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3번의 연기
어떤 사람이 있다.
항상 다정하고, 말도 예쁘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도와주는 사람.
그 사람은 빠르게 신뢰를 얻고,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는다.
그런데 관계가 끝나고 나면
이상하게 공허하고, 허망하다.
“그 사람, 정말 나를 생각한 걸까?”
---
에니어그램 3번 유형은 ‘성과 지향형’ 혹은 ‘달성가’로 불린다.
이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태도를 빠르게 파악하고,
그 장면에 맞는 ‘버전의 나’를 꺼내는 데 능하다.
문제는 그 모든 다정함과 이해심이
‘필요해서 연기된 것’일 수도 있다는 거다.
공감이 결핍된 상태에서,
그들은 여전히 웃고, 도와주고, 위로한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상대의 감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한 도구일 수도 있다.
---
이중성은 여기서 생긴다.
상대는 공감받았다고 느끼지만,
정작 그 말은 전략이었을 뿐인 경우.
그리고 나중에,
그 사람이 사라지거나 돌아서면
남는 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적 공백이다.
---
나는 이걸
‘착한 사람의 그림자’라고 부른다.
착해 보였지만, 나를 위한 사람은 아니었고
다정했지만, 나의 마음을 본 건 아니었다.
그 관계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 진짜였는지,
아니었는지조차
자꾸 의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