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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화자 Apr 06. 2016

글 쓰는 할머니의 오늘 이야기(10) ​

친구와 데이트

감기 같은 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지난 가을에 예방주사도 신경쓰지 않았다.

교만했었나 보다. 재채기 몇 번 하고 지나가던 감기 기운이 이 번에는 떠나지를 않는다.

잔 기침이 나서 잠이 오지 않는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감기약을 삼 사일 먹었다. 어지러운 듯 기운이 떨어지고 입 맛도 없다. 뭘 먹을까? 먹고 싶은 것도 없다.  목이 잠겨서 말을 하기가 어렵다. 이비인후과에 갈까? 그러다가 점심을 밖에서 먹기로 한다. 친구를 부른다. '고향집'이 생각났다. 이름처럼 허름하지만 깨끗한 가정식 백반집이다.  남의 식구 종업원은 없고 가족들 끼리  가족의  밥상을 차리듯 밥 장사를 하는  집이다.  나물 철에는 산나물을 직접 뜯어오고 들기름 고춧가루 기본양념이 순수하다. 옥수수철에는 농사 지어 풋풋한 옥수수도 맛 보여 준다. 기름지고 화려한 음식보다는 소박한 것이 입에 맞아서 가끔 찾는다.  


  봄 꽃들이 활짝 피기 시작한 거리에 햇살이 따끈따끈하다. 걸어갈까 버스를 탈까. 친구한테서 전화가 온다. 12시 반쯤 지나서 갈께.

늦으면 자리가 없어. 한 시 지나면 밥이 없다고 할 때도 있어서...그제사 친구는허둥지둥 서두른 것 같다.

오늘 메뉴는 순두부와 나물 몇 가지 심심한듯 상큼한 깎두기 . 생콩을 직접 갈아서  만든 듯 순두부가 고소하다.


 내 친구 그녀는 나보다 몇 살 위일 것이다. 아마 일흔 일곱은 되었을 게다. 서울에서 살았다. 강남의 아파트가 재개발에 들어가서 한 삼년 고향에서 살다가 다시 서울 아파트로 갈 생각으로 춘천에 살러 온것이다.

환경이 바뀌어서 불편한 게 많다고 푸념을 한다. 고향은 그동안 변 한게 많고 생소하기도 할 것이다.  우린 어느새 칠십대 노파가 아닌가.

 그녀의 길고 마른 손가락이 완전히 늙었다. 어깨와 가슴이 쭈그런 든 내 친구. 자신감 없음인지 혼자 중얼거리듯 하는 말이 전달 되기전에 다시 입 안으로 기어들어 간다.


친구의 시어머니는  백세가  되신다.   경우 바르고 직장 나가는 맏 며느리의 아들들 키워주고 살림 하시고 그렇게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착하고 착한 이 친구는 빈틈없고 영민하신 시 어머니의 그늘에 눌려서 전전긍긍 허둥대기만 하더니 직장에서 퇴직한지도  한 십년은 지났고 칠십대 후반에 접어드는 요즈음도 그저 그 모양이다.

영민하시던 시니 께서는 노쇠 하고 자신도 따라서 늙어 버렸다. 여전히 서투른 살림도 부담스럽고 할머니가 되었는데 아들 둘 며늘 둘. 손자 손녀들의 어른 노릇도 버거워 보인다.

다음 주말에 시어머니의 백세잔치를 가족끼리 한다는데  자신의 화장품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를 묻는다.  늙고 소심한 친구는 여전히 소심한 채 자신감 없는 허약한 며느리이고 주부이고 시어머니이면서 할머니인 것이다.


서울에서 수십년 익숙했던 교통과 편의시설과 그밖에 생활 환경이 바뀌었으니 모든게 어눌하고 불편할 것이다. 동부시장 벨몽드 마트 풍물시장등 춘천에서 살려면 공부를 한참 해야 할 것 같다. 길 모르는 어린 같다.


남편이 얻었다는 그 아파트는 지은지가 오래됐고  춥고 교통은 불편하고 마트랑 시장도 멀다.  남편은 차를 가졌지만 많이 걸어 다니고 건강하다.  많이 움직여야  건강하다고 건강을 강조하면서 장 보러 가는 일을 잘 도와주지 않는단다.  하긴 이 친구 게으른 편이라기 보다는 소심하고 소극적이다. 남편의 무관심과 불친절이라기 보다는 건강하게 많이 움직이라는 배려일 수도 있다.

한 때 젊어서는 그냥 착하고  소심해서 그러려니 했다.  친구는 결혼도 잘 했다. 남편은 공무원으로 중앙부처에서 중견간부로 정년 퇴직했다. 부부가 연금 생활을 하고 기본재산도 넉넉하다. 교양 있고 살림 잘 하시는 시어머니가 두 아들도 잘 웠다. 며늘  둘과  손자 손녀도 고루 갖춰서 부족한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부족한 거 투성이고 아픈데도 많다. 넘어져서 다치고 우울증 처럼 마음이 아파서 입원을 하기도 한다.


친구들 중에는 자신감이 넘치고 부족한 게 없어서 부담스러운 친구들이 있다. 배려심도 없다. 과시하고 자랑으로 신이 나서 떠 벌이기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알고 보면 한 두가지  걱정은 끼고 산다.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랑도 허세도 한 때다. 그냥 내 앞 가림이나 하고 남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중간쯤 친구가 편한데 그렇게 똑똑한 친구는 곁을 주지도 않고 속을 잘 보여 주지도 않는다.

몸이 건강하고 정신력도 좋아서 의욕이 넘치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여행도 잘 다닌다. 사진도 찍고 sns 소통도 적극적이다.

전람회 전시회 잘도 찾아 다닌다.  모든 일에 스스로 앞 서 간다고 생각한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도 혼자 앞 서 간다는 자신감이 넘쳐서 하고 싶은 말도 상대방 배려 없이 하다 보니 상처를 주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 도취에 빠져서 우월감에 우쭐거린다. 알고 보면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고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은 포장으로 감춰지고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순박한 친구와 노회한 친구의 차이다.


 젊어서는 술 친구가 많아서 밤을 새워 술 마시는 일도 즐거워 하던  남편이 요즘은 친구들 모임에 도 안 나간다. 무디어 진 감성 탓에 대화는 즐겁지 않고 새로운 뉴스는 없다. 운동신경이 떨어지고 감각은  무디어 진 노인들이 밥 먹으면 할 얘기도 없단다. 엿날 얘기도 하면서 지나간 젊은 시절에  객기부림이나 무용담을 즐겁게 들어 줄 이가 필요한데 듣는이는 지루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도 멀어진다. 시간이 더 지나면 감각이 떨어져서 음식을 흘리고 기침을 하고 사래도 잘 걸릴것이다.

아아. 슬프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시대가 내 코앞에 다가오고 있다.


친구랑 점심을 먹고 나니 그다음 스케줄은 갈 데가 마땅치 않다. 기동력이나 있으면 교외로 드라이브나 갈 것이지만 ...

갑갑하게 화제가 군색한 늙은이 둘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으랴. 화장품 사러 백화점에 갈까? 영화를 볼까? 순박한 친구가 피곤한 표정을 한다.

햇살 좋은 봄 날이니 잠 깐 걷기라도 하자. 천천히 걸어서 수영장 쪽으로 간다. 약사천 근처 공원에 봄 햇살이 따끈따끈하다.

친구는  아쿠아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곧 개강을 하는데 오래 계속 할 것 처럼 말하지 않는다.

시작할   처음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하다보면

물과 친해져서 운동에 재미를 붙일 수도 있다.

그녀에게 필요한 의욕과 용기와 자신감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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