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1944), 해제, 3장 ~ 5장

요약과 단상

by 봄눈

The Great Transformati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s of Our Time(1944)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적 기원

칼 폴라니 지음


옮긴 이(홍기빈) 해제

폴라니는 칼뱅주의 유태인 가정에서 자랐다. 학생 시절에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서클을 조직하기도 했다. 아버지 사망 후, 1차 세계대전 참전 중 폐결핵에 걸려서 빈으로 망명한다. 폴라니는 기능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는데 집단마다 모임을 만들어서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치즘 때문에 영국 망명 후 산업혁명의 피폐성을 보고서는, 파시즘의 기원도 시장자본주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940년에 미국으로 이주해서 3년간 '거대한 전환'을 써서 1944년에 출간했다. 1957년 '초기 제국들의 교역과 시장'이라는 책에서 경제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는데, 실체적 정의는 인간이 물건을 조달하는 행위이고, 형식적 정의는 인간이 돈을 아끼는 행위를 말한다고 서술했다. 이 중 첫 번째 정의가 실체적인 것으로 더 중요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자유방임주의이고, 사회주의는 정부의 많은 개입을 주장하는데, 폴라니는 둘 다를 거부하고 오스트리아 학파의 '한계효용' 부분만 인정했다.


<거대한 전환> 책표지


Ⅰ. 사탄의 맷돌

제3장 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

18세기 산업혁명에서 기적에 가까운 생산이 이루어진 반면 사람들의 삶이 망가졌다. 공동체를 파괴할 만큼의 변화는 그때까지는 저지되어 왔고, 그 속도를 조절해 왔는데, 시장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자생적으로 조절이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생겨나면서 사람들이 공동체를 보호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사회에 생긴 사고를 경제라는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오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튜더 왕조 때 벌어졌던 종획운동이다. 튜터 왕조 시대의 종획운동(Enclosure: 공유지에 갑자기 울타리를 치고 양을 키워 사유지로 만든 것. 이전에는 공유지에서 이윤을 얻는 농민이 있었는데, 영주들이 이런 사람들을 쫓아낸 것.)은 가난한 농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부자들의 반란이었고, 부자들이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면서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이득을 위해 사회적으로 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 당시 지배층은 여겼다. 그리고 관련 농민 반란은 모두 진압되었다.

100년이 지난 후 똑같은 일이 다시금 벌어졌는데, 왕과 농민을 보호하는 보호 법령은 쓸 데가 없었다. 하지만 쓸데없었다 하더라도 보호 법령이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데는 성공했다고 인정해야 한다.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수도 있고, 이런 법령마저 없었다면 종획운동의 양상이 파멸적일 만큼 가속화되어서 사회 전체가 퇴락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사건을 판단할 때 과거의 사건이 마치 현재의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벌어졌던 것처럼 가정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방법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시장경제는 우리 시대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존재했던 적이 없는 제도이다. 그래서 종획운동 시기에 시장경제가 초기의 혼란을 넘어서 장기적으로 시장이 균형을 스스로 달성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과거의 사건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양모 공급이 증가되어서 종획 운동 시대에 궁극적으로 일자리가 창출될 가능성을 고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영국에는 시장 경제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장의 자기 조정 능력은 검증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경제학자들은 그 당시에 시장이 자기 조절 능력을 보여줄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고,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시장경제 법칙들을 무시했다고 비난한다.

영국이 심각한 피해 없이 종획운동의 재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왕이 권력을 발동하여 종획운동의 속도를 늦춘 덕분이다. 물론 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그런 법을 만들었고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왕권이 주창한 보호 정책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자본가들이 우세한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왕권의 업적은 사라지고 뒤따르는 크롬웰 공화국은 제대로 사회행정을 이루지 못했다.

