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맛있게 끓이고 싶다면 세 가지만 기억하자. 순서, 재료, 시간!
라면 조리법은 간단하다. 만들기 쉬운 요리를 설명할 때 흔히 ‘라면보다 쉽다’고 표현할 만큼 단순하다. 냄비에 적당량의 물을 끓이다 건더기 수프, 분말수프와 면을 넣고 익히면 완성이다. 길어야 5분. 이 짧지만 위대한 5분간의 연주곡은 1. 순서의 변경 2. 재료의 추가 3. 조리시간의 조절을 통해 다채롭게 변주될 수 있다.
1. 순서의 변경
‘순서의 변경’은 건더기수프와 분말수프를 넣는 순서를 바꾸는 변주법이다*. 끓는 물에 두 수프를 동시에 넣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단지 투입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면 넣는 순서를 바꾸는 조리법(예: 찬물 단계에서 면 투입)도 있으나, 이는 필자의 취향과 맞지 않아 논의에서 제외하였다.
건더기수프와 분말수프를 넣는 방법은 언제, 무엇을,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학설이 나뉜다. 라면 봉지 뒷면에 표기된 조리법에 따르면 끓는 물 550ml에 면과 수프를 함께 넣고 4분간 더 끓이는 방법이 정석이다. 이는 수많은 테스트와 연구를 통해 맛을 최적화한 방법으로, 제조사가 본래 의도한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간주된다.
여기에 순서를 조금 변경하면 나름의 특색이 생긴다. 예컨대 차가운 물에 건더기수프를 넣고 같이 끓이기 시작하면 육수를 우린 듯 맛이 보다 깊어진다. 반대로 분말수프를 먼저 넣으면 면에 짠맛이 더 깊게 배어 더 자극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면을 넣은 뒤 분말수프를 넣었을 때 수프가 한 곳에 뭉치는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덤이다. 찬물에 분말수프를 넣고 끓이기 시작하면 끓는점에 빠르게 도달해 몇 초 빠르게 라면을 조리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설과 분명히 빨리 끓는다는 설이 대립하고 있다*.
* 참고로 필자는 찬물에 분말수프를 넣고 끓이는 경우, 실제로 끓는점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나 수프 향기로 인해 바로 라면을 먹고 있는 듯한 기분에 취해 빠르게 끓었다고 인식하게 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찬물 단계에서 분말수프를 넣는 일이 무용한 것은 아니다. 행복하자고 먹는 음식인데 기분이 빠르게 좋아진다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유의미한 일인가.
다양한 실험을 거친 끝에 나는 순서의 변경에 개의치 않게 되었다. 순서에 따라 미세한 맛 차이가 발생하지만, 재료를 추가했을 때야말로 그 격차가 확연하게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리 순서의 변주는 여행 중에 간단하게 끓여 먹거나, 재료가 없는 상황에서 라면의 맛을 달리 만들고 싶을 때 급하게 쓰는 처방으로 유용하게 사용한다. 여행 중 친구가 끓인 라면 맛이 평소와 다르다면 건더기수프를 먼저 넣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투입 순서를 확인해 보자.
2. 재료의 추가
‘기호에 따라 김치, 계란, 마늘, 파 등을 넣어 드시면 더욱 맛이 좋습니다.’
라면 본연의 순수한 맛을 고수하려는 ‘순정파’와 다양한 재료를 가미하는 ‘추가파’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만든 문장이다. 양측 입장 모두 이유 있다. 순정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맛이 매력적이다. 이것저것 넣을 수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자제했다는 절제미는 물론 제조사의 철학을 음미할 수 있다. 따라서 신상 라면을 조리하는 경우에는 순정파의 입장에 따라 철저히 레시피를 준수할 것을 권하는 편이다.
그러나 나는 '추가파'다. 가능한 여러 가지 재료를 넣는 재미를 즐긴다. 순정을 먹으며 추가할 만한 재료에 대한 영감을 얻고, 두 번째부터는 재료를 추가한 조합을 시도한다. 다양한 아이템을 가미하다 보면 같은 라면으로 이렇게 다채로운 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한참을 방황하다 순정을 먹었을 때 ‘클래식 이즈 더 베스트’라는 만고불변의 법칙에 도달하는 쾌감에 두 번 놀랄 수 있다. 그야말로 어떻게 만들어도 고수의 맛을 내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다.
