 감정적 동요를 바탕으로 한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앙코르와트와 성베드로 성당이 규모나 면적에서는 차이가 날 수 있겠지만, ‘어느 곳이 더 가치 있다’ 혹은 ‘어느 곳이 더 웅장하다’고 이성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공간을 이성적으로 인지하는 순간 공간의 특수한 가치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사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렇듯 고대에는 공간에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공간과 특정한 가치가 분리될 수 없는 절대적 공간관을 가지고 있었죠.

반면에 추상공간은 공간과 내재된 절대적 의미의 결합이 분리되고 계량화되는 공간입니다. 이성과 합리성으로 세속화된 공간이죠. 쉽게 말해, 체험의 공간이 아니라 지도, 설계도, 이미지, 기호, 가격 등으로 나타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추상공간의 특징은 공간이 가지고 있던 특수한 가치와 의미가 계량화되어 비교 가능해진다는 점입니다. 사과나무를 심던, 소를 키우던 상관없이 토지를 화폐가치로 비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르페브르는 16세기에 들어 도시가 성장하면서 절대공간이 약해지고 공간의 추상화가 가속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도시는 합리성의 중심지입니다. 도시에는 늘 상인들이 모이는데, 뭐든지 계산하고 잘 따져 본 뒤에 거래를 하잖아요. 이런 도시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물리적 강제력과 영토에 대한 구속력을 지닌 근대 국가의 등장이 맞물리면서 공간은 자본과 권력으로 계획되고 관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는 각종 정책과 도시계획으로 공간의 가치에 영향을 주고, ‘공시지가’를 통해 전 국토를 추상화합니다. 자본가 역시 부동산 개발과 투기로 공간을 상품화하죠.

20세기 초반, 미국의 도시생태학자들은 서로 다른 생물종이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균형을 이루는 생태계처럼 도시의 공간 구조도 지가와 계층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생각했는데요. 이와 달리, 르페브르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에 의해 추상화된 상태로 생산되는 ‘사회적 산물’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런 추상화된 공간은 내재된 절대적 가치와 분리되어 권력을 행사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입니다.


417939_543444_415.jpg 국가와 자본은 시골 마을을 추상화하여 대한민국 부와 권력의 중심지인 강남을 만들어냈다



사라져 가는 집의 가치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우리는 집의 역사와 거기에 깃든 추억과 같은 절대적 가치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습니다. 단지, 주변에 호재가 있어서 집값이 오를 것인지, 지하철역은 몇 분 거리인지, 용적률을 고려했을 때 재건축 가능성이 있는지 등 양적으로 비교 가능한 기준들을 물어볼 뿐입니다. 그래서 질문의 끝은 결과적으로 그 집이 ‘얼마짜리인지’로 귀결되죠.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록 추상화되어 상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집은 사고팔 수 없는 우리의 추억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점점 자라나는 아이의 키가 표시된 문틀, 따뜻한 햇빛에 바랜 거실의 벽지, 부엌에 밴 어머니의 음식 냄새, 아버지가 머리를 감겨 주던 욕조와 같이 말이죠.

아주 귀한 집의 흔적들이지만, 아쉽게도 이런 비교 불가능한 절대적 가치들은 거래에 불필요합니다. 오히려 집에 남은 누군가의 흔적들은 수리의 대상이 되어 집의 가치를 떨어뜨리죠. 추억이 쌓인 시간만큼 낡은 집은 어서 빨리 부수고 재건축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낡은 집이 제거된 자리에 새집이 들어서면 집값이 두 배, 세 배로 뛴다는 수익률 분석에 따라서 말입니다.


l_2015110601000783100074271.jpg 누군가에겐 추억의 장소이겠지만, 누군가에겐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 오래된 아파트


요즘은 더더욱 우리 사회에서 집이 절대적 가치를 품기 어려운 공간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집을 소유하지 못한 세입자는 늘 계약에 따라 철새처럼 집을 옮겨 가면서 사는데요. 부동산 시장이 가장 활성화된 서울에서는 2024년 기준 세입자의 평균 거주 기간이 겨우 3.7년에 불과합니다. 자가 소유자의 평균 거주 기간이 11.6년인 것에 비하면 짧은 순간이죠. 세입자는 그 집에 익숙해지고 추억이 쌓일 때쯤 이사를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불안정 속에서 우리는 ‘내 집’이라는 안정감을 얻기 위해 집을 사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집을 최대한 비싸게 팔고자 하는 매도인과 어떻게든 싸게 사려는 매수인 사이를 공인중개사가 연결합니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집의 가치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숫자의 언어로 조율하는 역할을 합니다. ‘84㎡, 10억.’ 이 짧은 문장에 쏙 빠진 절대적 가치로 인해 집은 더 이상 삶의 기준점이 아니라 그저 커다란 지도 위에 표시된 수많은 좌표 중 하나로 존재할 뿐입니다.

모든 것이 추상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이 상품처럼 거래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씁쓸합니다. 공간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사람과 배제되는 사람이 또렷하게 갈리게 되니까요. 르페브르는 공간이 추상화되면서 계급 간 불평등과 지배구조가 더욱 공고해졌다고 했습니다. 물론 모두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집을 얻을 수는 없지만, 집을 투자의 수단으로 다루는 사회일수록 실제로 집이 필요한 사람은 점점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죠.

<공인중개사 사무소 앞의 고뇌>에는 공인중개사 사무소 벽면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집의 추상화된 숫자들. 그리고 그 앞에 더 이상 밀려날 곳도 없는데, 부족한 예산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무주택자의 고뇌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집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보다, 그 집이 ‘얼마의 가치를 가지게 될까’ 상상하며, 공인중개사 사무소 앞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마치 전자제품의 스펙을 비교하며 고민하듯이 말입니다.





도슨트의 인문사회학 노트 18: 추상공간


“추상공간은 사물과 기호의 총집합체로서 형식적인 관계, 이를테면 유리와 돌, 시멘트와 철강, 각도와 곡선, 가득함과 텅 빔 등의 관계 속에서 ‘대상적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형식적이고 계량화된 공간은 자연과 시간(역사)에서 비롯된 차이는 물론 신체나 나이, 성별, 부족 등에서 비롯된 차이도 부정한다.”

- 앙리 르페브르, ≪공간의 생산≫, 1974 -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을 단순히 주어진 배경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절대공간은 그 자체로 의미와 가치를 품은 공간이다. 사원이나 궁궐, 무덤처럼 신성함·금기·기억 등의 절대적 가치가 깃들어 있어 숫자로 비교할 수 없고, 체험과 감정으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다. 이 공간에서는 양적이고 계산적인 기준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반면 추상공간은 자본주의의 발전 그리고 근대 국가와 함께 등장한 공간이다. 여기서 공간은 지도와 설계도, 면적과 가격, 이미지와 기호 등 측량 가능한 가치로 환원된다. 원래 내재되어 있던 의미가 분리되어, 공간은 비교와 교환 가능한 획일화된 대상으로 바뀌는데, 국가는 도시계획과 정책으로, 자본은 개발과 투기로 이 추상공간을 생산하고 관리한다. 그 결과, 공간은 삶의 추억이 깃든 장소라기보다 자본을 축적하고 권력이 작동하는 장이 된다. 르페브르는 절대공간에서 추상공간으로의 전환을 추적하며, 공간이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질서와 지배 구조를 공고화하는데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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