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진보(2023), 대런 애쓰모글루

by 봄눈

어떤 일을 할 때 방향성이 중요하다.


이 책의 설득하는 글쓰기 방식이 매우 정형적이다. 책의 맨 앞에 설득권력의 중요성을 자세히 설명한다. 설득 권력의 중요성에 동의하지 않으면, 즉 사람이란 존재는 남에게 설득당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철저히 따져서 행동하는 존재라고 믿으면 이 책의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권력과 기술이 연합하여 막대한 설득 권력으로 작용한다는 것, 그 대전제를 바탕으로 모든 논의가 전개된다. 이러한 대전제 후에는 설득 권력이라는 개념으로 역사적 흐름을 설명한다. 설득 권력은 평민의 편이 아니었으며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특정 논리를 선전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기술의 독재를 막기 위해 일반인들은 길항 권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 빌드업을 하는 구조이다. 즉, 앞에서 한 얘기를 뒤에서 또 하는 구조이다. 이 책의 막강한 빌드업 기술을 배우는 것은 글쓰기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독서 토론에서 우리는 논의를 설득 권력으로부터 시작했다. 설득 권력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선생님은 설득 권력의 특징에 대해서 물으셨다. 내 생각에 설득 권력은 민중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생긴 권력인 것 같다. 왕정 시대나 중세 시대에는 설득은 필요 없었다. 왕이 하라고 하면 하는 거였다. 그런데 투표권이 생기면서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설득 권력이라는 것이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설득 권력은 왕권보다 더 무섭다. 왕권은 누가 시켰는지 알고 잘못됐을 때 누가 책임인지를 안다. 그러나 설득 권력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특히 개인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에는 더더욱 그렇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 사람들은 어디서 들었다고 하면서, 설득 권력이 있는 양 확신에 차서 근거 없는 말을 전파한다. 사람들은 그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저절로 믿게 된다. ~라고 하더라, 하면서. 이러한 개인 미디어의 시대에는 근거 없이 말만 번드르르한 사람이 대중을 우민화시키기 더 쉽지 않을까 한다.

저자는 설득 권력의 예로 파나마 운하를 건설한 레셉스의 이야기를 가져온다. 그의 성공의 경험, 자신감 등이 자본가들로 하여금 그에게 설득을 당해서 돈을 투자하게끔 했다는 것이다. 즉 레셉스는 설득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으나, 그의 사업을 실패로 돌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큰돈을 잃었다. 즉, 설득 권력을 가진 사람의 말이 모든 사람에게 번영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예이다. 한편, 남을 설득시키기보다는 자신이 철저히 현장에서 직접 실험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검증한 인물로는 철도를 발명한 스티븐슨의 예가 나온다. 영국 산업 혁명의 성공이 중간계층 사람들의 발전에 대한 열망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의 힘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철저한 실험과 현실적인 탐구의 일화들이 모여서, 영국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냈다.

스티븐슨과 산업혁명 기대의 발명가들의 삶의 자세와 자긍심은 유럽 사회에는 여전히 계승되고 있는 것을 독일인과의 대화에서 알아낸 경험이 있다. 그 독일인은 대학에 가는 것이 독일에서는 실제로 봉급의 향상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고, 대학에 가는 것이 더 많은 기술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대학에 가지 않고 20살부터 높은 봉급을 받아 차도 사고 집도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안정적이다. 이러한 산업혁명의 정신은 이어받지 못하고 산업기술의 결과만 수입한 우리나라는 산업 기술도 '학문'의 하나로 보고 실제적인 탐구와 실험은 없는 학벌만 추구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런 애쓰모글루

책의 중반부에서부터는 현대 사회에서 설득 권력을 통해서 기업들이 이윤을 착취하는 경우를 여러 가지 예로 보여주고 있다. 7장에서는 정규직에게 비정규직으로 바꾸면 연봉을 높여주겠다고 말하면서, 그 직책을 비정규직으로 채워가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경향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SAP(스웨덴 사회민주 노동자당) 등이 대규모 해고 금지, 산별적으로 이루어지는 노조와의 협상 등을 시도했다. 스웨덴의 기업계는 이러한 코포라티즘(Corporatism) 모델을 반대하다가 1938년에 살트셰바덴 회의에서 협상을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노조보다는 익명게시판을 많이 쓴다고 한다. 이는 책에서 나온 개별화된 소비자를 하나로 묶는 아마존 노동자 단결 방식이 생각나게 했다.

8장에서는 기업들이 주주 제도를 활용해서 기업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 수많은 주주를 위한 활동이 되도록 하여 설득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프리드먼 독트린에서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강력한 설득 권력이 되었다. 또한 사장이 아닌 전문경영자를 내세워서 기업의 이윤 추구를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것으로 보이게 했다. (지주와 마름의 비유를 쓴다면 경영학과는 마름학과로 부를 수 있겠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또한 취직률이 낮으면 이익을 얻는 집단이 있는가? 있다. 기업들. 낮은 임금으로 고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언급되었다.

9장에서는 ‘기계 유용성’, 즉 '기계가 얼마나 인간에게 도움이 될까?'가 연구 개발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인간을 보완하기보다 인간 등가에 도달하는 것을 진보의 방향성으로 삼으며, 이는 노동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기업과 부합한다. 기술의 발달도 기업에 이윤을 더해주는 분야에서만 발달한다. 예를 들어, 요양보호사가 힘든 일이고 AI가 도와주면 좋은데, 임금이 낮아서 고용하기 쉽기 때문에 최신 기술은 요양보호사를 위해서는 개발되지 않는다. 임금이 높은 변호사나 의사를 대체할 개발이 더 많이 이루어진다는 지적은 매우 날카롭다.

