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화자 Sep 10. 2021

글 쓰는 할머니의 오늘 이야기 42

밤벌레

밤벌레

                                                                                        

                                                                                                         梅 苑. 신 화 자

  비탈 밭 밤나무에 아람이 벌었다고 아랫집 황 영감님 두 분이 번갈아 전화를 한다며칠 전에 심심한 남편이 알밤을 줍고 풋밤을 따오면서 밤나무에 밤이 많이 달렸더라고 했는데 며칠 사이에 아람이 더 많이 벌었나 보다지난여름은 장마가 언제 있었는지도 모르게 비가 안 왔다그렇게 이상하게 철이 바뀌는 환경 이변 시대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계절 바뀌는 것은 산과 들이 먼저다대추나무마다 줄에 꿴 듯 대추가 늘어졌다벼논에 익어가는 벼이삭도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밤을 심었더니 제법 굵은 왕밤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밤나무가 집 안을 들여다보는 게 싫었다집안을 어둡게 하는 것도 나빴다밤나무를 베면 사람이 다친다는 속설이 있었지만 용단을 내려서 밤나무를 베어 버렸다졸지에 기둥이 잘리는 비운의 밤나무가 섭섭하지 않게 굵은 밤 여남은 개를 비탈 밭에 심은 게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다그중에 제대로 열매를 보여 주게 자란 건 서너 그루다이제 그렇게 자란 아들 밤나무가 밤을 생산하기 시작한다비탈이라지만 완만한 경사에 햇볕이 좋아서 밤나무에 밤송이가 가득하다굵은 밤자잘한 밤유난히 붉은 밤같은 나무의 아들 나무들이지만 개성은 제각각이다가까운 곳도 아니라서 해마다 밤을 주워 가는 건 부지런한 나그네 들이다밤 풍년을 맞이해서 모처럼 올해는 때를 잘 맞췄나 보다

  밤송이는 때가 되면 입을 벌리고 열매를 떨어뜨린다아무도 곁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무서운 가시를 촘촘하게 두르고 있지만 때가 되면 스스로 문을 열고 잘 키운 자식들을 내려놓는다아직 때가 덜 된 밤송이는 입을 꼭 다물고 있다날카로운 바늘 가시들이 무섭게 위협을 한다밤나무에 올라 간 팔 학년 여덟 살 老軀(노구)가 노익장을 과시한다관운장이 신선이 되어 하강을 한 듯 흰 鬚髥(수염) 발을 휘날리며 청룡도를 휘두르듯 장대를 휘두른다오늘따라 노익장의 기개가 우러러 보인다행여나 밤송이들의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 멀찍이 물러선다장대를 휘두르면 밤송이들이 후드득 떨어진다나무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밤송이에 촘촘히 박힌 가시들은 똘똘한 알밤을 생산하고 지키겠다는 밤나무의 의지가 아니겠는가고슴도치나 바다 성게의 가시처럼 무시무시한 밤송이의 무장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밤벌레가 어느새 알밤 속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영악한 밤벌레의 탄생은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밤송이에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시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다게다가 껍질은 또 얼마나 단단한 갑옷인가밤을 지키겠다는 밤나무의 위세를 무시한 밤벌레가 이미 제집인양 알밤 속에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다배설물은 밖으로 내보내서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면서 터널을 만들고 그 속에서 밤을 먹고 자란다포동포동하게 살집 좋고 귀여운 어린아이들을 보면 밤벌레 같다’ 고 한다우수한 탄수화물과 비타민 덩어리라는 밤을 먹고 자라서 밤벌레는 뽀얗게 살이 올랐다살찐 몸을 주체할 수 없어서 데굴데굴 구르듯 몸을 움직인다징그럽다기보다는 귀엽다.

     미래의 인류 식량으로 식용곤충을 꼽는다사료비가 적게 들고 영양 만점이란다흔히 굼벵이라고 부르는 흰점박이 꽃무지 애벌레와 장수풍뎅이 애벌레그리고 귀뚜라미 성충을 농림축산 식품부가 내년부터 식품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메뚜기번데기백감장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갈색거저리는 식용으로 허가되어 식품원료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전문사육농가에서 사육한 갈색거저리는 이미 시장에 상품으로 나오고 있다는데 비타민 함량이 소고기보다 높고 맛은 새우깡과 비슷하다고 한다아직은 징그러운 모습 때문에 친숙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곤충들이 우리들 식탁에 자연스럽게 오르고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게 될 것 같다곤충 식품은 단백질 함유량이 육류와 비슷하면서 불포화지방산과 무기질 함유량이 많아서 육류를 대체할 수 있는 식품으로 꼽는다초등학교 손자는 갈색거저리를 사육하는 중이다과학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식용 곤충을 사육하고 있다새우깡 맛이 나는 식용곤충은 이미 우리들 주변에서 간식거리로 친숙해지는 중이다

     앞으로 세계 인구가 90억이 되면 지금의 두 배 정도 식량이 필요하다는 예측을 한다부족한 식량을 대체할 미래의 대체식량으로 곤충을 지목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인 듯하다이미 프랑스에서는 메뚜기와 개미 등 곤충 통조림을 만드는 업체가 있고 영국이나 미국의 식당에서는 꿀벌이 올려진 푸딩을 판매하고 있다니까곤충 식품에 대한 거부반응이 해소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인다. ‘세계는 지금 곤충 전쟁 중이라는 보도를 보면서 가까운 시일 안에 벌레들의 성찬을 밥상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의약품이나 보양식품으로도 곤충산업의 규모가 커질 것이다

과연 식욕이 생길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지만 이미 훌륭한 단백질 식품이며 보양식품으로 메뚜기와 누에 번데기를 즐겨 먹고 있다곤충의 애벌레에 맛 들인 이들은 땅벌장수 말벌 말벌의 애벌레도 보양식으로 먹고 있다들기름에 볶아서 고소한 맛을 즐긴다아직은 낯 선 벌레들이라도 차츰 익숙해지고 몸에 좋은 식품이라는 인정을 받으면 거부감 없이 그 맛을 즐기려 할 것이다언젠가는 오동통 살찐 밤벌레가 식탁에 오르지 않는다고 누가 단정적으로 말할 수가 있으리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