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2024.10.15.
성파 선예禪藝 스님은 산속에서 침묵 속에 옻칠을 한다. 하루 종일, 일생을 들여서 한다. 전시장 안의 동영상을 보면 고요하고 깨끗한 산속에서 스님이 옻이라는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이 나온다. 옻이라는 재료는 몹시 까다로워서 그림에 사용하기 전에 다루기만 하려고 해도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되는 일로 보였다.
옻으로 그린 그림은 처음 보았다. 옻이라는 소재 자체가 매우 낯설다. 새까맣고 반짝반짝 광택이 나며 단단하다. 코팅도 플라스틱도 아닌 낯선 소재다. 태초(Origin)라는 이름의 첫 번째 전시실은 암흑 속에 검게 옻칠된 여러 개의 나무 기둥이 말없이 서 있는 검은 방이다. 방 자체가 검은색이고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처음에는 나무 기둥의 모양조차 잘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 침묵 속에서 나무 기둥 표면 검은색의 유려한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유동(Fluid)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전시실에서는 화려한 옻과 물감의 문양이 한지에 포착되어 나부낀다. 옻이 물과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하여, 색색의 옻을 물 위에 띄워 종이로 찍어내는 방식으로 만든 작품들이다. 검은 인생 속 아름다운 찰나의 포착이다. 검은 나무 기둥의 방을 지나서 다다른 방에 있는 작품이라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뒤따르는 전시실들에는 섬세한 산수화도 있고, 호랑이와 모란 등을 그린 화려한 민화도 있다. 그림의 모양은 평범한 한국화인데 그 재료가 옻이라서 모두 표면이 단단하고 반짝반짝해서 강렬한 느낌을 준다. 물감도 아닌, 포스터도 아닌, 플라스틱도 아닌 독특한 느낌의 그림이다.
물속의 달(Invisible)이라는 마지막 전시실, 역시 옻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심연과 그 속에서 피어올라오는 점점이 화려한 색채들을 표현하는 거의 유일한 물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까맣고 거대한 옻 표면으로 화려한 금색이나 다채로운 색깔이 떠오른 모습이다.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었는지 방법을 알 수 없어서 더 신비롭게 보였다. 마지막 전시실에 있는 검은 옻 작품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그림의 표면에 번들거리는 형광등 불빛만 사진에 남을 뿐, 그 검은 심연은 포착이 되지 않았다.
옻칠은 칠 자체가 반복적이고 까다롭다는데 이렇게 반들반들하게 칠을 하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긴 시간과 노력과 기술이 들어갔는지를 알면 아마 이 그림들 앞을 떠날 수 없을 정도로 감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