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과 단상
제6장 자기조정 시장 그리고 허구 상품 : 노동ㆍ토지ㆍ화폐
(❁´◡`❁) 시장의 자기조절 능력은 상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원이 항상 충분히 공급되고, 사람들은 모두 충분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 아래서 발휘될 수 있다. 상품을 만드는데 필수 요소인 토지, 자본, 노동력은 시장의 자기조절 능력으로 조절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왜냐하면, 토지는 상품의 원료를 제공하는 '자연'이므로 무한정 일정하게 공급되는 것이 아니고, '화폐'라는 것은 구매력의 징표이지 물건이 아니며, 구매력이란 국가 금융의 메커니즘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력'은 '인간'그 자체이므로 아프고, 변하고, 달라지는 것이 자연적 속성이다.
그 옛날에도 사실 토지, 노동, 자본은 시장의 완전한 상품이 아니었다. 그 당시는 직인법과 구빈법이 있어서 완전한 상품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직인법으로 임금 수준을 교구가 결정했고, 함부로 해고하는 것을 금지했다. 구빈법은 가난한 사람을 교구가 돕는 법이었다. 중상주의 시대에도 토지, 노동력, 자본이 중앙집권 정부의 규제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런데 19세기에 신구빈법, 인클로저 운동으로 노동력이 상품화되었다. 그려면서 자기조정 시장의 특징은 정부의 개입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시장의 자기조절 능력 신화에 빠져서, 사람들은 이 세 가지마저도 시장의 상품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 이중 운동이 있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토지, 노동, 화폐가 상품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스피넘랜드법이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일어난다.
제7장 1795년, 스피넘랜드
1795년~1834년: 영국의 산업혁명 기간에 노동을 상품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 스피넘랜드법이다. 이 법은 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서 빵을 먹을 수 있게 해야 된다는 법이다. 사실 스피넘랜드법은 산업혁명 시기에 농노의 이탈을 막고자 생긴 법이었다(7장 주석). 이 법은 왕권 중심의 구호 체계(구빈법, 즉 국가의 가부장적 온정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를 대신하기 위해서 만든 법인데, 이 법으로 인하여 노동생산성이 급속히 저하되었고, 임금은 추락했고,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아서 모두 빈민으로 구호의 대상이 되었다. "일단 한 번 구호를 받게 되면 영원히 구호로 먹고살게 된다.(속담)"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또한, 이 당시 단결금지법이 발생했다. 이 시대 이전의 사람들은 거지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스피넘랜드로 보조금을 받으니까, 이익 추구를 위해 단결 행동을 하려고 하고, 그것이 무서운 지배자들은 단결 금지법을 만들어서, 그 법은 25년간 지속되었다.
1834년~1844년: 스피넘랜드법을 폐지하고 구빈법을 개정한 시기로, 빈민 구호소 밖의 모든 사람에 대한 구빈을 멈추고 굶어 죽도록 방치하는 일이 생기는 시기였다. 스피넘랜드법은 사회경제적 결과를 일으키고, 정치사에도 영향을 주고, 인류의 사상적 형성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즉, 스피넘랜드법의 비극을 통해서 노동 시장도 자본주의적 질서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신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나아가서 사회를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의식이 이 스피넘랜드법을 둘러싼 논쟁의 틀에서 생기게 되었다. 이 시기에 빈자들이 생겨나고,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복합 사회란 것이 출현했고, 정치경제학이라는 연구 분야가 생겼다. 이렇게 인간의 자유가 경제사회적 법칙들 안에서 파괴당할 위험에 처하자, 언젠가는 완벽한 사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게 되었고, 이 희망을 담은 '진보(Progress)'라는 관념이 생기게 되었다.
- 리카도, 맬서스: 물질주의, 시장 법칙 인정
- 고드윈: 시장 법칙 부인
- 오언: 한계를 결정하는 사회 스스로의 법칙 인식
제8장 스피넘랜드법 이전의 것들, 스피넘랜드법의 결과들
엘리자베스 시대의 구빈법은 교구 내에서 잘 시행되지 않았고, 직인법과 정주법은 사람들이 교구에 묶여있도록 했다.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국가가 금과 은을 많이 낚아채오는 것이 국가의 부를 형성하는 시기였다. 직인법의 3가지 원칙은 노동의 강제성, 도제 기간 7년 후 마스터 획득, 임금을 매년 새롭게 책정한다는 것이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정주법(자기 교구에 묶여서 이동을 못하는 것) 폐지가 요구되면서, 스피넘랜드법이 시행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법이 없다면 사람들은 일자리가 좋은 교구로 모두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298쪽, 극빈자가 많아지는 이유를 그 당시 사람들이 추측한 것을 보면, 지금의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즉, 얼토당토않다.)
