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선생님 강연 요약

(2024.11.)

by 봄눈

늦은 가을에 괴테 전공자인 전영애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러 여백서원에 갔다 왔다. 선생님의 강연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여백서원은 약 3200평 땅에 지은,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이다. 나(전영애 선생님)는 공부하려고 남아프리카 푸에르토리코까지 갔었다. 너무나 듣고 싶은 강연을 거기서 하니, 그 강연 들으러 갔었다. 공부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갔다. 그래서 여권 5권에 빈틈없이 입출국 도장이 찍혔다.

KakaoTalk_20250105_204447934_02.jpg 전영애 선생님 작업실 겸 서재

나는 재산은 없는 책상물림 영남반가 출생이다. 국립대학에서 근무하면서 연구를 대충 할 수는 없고, 어디 학회에 가서 국립대 교수가 이것밖에 못했다는 말을 들으면 안 되니까 연구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젊어서는 독일의 다른 문인을 연구했고, 종착점으로 괴테를 연구했다.

KakaoTalk_20250105_204447934.jpg 전영애 선생님의 서재 외관

나는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글을 쓸 방 한 칸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가 집 한 채를 추천해 주어서 250만 원 주고 집 한 채를 샀다. 그런데 그 집 주변 마을 근처에 있는 이 땅이 좋다고 해서 덜컥 이 땅을 샀고, 십 년 동안 빚더미 위에 앉아있었다. 그때 산 땅이 이것이다. 나는 이 땅에 서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 서원이 없어져서 한학이 다 죽었다. 그래서 상징적으로라도, 관광지로서가 아닌, 내용이 있는 서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한옥은 주문을 하면 다른 곳에서 구조물을 다 만들어 와서 2주면 끼워 맞출 수 있는데, 이 한옥은 1년 2개월이 걸렸다. 왜냐하면 지을 돈이 없어서 한옥 건축가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한옥 건축가가 여유가 되거나 지나가는 길에 들려서 하나씩 지어주니 그렇게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이 한옥에 많은 방문객이 다 들어가 앉을자리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

여백서원에서는 외국 학자도 공부만 하면서 2개월은 살 수 있도록 계획 중이다. 그렇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장소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건물을 지을 돈이 없어서 ‘괴테의 집’이라는 팻말만 세워 두었는데, 지나가다가 팻말만 본 어떤 사람이 1억을 주었다. 그래서 ‘괴테의 집’을 지었다. 괴테는 새벽부터 1시까지는 혼자 공부를 했고, 오후에는 정치를 했고, 저녁에는 연극을 만드는 삶을 살았다. 괴테가 일생 동안 어떤 문제를 만나서 어떻게 나아갔느냐 하는 내용을 ‘괴테의 집’(여백 서원 안에 있는 건물의 이름)에서 다루고 있다.


"소망이란 내 안에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괴테)


나의 엄마는 만 14세에 시집가서 종부로 살았는데, 부엌일 하는 사람 1명밖에 없이 평생 그 많은 식솔을 다 먹여 살리셨다. (여백 서원 한옥집 한가운데는 선생님의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오신 손글씨 글이 매달려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인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가 흰 버선 안 신은 것을 못 봤다.

KakaoTalk_20250105_204447934_01.jpg 전영애 선생님의 어머니가 시집올 때 써오신 글

아버지는 12세에 결혼하셔서 소학교 다닌 후에 일본 유학도 가셨다. 62세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30년 혼자 사시다가 91세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킬리만자로 세계 두 번째 최고령 등반자이다. 산행기를 쓰셔서 책도 내셨는데, 산행기 속편은 출판되지 못하고 원고지 그대로 남아 있다. 한학 공부를 하시면서 증조부가 공부하신 한학을 해석하고 주를 달아 남겨놓았다. 자신이 주를 달지 않으면 아무도 이것을 이해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모두 정리해 놓으셨다. (그 원고가 여백서원 방 한구석에 보자기에 싸인 채 그대로 놓여있다.)


한 번은 독일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데 같은 칸에 탄 사람에게 독일어로 길을 알려주었더니, 그 옆에 있던 신사가 스튜트가르텐에서 어딘가를 들르라고 했다. 그런데 어딘지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기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독일 어느 도시로 강연하러 갔는데 어떤 모르는 독일 할머니가 과일을 쟁반에 놓아서 갖다 주면서,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가보니 기차에서 만난 신사네 집이었다. 그 집에 하루만 있기로 하고 갔다가 일주일이나 있었다. 그분들이 집에 오래되고 중요한 독일어 책의 판본을 많이 가지고 계셔서 놀랍기만 했다. 그분들을 만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학교로 어마어마한 소포가 배달되어 있었다. 그분들이 한국으로 괴테 동서 시집 초판본 등 소중한 책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런 책들이 괴테의 집에 전시되어 있다.)

KakaoTalk_20250105_204447934_03.jpg 여백서원 괴테의 집 안에 있는 오래된 책상

한 번은 내가 독일의 어느 펀딩을 받아서 어느 연구하는 건물에서 1년 동안 조건 없이 있을 수 있게 되었는데, 나는 한국에서 일을 해야 하니까 2개월씩 5년을 그곳에 가서 공부했다. 그곳에 가면 노벨 문학상 받은 사람이 옆방에 거주하고 그랬다. 거기서 공부하면서 책이 9권이 나왔다. 또, 내가 이제까지 쓴 책 16권이 다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후기만 복사해 두고 싶었다. 그렇게 후기만 모아서 만든 책이 <맺음의 말>이란 책이다.

여백서원에서 좋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전시도 하는데 우리는 금액이 많이 드는 액자는 하지 않는다. 어린이 도서관은 차고를 개조해서 만들었고 24시간 열려있다. 괴테 마을과 공동체 정원에서는 모임이 있는 날이면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본 사람들과 뭐 그렇게 할 얘기가 많은지 밤새도록 얘기를 한다.


‘호기심은 전율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시며, 전영애 선생님은 강연을 마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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