재료 추가의 세계가 열린 것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끓여준 라면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계란이나 파가 들어있는 라면을 먹어봤지만 뚜렷한 맛의 차이를 느끼진 않았다. 늘 들어가는 재료들이라 감흥이 없었다. 계란을 완전히 익히느냐/반숙으로 익히느냐/마구 푸느냐의 차이 정도만 유의미했다(이 또한 첨예한 견해의 대립이 있는 부분으로, 뒷장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조리 기구 사용을 금지했다. 고학년이 되면 가스레인지를 켤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부모님의 약속을 믿으며 11살이 되기만을 기다리던 10년의 세월이었다.
10살이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와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놀다 친구 집에 가게 되었고, 친구는 나에게 자기가 직접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선언했다. 말 그대로 ‘선언’이었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조금 더 일찍 다음 차원의 세계로 넘어갔다는 선언. 비법 라면을 선보이겠다며 가스레인지 불을 타다다닥 켜던 뒷모습. 그 등짝이 얼마나 어른스러웠는지. 비법이라는 말은 얼마나 세련됐던지. 식탁에 앉아 부쩍 거대해 보이는 친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너는 벌써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멋있다.
약속의 시간 5분이 지나고.
친구의 비법라면 국물을 한 스푼 뚝 떠먹었는데, 세상에? 이건 뭐지 싶었다. 머릿속이 즐겁게 복잡해졌다. 그동안 숱하게 먹어온 짭짤하고 매콤한 라면 국물이 아니었다. 면과 국물이 따로 놀지 않도록 중간에서 누군가가 그들의 손을 살포시 맞잡아 연결해 주고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묘하게 우러나는 깊은 맛. ‘우리 하나 되어~~ 이겼어~~~’ 노래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이거 뭐야? 어떻게 만든 거야?’ 쿵쾅 이는 마음을 움켜잡고 다급하게 물었으나 친구는 답이 없었다. 한쪽이 쭈욱 길게 올라간 입술, 자애로움을 유지한 일자 눈썹이 네가 과연 맞출 수 있겠어? 하며 흘깃 나를 쳐다봤다. 분명 라면 봉지도 내가 그동안 먹어온 삼양라면이었는데. 뭐가 다른 거지. 몰래 다른 걸 넣었나. 이 큼큼한 향은 뭐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면발을 흡입하고 밥을 말기 위해 숟가락으로 국물을 휙휙 젓던 순간, 나는 보았다. 깊은 밑바닥 고요히 가라앉아있는 하얀 반달들. 작은 몸집으로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국물에 녹여내고 뭉근해진 채 푹 늘어진 조각조각. 국물 사이를 헤엄치며 짭짤함과 매콤한 사이에 특유의 깊고 구수한 맛을 더해낸 존재.
마늘이었다.
이 작은 존재가 라면의 맛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평생에 길이 남을 울림을 주었다. 조그만 반달 하나로 맛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이건 삼양라면이 아니잖아. 경이로움에 몸서리치는 나에게 친구는 엄마가 알려준 비법이라며, 콩나물을 넣으면 또 맛이 다르다고 알려주었다. 너는 나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었어. 나는 고작 계란의 익힘 정도에만 골몰하고 있었는데.
그 후로 나는 엄마 몰래 가스레인지를 켜기 시작했다.
*다양한 재료의 조합 및 활용은 별도의 장에서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3. 조리 시간의 변경
라면은 전체 조리 시간이 5분에 불과한 음식으로 1분 1초가 맛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똑같은 레시피로 끓여도 매번 맛이 다른 이유다. 그중에서도 특히, 후반부에 면을 투하한 뒤부터가 가장 치열한 승부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뜨거운 물에 푹 담긴 면은 오래 끓일수록 자연히 탄성이 점차 줄어들고 뭉글뭉글해지기 마련. 이 순간 자칫 방심하여 냄비 앞을 벗어났다가는 본래의 형태를 잃고 젓가락으로 들어 올릴 수 조차 없는 면을 마주할 수도 있다.
라‘면’은 이름 그대로 면 요리다. 국물도 부재료의 풍미도 다 좋지만, 면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높은 완성도에 이를 수 없다. 물이 팔팔 뜨겁게 끓으며 면의 익기가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후반 1~2분의 집중력이 요리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임을 언제나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조리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면의 탄성에 대한 선호는 크게 ①라면과자파 ②꼬들꼬들파 ③흐물흐물파 ④넉다운파로 분류할 수 있다.