이 당시 빈민이 늘어난 이유는 비가시적 실업(299쪽) 때문이다.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수출이 막히면, 공장이 멈추고, 실업자가 되고, 인클로저 현상으로 농지에서도 쫓겨나고, 공장 노동자로 익숙해진 사람은 농사를 짓지도 못하고, 그래서 빈민이 많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빈민이 그토록 많아진 이유를 잘 파악할 수 없는 혼란시대였다. 공장 생산품은 노동자들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모두 수출을 하려고 했는데, 해외 무역은 변동성이 심해서 생산이 변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수출의 변동성을 실업자 증가와 연결시킨다는 생각을 그 당시 사람들은 할 수 없었다. 그보다 더 심층의 상업이 제조업으로 기반을 옮기고 있는 양상과의 연결은 더 불가능했다. 공장 고용이 변동성이 심하기 때문에 공장 노동자는 가장 하층으로 여겨졌고, 농사지을 기술도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영국은 구빈법과 스피넘랜드법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피넘랜드법의 비용을 댈 수 있는 집단은 없었다. 농장 경영자들은 높아진 세금을 내느라 임금을 낮췄다. 사실 공공재산으로 고용주에게 보조금을 주는 양상이 되었다. 노동자에게 주는 생계비 비율은 점점 낮아졌고 극빈 상태는 악화되었다. 이런 노동자들도 자신의 계급의식을 가지면 존엄할 수 있는데, 극빈층이 됨으로써 하나의 계급으로 재구성도 될 수 없었다. 도덕이 모두 분해되고, 서로 극빈자가 되려고 기를 썼으므로, 스피넘랜드법 아래에서는 노동자와 극빈자는 구분되지 않았다. 영국의 상공을 담당하던 중간계급이 이 법을 철폐하면서, 빈민구호소 밖의 구호는 일절 없게 되었고, 기독교 사회의 통일성과 책임감이 모두 사라졌다. 이렇게 반동적인 온정주의에서 탈출한 사회는 노동력의 상품화 방향으로 달려갔다. 폴라니는 빈민의 도덕성과 자긍심이 무너지는 것이 사회를 무너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으로 보아서, 사회적 문제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침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제9장 구호 대상 극빈자 문제와 유토피아
오르테스는 부는 인구와 비례하며, 빈곤은 그 나라의 부와 비례한다고 말한다. 16세기 전반에 봉건제도에 속하지 않는 떠도는 노동자 계급이 생겨났다. 빈민 문제 해결을 위해 존 밸러스(퀘이커 교도)는 근면 협회를 세워서 빈민들이 서로 노동을 교환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것이 사회주의 사상의 중심생각이 되었다. 거기에 자본가가 돈을 벌기 위해 개입하기도 했고, 100년 후 제러미 벤담이 노동자들의 근면성을 살리기 위해서 원형감옥(파놉티콘)을 쓰는 '주식회사' 형태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근면 협회 등 빈민들이 게으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노동계급의 경제적 자급자족 원리와 노동조합들이 생겼다. 다니엘 디포는 '시혜를 베푸는 것은 사랑이 아니며, 빈민들을 고용하는 것은 온 나라의 민폐가 된다'는 팸플릿을 만들었다. 그러나 '극빈자를 공공사업에 고용하면, 사적인 이윤을 위해 고용하는 것보다 채산성이 나오지 않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시대는 빈곤과 부의 의미를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시대였다. (지금의 나는 빈곤과 부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가?)
제10장 정치경제학과 사회의 발견
(국가를 종속하는 '사회'라는 것의 실체가 드러났다.)
- 고전경제학의 출발: 칼 폴라니는 맬서스의 <인구론(1798)>을 고전 경제학의 시작으로 본다. 빈곤이 주요 사회문제로 등장하는 시기에, <국부론>을 지은 애덤 스미스도 부라는 것은 공동체 생활의 한 측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나라의 부를 결정하는 것은 자연환경이 아니라 노동 숙련도와 유용한 사람들의 숫자라고 그는 믿었다. 그도 경제는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을 도덕적인 존재로 보았을 때 생각해 낸 개념이다.
