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동생 구슬리는 치트키: 컵라면
엄마는 언제나 바빴다. 아침이 고개를 들 무렵 밖으로 향했다가 까무룩 해가 몸을 뉘일 쯤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말간 자식들의 저녁밥을 챙겨주고는 얼른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시 집을 나서곤 했다. 부지런히 일해야만 어린 자식들을 겨우 키워낼 수 있었던 시절. 엄마의 30대는 유독 느리고 빠르게 흘렀다.
그때 나는 12살이었고, 2살 어린 동생을 돌보는 일이 집에서의 주요 임무였다. 동생이 하는 일이라곤 그림 그리기, 먹기, 자기가 전부였는데 특히 식탐이 대단했다. 밥을 먹은 지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배고프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과 밥을 또 먹긴 싫다며 칭얼댈 때, 그럴 땐 분명히 원하는 게 있는 거였다. 창고에 엄마가 고이 쌓아둔 컵라면. 그게 언제나 동생의 타깃이었다. 냄새만 맡아도 온몸에 찌릿하게 전율이 흐르는 이 매력적인 음식의 존재를 모른 척 하기란 어른이고 어린 아이고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라면을 이용해 동생이 하기 싫은 일들을 끝내게 만들곤 했다. ‘책상 정리 다하면 컵라면 해줄게.’ ‘문제집 몇 장 풀면 먹게 해 줄게.’ 같은 주문은 100%의 확률로 동생에게 먹혀들었다.
유난히 연연한 바람이 불던 어느 여름밤.
우리는 방에 드러누워 저녁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화면 속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이 갑자기 밤바다를 보겠다며 동해로 향하고, 배가 고파진 두 사람이 호호 불며 바닷바람에 컵라면 면발을 식혀먹었다. 까만 바다를 배경으로 노오란 면발을 호로록 삼킨 여자주인공이 활짝 웃었다. 두 사람 위로 별빛이 반짝였다. TV를 보던 동생이 말했다.
“언니 저렇게 먹으면 더 맛있어?”
바닷바람이 차가우니까 면발이 더 쫄깃쫄깃하려나. 그냥 저럴 때 먹으면 뭐든 맛있는 거 아닌가. 우리도 맨날 먹는 건데 괜히 더 맛있어 보이네……. 그러다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도 별 보면서 라면 먹어볼까?”
우리 집은 5층짜리 아파트의 5층이었다. 대문 바로 앞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계단을 오르면 낡은 철제문이 있었다. 그 문은 때에 따라 열려있거나 닫혀있었다. 우리는 한 번도 엄마 허락 없이 집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옥상은 바로 우리 집 위층이나 다름없으니까, 대문만 잘 잠그면 괜찮지 않을까? 뜨거운 물을 담은 컵라면을 들고 옥상에 잘 올라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아주 가까운데. 바다는 없지만 별은 볼 수 있을 텐데.
동생의 얼굴에 신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어어어어어 좋아 좋아 좋아를 외치며 신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럼 라면 먹고 학습지 다 풀고 자는 거야? 알았지?” 동생이 방방 뛰며 대답했다. “응응! 당연하지 당연하지!”
나는 밖으로 나가 옥상으로 가는 문을 확인했다. 열려있었다. 슬쩍 열어 옥상을 살펴보니 그야말로 까만 어둠.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훅 스쳤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 2개와 나무젓가락이 놓인 쟁반을 들고 살금살금 옥상으로 다시 향했다. 먼저 옥상문을 연 동생이 탄성을 뱉었다.
“와 언니 별! 별!”
머리 위를 비추는 하얀 달과 빛나는 별. 까만 밤 아래 고요히 빛나던 아파트의 불빛. 주황빛 냄새를 솔솔 풍기는 컵라면. 뺨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웃는 우리. 그 모슨 순간이 다 우리의 것이었다. 까끌까끌한 시멘트 바닥에 엉거주춤 앉아 먹는 라면은 유독 맛있었다. 혀를 감싸는 짠맛과 탄성 있는 면발. 어떤 맛은 미각뿐만 아니라 오감의 영역이라는 걸, 나는 그때 어렴풋이 감각했다.
“언니. 나 너무너무 좋아.”
“언니 말 잘 들으면 또 해줄게. 근데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그날 이후 자매의 비밀외출은 계속되었다. 옥상은 우리만의 아지트였다. 라면 국물까지 모조리 꿀꺽 삼킨 뒤에도 우리는 한참 동안 옥상에 멍하니 앉아 하늘을 보곤 했다. 별들이 반짝였다. 달이 웃었다.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고, 나를 바라봤다.
옥상으로 향하는 쟁반에 어느 날부터 별자리책이 추가됐다. 우리는 책을 펼쳐 들고 밤하늘의 별지도를 헤아렸다. 북극성을 가장 먼저 찾고 나면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보였다. 빛나는 세 개의 별이 나란히 또로롱 떠있는 건 오리온자리, 영어알파벳 W자 모양으로 생긴 카시오페아. 쌍둥이자리의 폴룩스와 카스토르는 정말 형제처럼 꼭 붙어있었다.
“하늘에서도 늘 함께 있으라고 제우스신이 쌍둥이 형제를 별자리로 만들어 줬대.”
별자리 신화를 읽어 줄 때마다 동생의 눈이 반짝였다.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별자리의 위치와 밤하늘의 풍경을 우리는 눈으로 확인했다. 밤하늘에 보이는 별의 개수를 세며 새롭게 보이거나 잘 보이지 않는 별들의 안부를 살폈다.
아득히 먼 듯하면서도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던 검은 우주. 내 손에는 컵라면이, 내 머리 위에는 별이. 내 곁에는 동생이 함께였다. 나는 이 지구에 살고 있다. 나는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별을 보듯 누군가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미래에는 저 우주로 여행을 가볼 수도 있을까? 그때쯤 나는 몇 살일까? 살아있는 게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이 뛰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졌다. 자꾸만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무도 답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겨울이 되면서 옥상으로 향하는 철제문은 굳게 잠겼고, 우리는 더 이상 아지트에 갈 수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12살의 여름을 자주 떠올린다. 엄마 없는 집에 찬밥처럼 담겨있던 우릴 불러냈던 비밀 아지트를. 선선한 바람과 별과 달의 반짝임을. 옥상에서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나를 따라오면 달을 사랑했던 그때를.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모두 날 위해 존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날의 나를.
그 밤의 라면 맛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