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역사(1961), 미셸 푸코

by 봄눈

이 책의 원제는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Histoire la folie a l'age classique>이다. 푸코는 이 책에서 16세기부터 20세기 까지의 광기에 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있다. 광기의 역사에서 중요한 두가지 사건은 1656년 파리에서 6,000명에 달하는 범죄자와 광인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한 '대감호'의 사건과 18세기에 광인들만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정신병원이 만들어진 사건이다.이 두사건을 거쳐서 격리와 수용의 과정을 거쳐서, 비이성적인 것일 뿐 질병이 아니었던 광기가 질병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p.21, 오생근, 해제)


옛날에 광인은 그냥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았다고 한다. 가끔 배를 태워 자기들끼리 세상을 빙빙 돌게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나병환자를 격리 수용하던 곳에 광인과 부랑배들을 수감하기 시작하면서, (아마 도시가 생겨날 때쯤이었다면 사람들이 몰려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노동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능하게 되기 시작하면서 광인은 '타자화'되었다.


인간이 오류를 진리로, 거짓을 현실로, 폭력과 추함을 아름다움과 정의로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p.79

속박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폭발이 일어난다. 니체 이후에 우리는 이 폭발을 목격하고 있다. p.86

인간의 정신은 그 유한성 때문에 고귀한 빛의 섬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둠의 조각이다. p.88


이 책은 중세 유럽에 나병환자를 격리시키기 위한 수용소가 있었음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중세 시대에 나병환자는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여지지기도 했다. 그 시대에는 인간은 죄를 지어서 세상에 태어난 존재였으므로 현세에서 크게 고통을 받으면 속죄가 되고 천국에 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이 끝나면서 나병 감염의 근원지인 근동 지방과의 접촉이 없어져서, 나병 환자가 없어지면서, 수용소는 사라지거나 텅 비기 시작했다. 텅 빈 수용소는 성병 환자들을 격리하는 장소가 되었다가 성병 환자들이 의료행위의 대상이 되면서 구빈원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중세에 ‘갑자기’ <광인들의 배>라는 문학적 개념이 등장한다. 광인들은 이 배를 타고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옮겨 다니고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Bosch라는 화가는 <광인들의 배>라는 그림을 그렸다. 중세 말에 불안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광기는 이성의 한 종류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성이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광기가 차지하는 듯했다. 그러나 구빈원 등에 광인이 수용되면서 광인은 더 이상 두 세계를 연결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사회 자체에서 나온 사람,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17세기에는 구빈원이 빈민으로 가득 차고, 도시에서 구걸이 금지되었다. 구걸하는 사람은 도시 밖으로 추방당했다. 그러면서 수용에는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지는데, 즉 그 시대에 일어난 산업화의 노동력을 제공해주기도 한 것이다.

<광기의 역사> 책표지

아담의 타락 이래 노력-징벌에는 회개의 가치와 대속력이 부여되어 왔다. 인간으로 하여금 일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저주의 결과이다. p.153

타락 이전에는 오만이 인간의 죄였지만, 무위도식의 죄는 일단 타락한 인간이 내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오만, 비참에서 기인하는 가장 우스꽝스러운 오만이다. p.155

르네상스 시대까지 광기에 대한 이해 방식은 상상계의 초월적인 존재가 광기를 통해 드러난다는 생각과 관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고전주의 시대부터 역사상 처음으로 광기는 무위도식에 대한 윤리적 단죄를 통해 인식되고… p.157

가난의 근원은 물품의 부족이나 실업이 아니라 “규율의 약화와 풍기의 문란”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적시되었다. p.158


광기가 초월적인 존재의 드러남으로 여겨지다가 데카르트의 '이성' 개념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광기는 이성의 반대인 '비이성'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광인의 이야기는 아무도 귀기울여 듣지 않게 되었고, 경제 생산을 하지 않는 사람은 가치없게 취급되었으며, 광인이 가질 수 있는 이성의 틈으로서의 역할을 철저히 무시된다.


모든 광기는 어떤 혼란된 성적 욕망에 뿌리를 둔다. 그러나 이것의 의미는 고전주의를 특정 짓는 선택을 통해 우리 문화가 성적 욕망을 비이성의 분할선 위에 놓아두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p.180

어느 날 에스파르 후작부인은 자기 유산의 이익에 반하는 애정관계의 기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남편의 금치산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p.183

자살은 오랫동안 범죄와 신성모독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실패한 자살은 죽음으로 응징하게 되어 있었다. p.188


광기는 그 자체로 정의내려진 적이 없다. 항상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것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존재해왔을 뿐이다. '이성'이 주류인 사회에서는 비이성으로, '정상성/건강'이 주유인 사회에서는 질병으로 취급되어졌을 뿐이다. 지금 광기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으로 인식이 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의학(과학)의 잣대로 인간을 재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광기는 영원한 '추문'일 뿐이다.


