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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화자 Sep 16. 2021

글 쓰는 할머니의 이야기 44

황태. 신화자

황 태

 한 겨울에 황태축제가 열리는 인제군 용대 3리는 겨울 내내 안개가 끼지 않고 미시령 골짜기와 진부령 골짜기를 통해서 동해의 찬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황태가 눈이 모자라게 내 걸리는 황태덕장은 한 겨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옛날부터 황태를 많이 만들어 오기로는 날씨가 추운 함경도 지방이었는데 6.25 이후에 함경도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의 기후가 황태 만들기에 적합한 것에 착안하여 대규모 황태덕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요즈음 부쩍 우리 전통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황태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훌륭한 저장식품이었다. 동해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명태는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알은 명란 젖이 되고 내장은 창난 젖이 된다. 아가미는 소금에 절여 숙성시키면 아가미젓이 된다. 명태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다. 지느러미와 꼬리에 껍질까지도 숙취에 탁월한 효능이 있고 눈을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해서 명태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함경도 명천에 사는 태 서방이 처음 잡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명태는 얼리지 않았을 때는 생태요, 찬물에 사는 냉수어종이니 북쪽에서 왔다고 해서 북어로 불리고 동태는 얼어서 딱딱하고 말갛게 투명한 얼음 옷을 입었음이요, 북어는 말려서 저장식품으로 예나 이제나 손색이 없다. 

제사에서 으뜸은 포가 아닌가. 조상을 모시는 예물의 기본은 북어와 술이니 북어포에 한 잔 술이면 허물없이 조상을 찾아 뵐 수가 있다. 한옥을 지으려면 상량의 의식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북어였다. 집안의 무사 안녕 화복을 정성으로 빌 때에는 한지에 묶은 북어를 함께 올려 바쳤던 것이다. 비린내가 나지 않으니 액을 막고 흉사를 방비하여 길하고 복됨을 비는 예물로는 북어 한 마리를 당할 자가 없다는 믿음이었으리라. 놀란 가슴 아픈 가슴 덧난 가슴을 쓸어주고 풀어주고 가라앉히는 황태의 효험을 신앙처럼 간직하고 살아온 우리 민족이다. 명태는 바닷고기 중에 비린 맛이 적고 담백하여 오래전부터 사랑받고 즐겨 먹은 흰 살 생선이다. 누구나 좋아하기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명태 사랑은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동태는 이름 그대로 추운 겨울이 제철이다. 찬물에 사는 냉수 어종이니 배를 가르고 아가미를 꿰어 말리는 것도 겨울이요, 겉 몸에 얼음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박히는 동태의 계절도 겨울이다. 동태찌개는 한 겨울이라야 제 맛이 난다. 얼큰하고 담백하게 서민들의 추위를 녹이는 그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원양어업으로 북태평양 원양어선에서 러시아산 일본산 냉동태가 많아졌지만 황태는 오로지 우리만의 순수함을 고집한다. 이웃의 어느 나라에서도 우리의 황태를 모방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먹어왔고 또 가장 많이 먹어 왔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어묵이나 가마보꼬의 재료로 명태를 사용할 뿐이다. 

황태는 오로지 우리나라의 동해바다가 바라보이는 곳에서만 만들어진다. 햇볕과 거친 바닷바람을 쐬며 눈이 무릎까지 쌓이는 곳에서 땅의 기운을 얻어야 한다. 긴 시간을 얼었다 녹으면서 시련을 겪어야 탄생하는 황태는 인고의 세월이 약이라는 걸 몸으로 말한다. 찬 물에서 살다가 찬바람 쏘이고 얼음과 눈으로 말려진 황태는 오로지 우리만의 전통 먹거리다.

 한 겨울 용대리 황태덕장에 도열한 동태는 유리알 투명한 얼음 옷을 입고 하늘을 향해서 입을 벌려 겨울의 노래를 부른다. 황태가 되는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 한결같이 고된 훈련의 과정을 거치는 군사들인 양 얼었다 녹기의 수련과정을 거친다.

고단한 그 몸에 눈이 쌓이고 겨울바람이 불어서 얼음이 되고 햇볕에 녹았다가 바닷바람에 다시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마르는 동안 노르스름한 빛깔의 황태가 되는 것이다. 살을 저미는 고통의 순간들이 지나간 뒤에야 황태 살은 스펀지처럼 부드럽고 특별한 풍미를 내게 된다. 명태는 냉동창고 들어가지 않고 제철에 찬바람 맞아서 얼어야 한다. 그래야 황태가 제 맛을 낸다. 


 동해안에서 명태가 자취를 감추었다. 바다 환경이 바뀐 것이다. 

한국산 명태를 구경하기도 어렵다. 원양어업으로 또는 수입산 냉동태가 전부라고 봐야 할 것이다. 황태는 수입산 냉동태를 가지고 만드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명절에 황태를 찾는다. 

어물전에 한 줄로 꿰인 북어는 근엄한 표정으로 질서 있게 스무 마리 한 쾌로 싸리가지에 꿰어 개선장군처럼 도열해 있다. 바짝 마른 그의 모습은 머리끝부터 꼬리 끝까지 자존심 센 고집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다. 

황태를 방망이로 두드린다. 황태 살을 포슬포슬 부드럽게 하려면 알맞게 물을 축여야 한다. 바싹 마른 몸을 갑자기 세게 두드리면 먼지처럼 바스러진다. 자근자근 아프지 않게 두드려 줘야 한다. 나긋나긋 부드럽고 구수한 황태의 맛은 아픔을 견디고 참아낸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만고풍상 갖은 시련을 몸으로 걸러 빚은 황태의 맛은 긴 시간을 두고 곰삭은 맛이다. 황태는 한국인의 자존심이다. 토종 먹거리의 지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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