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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준 Sep 19. 2021

사냥의 시간

해가 진다. 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윙-윙-윙-윙, 이륙을 하지 않은 채 만들어 내는 4초간의 진동, 대원들 모두가 신호를 이해하고 자신의 위치를 향해 날아간다. 천장, 화장대에 올려져 있는 휴대폰 위, 반쯤 열린 방문이 만들어 내는 틈새. 어둠 속에서 우리는 숙련된 사냥꾼이 된다. 자리 선점을 위한 산개가 끝나자, 대장인 나는 모두의 위치를 체크한다.
“2호…확인,  3호…확인,  4호…확인,  5호.... 5호 저놈은 왜 저기에 있어?” 외부에서 새로 들어온 5호가 자신의 위치인 서랍장 손잡이에 있지 않고 침대 옆벽에 붙어있다. 나는 재빨리 이륙하여 5호의 곁으로 날아간다.
“대장님, 대장님이 여길 왜?” 5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야 5호, 집중 안 하지? 침대 옆벽이 가장 위험한 거 몰라? 너 때문에 누구 하나라도 죽으면 책임질 거야? 빨리 서랍장으로 꺼져.” 엄한 호통에 5호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예 대장님” 짧은 대답과 함께 5호가 자신의 자리로 이동한다. 마음이 편치 않다. 바깥세상에서 동물들의 피를 빨며 살던 5호는 인간의 공간에서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툭하면 격자 모양의 방충망을 뚫고 나가려고 시도했지만 질긴 방충망은 그의 탈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힘들어하는 막내에게 항상 눈길이 갔다. 하지만 여긴 ‘전장’이고 지금은 ‘사냥의 시간’이다. 밖에서 들어온 모기이든 안에서 살고 있던 모기이든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리고 ‘침대 옆벽’은 가장 위험한 최전선이다. 수많은 동지들이 여기서 죽어나갔고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그들이 존재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벽에 남겨진 붉은 얼룩뿐이다. 아무리 어둠에 몸을 숨겼다 할지라도 목표물은 예민한 청력을 가지고 있다. 놈은 잠결에 우리의 비행 소리를 듣고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손을 뻗는다. 퇴로가 막힌 벽에서 인간의 손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목표물이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지옥도가 펼쳐진다. 기상한 목표물은 곧바로 전등을 키고 강렬한 전등 빛에 예민한 우리의 오감은 순간적으로 마비가 된다. 속수무책으로 전멸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침대 옆벽’은 가장 경험 많고 능숙한 대장들이 맡는 자리이다.
 



침대 옆 벽에 달라붙어 기어가며 최적의 강하 위치를 찾는다. 강하 위치는 목표물로부터 너무 가까워서도 멀어서도 안된다. 또한 주변에 몸을 숨길 만한 장애물도 있어야 한다. 꼼꼼한 수색 끝에 벽에 걸린 액자를 발견한다. 액자 틀 위에 올라선 나는 날개로 진동을 만들어 낸다. 윙-윙-윙-윙-윙, 약 6초간의 일정한 진동에 담겨있는 명령이 동지들에게 전달된다.  “강하 시작”
강하의 핵심은 날갯짓의 절제에 있다. 우리의 날갯짓은 큰 소음을 일으키기에 목표물이 알아챌 위험이 있다. 그저 공기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목표물의 뒤척임에서 오는 미세한 대기의 진동, 느끼기만 할 뿐 반응하지 않는다. 선풍기가 만들어내는 거센 바람, 차분히, 다시 중심을 잡으면 된다. 동요하지 않는다. 그렇게 부드러운 낙하를 하다 보면 어느새 적정 고도에 이르게 된다. 목표물의 표면에서부터 약 30cm, 날갯짓을 시작하기 위한 최적의 고도이다. 등 뒤쪽에 힘을 준다. 날개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초당 400번의 날갯짓에 다다를 무렵, 등과 날개의 이음새를 회전시킨다. 얇고 긴 날개들이 이음새를 따라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가속이 붙는다. 날개의 진동이 더욱 심해지고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나의 착륙 지점은 목표물의 손에 붙어있는 5개의 구조물 주변이다. (그들의 언어로는 ‘손가락’이라는 것 같다. 우리 모기들 같이 고등 생물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퇴화의 흔적이다.) 이 근방은 임무 성공 난이도가 매우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모험을 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쪽의 피가 특별히 맛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이곳에서의 흡혈이 목표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공략당한 목표물은 다음날 하루 종일 공략 부위를 벅벅 긁으며 가려워한다. 수많은 전우들을 죽인 놈의 괴로워하는 표정이라! 그것만큼 통쾌한 것은 없다.
 



