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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불편하게 한 6번 그리고 나의 9번

평화주의자인 내가 느낀 불편함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진실

by CloudNine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싸움도 싫고 갈등도 싫었다. 모두가 웃고 화목하게 지내는 걸 보면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아마 그래서 나는 9번 유형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최근에 찜찜하고 불쾌한 일을 겪었다.



오랜만에 마음 맞는 지인들이랑 가족 모임을 하기로 했다. 우리끼리 오붓하게 즐거운 시간 보내려고 내가 표도 끊고 간식까지 챙기며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했었다. 그런데 약속 당일 지인 중 한 오빠 (그는 6번 유형이었다)가 우리와 아무 상의 없이 내가 생전 처음 보는 자신의 친구 가족을 부른 것이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이건 뭐지? 왜인지 모르게 찜찜하고 불쾌하지? 하고 내 감정의 원인을 분석해보았다. 우리 가족은 완전히 방치된 채 그 오빠랑 그의 친구 가족이 따로 노는 걸 지켜봐야 했다. 내가 애써 준비한 모임은 어느새 그들의 모임이 되어버렸다. 나는 불편했지만 내 본능인 9번처럼 '괜찮아'라고 말하며 애써 평화를 유지하려 했다.
그의 행동이 왜 그런 건지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그날따라 마음으로 포용이 되진 않았다. 그 뿐 아니라 다른 주변 6번들에게서도 비슷한 이기적임을 겪고 나니 한 번 터진 분노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나 혼자 모든 불편함을 감당해야 했던 그 상황이 계속해서 내 마음을 찔렀다. 나는 분노를 해소할 방법이 필요했고 그래서 나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 6번 유형이 왜 저런 선택을 했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내 감정을 뒤로하고 그의 행동을 객관적인 퍼즐 조각처럼 맞춰보기 시작한 것이다.



6번의 이기심이 아닌 불안이었다

나는 그의 독단적인 행동이 '통제'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6번 유형인 그는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을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 그에게는 베프가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어하는 상황 자체가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종의 위기였다.


그는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고 베프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적인 압박감에 휩싸였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모임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일단 친구를 불러 내 통제 하에 두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그의 행동은 나를 무시하거나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저 '불안'이라는 거대한 감정 앞에서 자신을 지키려 한 6번의 본능적인 몸부림이었다는 걸.




평화를 가장한 나의 자기중심성


하지만 그의 행동이 불안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음에도 내 분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9번인 내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내가 9번인데 왜 이 평화롭고 조용한 마음이 이렇게 시끄러운 거지?'


나는 곧 깨달았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불쾌함과 찜찜함 또한 결국은 나의 자기중심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나는 내면의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 갈등을 회피하고 모두가 조화롭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핵심이었다. 나는 지금 내 평화가 깨졌다는 이유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 그에게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왜 내 평화를 깨뜨렸는가?"라는 불만은 결국 "왜 네가 나를 불편하게 했는가?"라는 자기중심적인 외침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그의 이기심에 불쾌했지만 나 역시 나의 평온함을 지키기 위해 그의 행동을 이기적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가 사라진 순간


그랬다. 지금 이 순간 결국 아무런 이렇다 할 표현도 못 하고 뒷북 때리며 혼자 꿍시렁거리는 나의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을 돌이켜보니 내게 내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6번들 또한 그런 자신의 불안을 고치는 게 쉽지 않고 벗어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자신의 고착을 해결하지 못했으면서 타인이 고착을 벗어나 성숙해지길 바란 이기심이 결국 내 자신을 분노하게 했던 거란 걸 알게 되니 분노는 바로 사그라들었다. 평화는 단순히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 속에서도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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