산업혁명 시기에 영국에서는 도시를 중심으로 황폐화가 많이 일어났다. 사탄의 맷돌(도시와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들과 빈민가 등의 삶이 사람들을 파멸시켰다. 당시 사람들은 임금 법칙, 인구 법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안 되었고, 착취의 개념도 제시되었지만 빈민가 임금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사실은 설명하지 못했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여러 위험을 실질적으로 극복하지 못했고, 그러한 황폐화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여러 가지 급진적인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급진적인 혁명도 완전히 물질주의적인 것으로 물질로 인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산업혁명을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가장 기본적인 변화는 시장적인 경제 확립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제 생산이 나타났을 때, 자기 조정 시장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값비싼 기계로 생산한 물건을 팔아서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상인의 활동이 반드시 필요한데 상인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을 창출해내야만 한다. 기계를 가진 사람도 거래를 하는 상인도 그 마음속에 생계유지라는 동기는 사라지고 이익 추구라는 동기만 남는다.(p.178) 그 교환의 연결 고리에 화폐가 반드시 들어가게 되고, 이는 농업 사회에서의 엄청난 사회변화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경제는 일단 확립되고 나면 외부로부터 간섭 없이 스스로 조정할 수 있게 내려 버려두어야 한다는 의미까지 포함된 것이 시장 경제라는 말이다. 그 전과 비교했을 때 사회는 너무나 큰 변화를 겪는 것이다. 상인은 물건을 구매하는 데 그가 구매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이다. 이 구매가 일어나면 인간과 자연이 상품의 형상을 뒤집어쓰는 엄청난 변화가 벌어진다. 상품이 된 인간 사이의 마디는 끊어지고 자연은 상품이 되었기 때문에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4장 사회와 경제 체제의 다양성

애덤 스미스가 주장하듯 인류가 예전부터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생활을 해왔다는 것은 착각이다. 인간은 예로부터 사회적인 존재로, 이윤추구란 사회적 권리추구나 지위를 위해서만 이루어졌다. 인간이 갖는 여러 열망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오로지 비경제적인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다.(p.186) 생산과 분배의 영역에서도 이윤이 아니라 '상호성과 재분배(p.187)'의 경제 원리가 지켜졌다. 상호성을 가지고 교류가 되지 않으면 그 사람의 평판이나 미덕에 영향을 미치지 이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재분배도 부족장이 재화를 모아서 그 부족에게 재분배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인류의 문화는 '대칭성과 중심성(p.189)'을 가지고 조직되어 왔다. 세 번째 경제 원리는 가정경제이다. 집단 성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산하고 저장하는 것이다.(p.196)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용'이라는 원리와 '이익'이라는 원리를 구분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익이라는 원리는 한계가 없으므로 비자연적인 것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인류 문명 초기에도 한계가 없는 것은 비자연적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이렇게 문명이 발달하고 공부를 많이 한 현대인은, 나를 포함하여, 비자연적인 것을 사회의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을까?


제5장 시장 패턴의 진화

물물교환의 원리는 다른 원리가 우세한 사회 내에서 종속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존재해 왔다. 교역이라는 것은 원거리 무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원거리 무역은 물물 교환이라기보다는 탐험과 해적질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생필품의 개별적인 물물교환이 있었지만 그것이 반드시 시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을에 시장이 있어도, 시장이 그 사회의 지배적 원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서유럽의 국내 교역은 국가의 개입으로 만들어졌다. 중세의 소도시들은 서로 물물교환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배타적이었으나, 중상주의가 이를 깨뜨렸다. 그리고 국가라는 큰 행정체제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중상주의를 지지했다. 즉, 중상주의, 국가 간 무역, 자본주의라는 것은 국가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체제라는 것이다. 그 국가들이 서로 경쟁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단상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자본주의(중상주의)는 의학의 발달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제도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유럽인과 접하면서 전염병과 세균으로 아메리카 인디언이 많이 죽었는데, 중상주의 시기에 유럽 국가들도 외지인들과 접촉하면서 이런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겪지 않았을까, 혹은 멀고 먼 타지까지 물건을 팔러 다니면서도 많은 병에 걸렸을 텐데, 어떤 식의 의학적 발전이 이들을 뒷받침해주지 않았을까 한다. 유럽에서 모든 영역에서의 변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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