… 회의주의였다. “사리를 잘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 전체는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고, 우리의 인식은 바보짓일 뿐이며, 우리의 확신은 가공의 이야기일 뿐이다. 요컨대 이 세상 전체는 소극이나 영원한 희극일 뿐이다.” 감각과 광기를 확실하게 구별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p.196

광기의 사실 여부를 결정하고 광인을 격리시킬 수 있는 것은 의료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추문에 민감한 의식이다. p.238

(정신이상자들) 이 여자의 생각에 의하면 결혼은 본질적으로 한 차례의 시도일 뿐이다. p.251


광기에 대해서 인간 사회는 파편화된 상태, 분산 상태로만 논의해왔다. 근대에서도 '정신병'은 차분하고 객과적인 용어들로만 말하고 '병리학'과 '박애'가 혼합된 의미를 통해 광기의 '비장한' 가치들을 말소(p.292)시키려고 한다. 다음 4가지는 광기에 대해서 끈질기게 다시 일어나는 의식형태들이다.


(1) '광기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합리적인 것, 반성적인 것, 도덕적인 것을 바탕으로 광기를 알아본다. (p.292)

(2) '광기에 대한 실천적 의식' 집단 생활과 규범 속에서 일어나는 구체적 현실이다.

(3) '광기에 대한 언술적 의식' '저사람은 광인이다.'라고 단순하게 말하면서 선을 긋는 행동

(4) '광기에 대한 분석적 의식' 광기의 현상과 원인을 파악하려는 의식, 객관적 앎의 가능성을 밑받침한다.


광인과 부적응자를 그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격리와 수용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치료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는 변화가 생겼다. 1600~1700년대 의학서에 광기가 다양한 병으로 분류된다. 처음에는 정념, 울혈, 습기 등으로 광기의 원인을 찾으려 했고, 현대의 시각으로는 어이없는 치료법이 사용되었다. 광기가 자면서 꾸는 꿈과 연관되기도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이후에야 광기를 광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광인을 환자로 바라보게 되는 시선이 생겼다. 프로이트의 이론 자체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프로이트가 세상에 끼친 영향은 대단히 큰 것 같다.


그리고 신경질환을 특징짓는 병리학적 인접성은 그 감정의 고조일까, 아니면 그 조직 간 물질의 더 광범위한 이동성일까? p.475

무분별이었던 것은 무의식 상태로 간주되고, 오류였던 것은 결함으로 취급되며, 광기에서 비존재의 역설적 발현을 보여주었던 모든 것은 도덕적 죄악의 자연적 징벌이 될 판이다. p.479

심지어는 물이 액체로서의 효력을 잃고 건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p.508

여행은 이처럼 관념의 흐름에 직접 작용하거나 또는 감각만을 통과하기 때문에, 적어도 더 직접적인 경로를 통해 작용하는 추가적 이점을 갖는다. 다양한 풍경은 우울증 환자의 완고함을 없애준다. p.513

치료의 원리는 진실의 현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동의 규범에 있는 것이다. p.516


1700년대 후반에 인권 선언등이 이루어지면서 광인의 수용에도 제지가 생긴다. 광기가 이성이나 질서의 관점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라는 관점에서 고찰된다.

<광기의 역사>를 통해서 현대에는 약물 치료를 하는 병으로 인식되는 광기가 과거에는 악마로, 담즙으로, 혼돈으로 이해되었던가를 읽으면서,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는 지금도 약간은 광기가 그렇게 비이성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이성으로 해결이 안되는 어떤 가치있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 둘째는 지금 마치 광기처럼 비이성적으로 여겨지는 미움이니 사랑이니 하는 감정도 앞으로는 분류되고 구분되어, 지금의 광기처럼 합리적인(?) 약물로 대응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먼 미래에 지금 이 시대를 서술하면서, 저 시대에는 미개한 인간이 감정을 요소로 구분해 내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저렇게 휘둘리면 살았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점이다.


<광기의 역사>라는 제목부터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역사를 주로 다룬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에 대한 역사는 많이 적혀있지만, 우리에게 쓸모없고 나쁜 것에 대한 역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도둑의 역사, 살인의 역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랑의 역사는 있지만 질투의 역사, 반역의 역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다.

그런데 푸코는 우리 모두가 가치 없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광기를 역사로 되짚었다. 그 이유로 첫째는 푸코가 광기를 가치 있고 훌륭한 것으로 여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광기 자체가 이성과 과학의 칼날이 휘둘리는 사회에서 인간의 어떤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둘째는 안티테제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그 사회의 테제, 즉, 그 사회가 무엇을 중시하는 사회였는지를 좀 더 뚜렷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광기, 감금 등을 연구한 것이다.

푸코의 글은 그 내용 자체보다는 글을 쓰는 방식,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하던데, 이 책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생활 습관, 굉장히 사소한 문건에 대한 아주 자세한 기술 등을 통해서 과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즉 무언가 새로운 방식으로 쓰였다고 보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