10장과 11장에서는 페이스북이 사람들이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성향을 타깃으로 해서 성장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광고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즉 특정 광고의 타깃을 선별하는데 사람들의 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자기 정보를 스스로 올리게끔 '좋아요' 버튼을 만들었다는 것은 충격적인 내용을 설명했다. 온라인 민주주의는 테크기업의 사업 모델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장에서는 건강한 시민의식을 담은 내러티브가 발달하면, 그런 내러티브 안에서는 무임승차를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러티브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내러티브라는 개념은 다른 학자에 의해 '소셜픽션'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은 내러티브이고, 소셜 픽션이고, 설득 권력이라는 셈이다.

다운로드.jpg 페이스북의 '좋아요' 기호


스웨덴을 제외하고는 이제까지 부의 평등한 분배는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노동력이 부족했던 미국이나 독일, 시장의 확대가 무한정으로 컸던 미국이나 혹은 산업발전 초기 시대 등에 부의 분배가 이루어졌다. 즉, 생산성 밴드 왜건 효과가 가능하거나 노동자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상의 유리함이 없었더라도 길항 권력만으로 부의 분배는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어쨌든 저자는 경제적으로 부의 분배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오기를 기대하지 말고 길항권력을 일구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길항 권력을 모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설득 권력이라는 것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다.

한편, 이 책에서 얘기하는 중세시대의 교회와 같은 권력을 지금 기업이 누리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현대 사회의 정부는 기업을 위해 댐을 지어 주고 송전탑을 세워준다.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 건물을 지었듯이 기업도 서로 높은 건물을 짓는다는 관찰은 날카로웠다. 교회를 지탱하던 것은 종교였다. 죄를 지어서 세상에 태어났고 속죄를 해야 천당에 갈 수 있다는 신앙을 바탕으로 교회는 권력을 누려왔다.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을 바탕으로 우리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걸까? 가시적으로는 돈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돈보다는 현대인 사이에 뿌리 박혀있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를 바탕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닐까? 성실하게 개인의 힘으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런 성공이 가치가 있다는 믿음. 기업은 성실한 사람들이 땀으로 일군 거대한 그룹이다. 그러므로 군림할 수 있다. 두 번째 사이즈에 대한 믿음. 대량생산과 커다란 것이 유리하다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믿음. 특히 '외국'과 경쟁하려면 사이즈를 키워야 한다. 대량 생산이 효율적이다,라는 믿음. 우리에게 심어놓은 이 두 가지의 무의식을 바탕으로 기업은 사회의 존중받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 같다.

인공지능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는 현재에 많은 질문이 생겼다. 인간에게는 행복이 중요한가, 아니면 주권이 중요한가? 가까운 미래에 AI가 굉장히 발달하면 사람들은 똑똑한 AI에게 통치를 시키고 우리는 편하게 살아도 된다는 설득 권력에 설득될 것 같다. 현명한 왕(AI)이 통치한다면 우리가 골치를 썩이면서 나아갈 바를 회의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 시간에 즐거운 여가 생활을 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좋은 게 아니다.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그러니 올바른 통치를 AI에게 맡기자. 바로 이런 설득 권력에 설득될 것 같다. 그리고 설득된 자들은 행복한 '생명 기간'을 누릴 것이다. 이제는 AI가 시각 및 청각의 지각능력이 상당히 정확하게 나오므로, 외부 세계의 상황적, 감정적 대처에도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기에 설득 권력을 지닌 기득권자들이 AI에 대한 어떤 설득을 펼칠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내러티브를 바꾸고, 길항권력을 기르고, 실질적 정책 구상을 한다!!



<권력과 진보> 책표지


< 정리 >

저자의 지속적인 주장은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쁘게 발전하는 방향성이 없다, 발전의 방향성을 지정하는 것은 모두 인간이다, 기술의 발전을 그대로 놓아두면 데이터와 자본을 가진 사업가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이미 가지고 있는 권력을 더더욱 강화하기 위해서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이끌고 갈 것이다, 이다. 그래서 산업의 규모 자체가 확대되어 생산성 밴드왜건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길항 권력을 만들어내어 테크놀로지의 발전 방향을 모든 계층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야 내는 수 밖에는 인류 공존의 길이 없다는 주장이다.

현대 사회의 설득 권력은 왕권보다 더 무섭다. 내가 가진 신념의 근원을 나조차도 알 수 없는데도 모두 그쪽으로 따라간다. 나도 테크놀로지 시대의 인류는 자연스럽게 두 계층으로 나누어져서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테크놀로지 발전의 결과라고 어디선가 주워듣고 그런가 보다 하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시나리오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퍼뜨린, 그런 이론을 퍼뜨리는 사람조차도 그 이론의 원천을 모르는, 지배층에 유리한 가설에 지나지 않았다니, 무섭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상황에 대해서는 나도 배우는 수밖에 없는데, 배운 것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이 설득권력의 시대인 것이다.

배운 것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니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인가를 배우면 그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의견을 구하고, 토론을 하고, 그렇게 해야 하나보다. 그런데 의견을 공유하려면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신뢰가 없으면 토론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의견 공유의 장이 필요하다고 쉽게 말하는데, 그전에 신뢰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신뢰가 쌓이려면 저 사람이 하는 행동을 매일 내 눈으로 봐야 한다. 함께 살아야 한다. 아직은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회가 서로를 신뢰하게 만드는 길은 어디에서 출발할까?

그래도 희망적인 결론은 내러티브를 생성하는 방법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시민교육도 있지만, 영화를 만들고, 책을 쓰고, 연구 조사를 하는 모든 행동들이 내러티브를 형성해 가는 일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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