- 고전경제학과 산업혁명의 지적 기원: 그런데 10년 후에 나온 타운샌드의 <논고>에서는 굶주림만이 노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정부의 힘으로 사회가 굶주리지 않도록 하는 것은 노동의 자연적 동기를 어긋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까지 인간은 동물과 다른 존재였는데, 타운샌드에 이르면서 인간은 동물과 같은 존재이므로 최소한의 정부만 있어도 굶주림을 기반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기반을 바탕으로, 당시 시장 경제를 통해서 사회의 여러 계급들의 질서가 지켜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즉, 정치적 국가와는 다른 경제적 사회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경제적 사회는 이제까지 도덕적 정치와는 전혀 다른 사회이므로, 어떤 도덕률이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고, 통치면에서 이전과 달라지게 되었다. 구호대상 극빈자들은 교구에 떠맡겨져서 교구가 공장의 노동자로서 일을 시키게 되었고, 이렇게 된 바, 국가에서 빈민을 구호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러한 자유방임, 즉 최소의 비용과 노력으로 법과 질서가 보장된다고 믿어졌다. 통계를 낼 수 없었으므로 국가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고, 그 사이에 기업들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고안했다. 그렇다면 고전파 경제학은 당시의 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왜 자연주의에서 그 기초를 찾으려 했을까? 왜냐하면 예전 경제 법칙으로는 생산에 종사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이 빈곤 상태에서 허덕이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금 철칙이란 노동자들은 최저 생계 수준의 임금만 받을 수 있다는 모종의 경향이다. 애덤 스미스는 나라가 부유해지면 구성원 대다수도 부유해질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이런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리카도는 사회가 진보할수록 식량을 생산하는 지주들이 자본가와 노동자들 양쪽을 모두 착취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리카도와 자유주의 경제학을 고수한 것이 마르크시즘 실패의 원인이긴 하다. 리카도는 경직된 자연주의에 반대 균형을 이루어 줄 요소로 노동의 원리를 주장한다. 인간의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이론의 양 극단에 있는 벤덤과 버크가 똑같이 인정하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불가항력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 로버트 오언의 통찰(사회의 발견): 이 시기에 오언만 사회라는 것을 발견했고, 사회주의란 사회 실제 현실을 인식함으로써 인간의 의식을 개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언은 공장제 생산을 자연적 진보에 따라 그대로 변화하게 두면 전혀 새로운 성격의 인간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368쪽). 유목민처럼 떠돌고, 자긍심도 없고, 자신에 대해 엄격한 기율을 들일 줄도 모르는 뜨내기들과 사회악만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이 시장 경제와 모순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토지와 노동력이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 주장을 기본으로 하여 그다음 내용을 이어간다. 사실 지금은 토지와 노동력이 당연히 상품으로 취급되는 시대여서 이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된다. 물론 노동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인간 보호 조치가 취해지고 있고, 토지도 특정 법으로 보호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단 상품으로 여겨진다. 토지와 노동력이 상품이 아니고 나머지만 상품인 사회를 상상해 볼 수 있을까? 토지는 상품이 아니므로, 사람이 태어나면 1인당 땅이 기본으로 주어진다. 노동력도 상품이 아니므로, 사람들은 신이나, 도덕을 위해 일을 하는 사회 정도로 상상해 볼 수 있을까? 그러려면 엄청나게 강한 도덕적 '세뇌'가 필요할 것 같다.
서양 중세시대에 인간들은 종교에 세뇌도 당했지만, 동시에 교리 안에서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살았다. 하지만 종교가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정치경제학이 생기고, '진보'라는 개념에 세뇌되었다는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사회질서유지의 목표이자 도달점이 '천국'이 '진보'로 대체된 것이다. 중세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고, 산업혁명 이후로는 진보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던 것이다. 현대 사회는 진보를 부정하면서, '자아실현'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게 했고, 이제는 자아가 너무 강조되어서 과연 자아라는 것이 진짜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 무언가 다른 대체물이 생겨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산업 혁명이 이끈 산업 구조의 변화는 값비싼 기계를 들여오는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초기 비용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상품은 비싸지고 임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산업 혁명 때는 값비싼 기계를 살 수 있는 수많은 공장주가 있었는데, 현대의 AI를 운용할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그래픽카드와 메모리가 필요하고, 많으면 많을수록 성능이 보장되며, 이만큼의 그래픽 카드를 살(?) 수 있는 주체는 전 세계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초초초대기업 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산업 구조와 사회 구조는 어떻게 바뀔까 솔직히 두렵다.
지금 와서 '거대한 전환'을 읽는 이유는 오언이 발견했다는 '사회'의 존재와 힘을 믿는 수밖에 없기 때문인가? '사회'가 중세시대의 '교회'와 '왕권'을 대신하여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조정해 왔듯이, 앞으로도 초초초대기업의 횡포를 막아서 사람들의 삶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