① 라면과자파
끓는 물에 30초~1분 이내로 담근 면을 선호하는 유형이다. 마치 라면을 국물에 찍어 먹듯, 딱딱한 면을 과자마냥 아그작아그작 씹어먹는 취향을 가졌다. 이럴 거면 굳이 라면을 끓여 먹을 필요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샤부샤부처럼 국물을 따로 끓여서 면을 잠시 넣었다가 빼면 되는 것 아닌가?
라면과자파인 친구는 이 조리법만의 매력이 있다고 항변했다. 미처 국물이 닿지 못한 면의 가운데 부분에서 느껴지는 밀가루맛, 아그작아그작 씹히는 식감 가운데 스멀스멀 입안에 감도는 국물 맛은 아는 사람만 아는 별미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에게 있어 라면과자파는 중고등학생 시절 매점에서 쉬는 시간 10분 이내에 컵라면을 끝내야 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활용했던 조리법으로, 객관적인 맛보다는 추억의 이름으로 분류되어 있다.
② 꼬들꼬들파
통상적인 면 익힘 시간 3~4분 이내에 끓여 적당히 꼬들한 식감을 추구하는 유형이다. 면에 적당한 탄성이 있어 씹는 맛을 즐길 수 있고 국물의 짭조름함과의 균형도 좋다. 제조사에서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익힘 정도이면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식감이기도 하다. 라면 광고에 나오는 면의 익기가 딱 꼬들꼬들파인 점이 이를 증명한다.
면이 익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는 사실과 라면을 먹는 전체시간을 감안할 때, 제조사 권장 시간보다 약간 덜 익혀내는 것이 식사 후반에 지나치게 불어버린 라면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는 팁이다. 특히 라면 조리대와 식탁까지의 거리가 멀 경우, 의도적으로 매우 꼬들하게 조리한 뒤 식탁에서 적당히 익은 면을 만끽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방법으로도 응용이 가능하다.
③ 흐물흐물파
내가 가장 선호하는 조리법이다. 꼬들꼬들파보다 +30초~1분 이내의 시간 동안 더 익히는 조리법으로, 약간 불었나 싶은 정도의 비주얼을 가졌다. 면발 표면에 약간 매끈하면서도 투명한 빛이 감돈다 싶을 때 불을 끄면 가장 정확하다.
뭐든 덜 익은 것보다 푹 익힌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사람, 면에 충분히 배어든 간을 짭쪼름하게 즐기길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다만 면이 탱글탱글 하다기보다는 다소 흐물흐물하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갈린다. 꼬들꼬들파와 흐물흐물파가 하나의 냄비로 라면을 끓여 먹는 경우 꼬들꼬들파의 면을 먼저 건져 접시에 담고, 1분 정도 더 끓여 흐물흐물파의 접시에 나머지를 담으면 각자 가장 좋아하는 식감을 즐길 수 있다.
④ 넉다운파
면을 5~6분 이상 푹 익혀 죽처럼 먹는, 그야말로 면이 넉다운될 때까지 익혀 먹는 조리법이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나 싶지만, 그 극소수에 나의 여동생이 포함되어 있다. 완전히 얼푸러진 면을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뚝뚝 끊은 뒤 떠먹는 방법이다. 밥처럼 라면을 퍼먹는 느낌으로 국물과 면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동생은 말했다).
흐물한 식감을 선호하는 필자조차 몸서리치게 했던, 그럴 거면 밥을 넣어 죽처럼 끓여 먹지 왜 면을 넣냐고 묻게 만들었던 조리법이다. 이에 대해 넉다운파는 밥보다 면이 더 부드럽다, 국물-계란-면발이 혼연 일체되는 매력을 모른다, 아직 진정한 맛을 모르는 것 같다는 의견으로 맞섰다. 씹는 일이 불편한 상황에서 라면을 먹고 싶은 경우에 활용해 봄직한 조리법이다.
지금까지 나의 라면 사랑과 라면 조리법을 순서, 재료, 조리 시간에 따라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어지는 다음 편부터는 각 파트별로 쟁점 또는 팁이 될만한 부분을 보다 깊이 있게 소개하고 나아가 생애주기별·장소별 라면 에피소드와 꿀팁을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