5개의 구조물 중 첫 번째, 가장 짧고 두툼한 곳에 앉는다. 침으로 표면에 ‘X’자를 그어 표식을 남긴다. 선과 선이 교차하는 지점, 그 정중앙에 지금 당장 주둥이를 박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다. 마비 효과가 있는 독이 완전히 생성되지 않았다. (잠시를 못 견딘 한 모기가 섣불리 침을 박았다가 목표물이 뒤척거려 압사하게 된 이야기는 모기라면 장구벌레 시절에 지겹도록 듣는 이야기이다.) 독이 완성되자 주둥이를 ‘X’자의 정중앙에 지그시 올려놓는다. 그리곤 천천히 침을 꽂아 넣는다. 박는 것이 아니라 밀어 넣는다는 느낌으로, 얇은 인간의 피부를 뚫는 데에는 1초도 안 걸린다. 침이 피부를 완전히 뚫자마자 ‘뚝’ 소리와 함께 피가 주둥이를 타고 뱃속으로 들어온다. 비릿하면서 달콤한 맛 그리고 따뜻한 온도가 가히 환상적이다. 20초간의 짧은 포식이 끝나자 침을 뺀다. 쾌감에 몸을 더 맡기고 싶지만 과욕은 파멸을 부르기에 절제가 필요하다. 대원들 역시 아직도 피의 맛에 취해 헤롱거린다. 윙-윙-윙, 3초의 진동을 만들어 낸다.
“사냥 종료, 모두 복귀해라.”
모두가 방을 벗어나 본부인 주방 옆 베란다로 집합한다. 베란다에는 창고처럼 각종 물건들이 쌓여 있어 몸을 숨기기에 용이하다. 또한 환기가 되기에 인간들의 기습적인 화생방 공격에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높기에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본부’이다.
“2호…3호…4호… 5호, 5호는 어딨어? 4호! 5호 못 봤어?”
“아까 흡혈 끝나고 이륙할 때만 해도 같이 있었는데…죄송합니다. 중간에 놓친 것 같습니다.” 4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보고한다.
“전원대기, 내가 찾고 오겠다.”
해가 뜬 후 방안에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데려올 수 있다. 날개 회전력에 미세한 조정을 취한 후 최대한 바닥에 붙어 저공비행을 시도한다. 서랍장 사이사이, 책상 밑, 장롱 안 옷걸이 위… ‘혹시나 5호가 다쳐 구조를 바라고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온갖 구석진 곳을 찾아본다. 하지만 5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날 오후 대원들이 수군거림이 들린다.
“야 5호 어디로 갔을까?”
“아마 인간한테 잡혀서 죽었겠지. 생존력이 강한 놈은 아니었으니 이미 죽었을 거야”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는데?”
“인간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죽이는데? 요즘 인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전기파리채있지? 전깃줄이 격자 모양으로 그어져 있는 거 그거에 닿았으면 순식간에 타서 한 줌의 먼지가 되었을 거야. 먼지는 바람에 흩날리니 흔적이 안 남을 수밖에”
.”으.. 끔찍해."
“전기파리채 정도면 호상이지… 우릴 기절시킨 후 날개를 떼어놓고 고문하는 인간들도 있어. 인간이란 무척이나 잔인한 존재들이야. 재미로 다른 생명을 죽이는 동물은 세상에 인간밖에 없어.”
“잡담 그만, 떠들 여유가 어디에 있어? 내일 사냥 계획이나 세워.” 나는 단호한 한마디로 대원들의 입을 막는다.
5호가 죽었을지 살았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미 그의 시체는 휴지로 돌돌 싸매져 쓰레기통에 버려졌을지도, 아님 대원들의 말대로 한 줌의 재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 망할 격자 모양의 전기파리채 대신 방충망을 뚫고 밖으로 탈출하여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믿고 싶다. 아니 그래야 한다. 5호가 죽었다고 믿으면 우리는 그를 위한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고, 회의 중간중간 그의 존재가 문득 생각날 것이기 때문이다. 모기들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 어서 빨리 내일 사냥을 위한 작전을 세워야 한다. 아직 우리는 사냥의 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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