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과 단상
제20장 사회 변혁과 역사가 맞물려 진행되다 (p.566)
파시즘은 산업과 정치 영역에서 민주주의적 제도들을 모두 없애면서 그 대가로 시장경제를 개혁한다는 것이다. 파시즘을 해당 국가의 지역적, 민족적 원인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지나치게 전 지구에 걸쳐서 산업화의 초입 단계의 나라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파시즘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고위 인사들의 지지를 얻어서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고, 비합리주의 철학, 인종주의적 미학, 반자본주의적 대중 선동 등을 사용했다. 그들은 겉보기에 요란한 반란을 일으키고, 그들과 연계를 맺은 권력 당국은 어쩔 수 없이 제압당하는 척하면서 그 반란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잡아왔다. 파시즘은 완전하게 승리를 거두어서 노동자와 자유주의자가 일구어 놓은 엄청난 조직들이 모두 사라졌다.
파시즘도 사회주의처럼 시장 사회가 기능을 멈추어서 생긴 현상이다. 그런데 경제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영역 등 모든 면으로 번져 나갔다. 파시즘은 보수주의에 맞서는 혁명적 경향이 되었고, 민족주의라는 지렛대를 이용해서 권력을 장악했다. 1924년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경제 활황이 이루어졌고, 볼셰비즘과 파시즘 모두 숙청당했으나, 1929년 이후에 시장 체제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파시즘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세계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영국이 금본위제에서 탈퇴하자, 여러 채무국들은 채무 불이행을 기본 입장으로 삼았다. 그 속에서 독일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국제적인 상품과 통화 체제에서 스스로를 독립시켰다. 금을 마구 방출하고, 대외 채무 지불을 거부하고, 무역도 포기했다. 이런 독일에 대해서 영국의 체임벌린 내각은 금본위제의 경제학에 집착하느라고 유화 정책만 폈다. 독일은 볼셰비즘의 위협에 맞서서 정렬하라는 정치적 운동을 했고, 시장 체제 변형의 수혜자가 되었다. 이 즈음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등장했는데, 볼셰비키조차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를 확립하는 것은 거부했다. 왜냐하면 문맹률이 높은 후진 농업국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는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도시와 농촌 사이의 이익 갈등 상황에서 농촌을 불리하게 만들었고, 임시변통으로 집단농장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국제 체제 실패로 다방면의 변화가 일어나서 역사가 변화했다. 하지만 역사의 진로를 결정한 것은 시장 사회에 내재한 여러 경향들이었다.
제1장 백 년 평화 (p.93)
19세기 문명은 네 개의 제도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세력균형 체제, 둘째는 국제금본위제, 셋째는 자기 조정 시장, 넷째는 자유주의적 국가였다. 그중 금본위제가 가장 결정적인 것이었다. 금본위제를 지키려고 다른 제도들이 희생당했고 금본위제가 없어질 무렵에는 다른 제도 모두 파괴되어 있었다. 19세기의 모태(시작)는 자기 조정 시장이었다. 금본위제, 자유주의 국가 모두 자기 조정 시장 때문에 생긴 것들이다. 이 책에서는 자기 조정 시장은 완전한 유토피아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겠다.
서양은 1815년부터 100년 평화를 가진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내전, 혁명 등의 지속되었고, 이렇게 기적에 가까운 평화를 유지한 것은 세력 균형 원리의 작동 덕분이었다. 즉, 약소국이 모여서 강대국 하나를 대적하는 방법이다. 1815년 이후로 실용적 평화주의가 있었다. 이는 평화로운 영리 활동이 전 세계적인 보편적 이익이 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평화의 이익을 실현시킨 것은 그 시기의 오트피낭스 즉, 높은 수준의 대형 금융자본의 활동이었다. 로스 차일드 등의 은행은 어느 국가에 종속되지 않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지적인 전쟁도 지원하지만 강대국들 사이의 전면전은 자신들의 이익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지하지 않았다. 로스 차일드의 신용은 세계경제 유일의 연결고리였다. 오트피낭스를 움직인 것은 오로지 이득이었지만. 나라의 독립이나 주권 등의 파괴가 없는 이상은 평화를 지키려고 했고, 평화에 대한 이해가 분명히 존재했다. (유대인(!) 조직인 오트피낭스가 과연 평화를 수호하는 역할'만' 했을까? 결국 유대인들이 이러한 금융 활동을 통해서 여러 나라를 쥐락펴락 했던 것이 홀로코스트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발칸, 모로코, 이집트에 철도를 놓는 사업 등에서 오트피낭스가 강대국 간에 전면전을 막았고, 터키에서는 국가채무불이행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트피낭스가 터키의 재정 일부를 맡게 되었다. 오트피낭스는 양서류와 같이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민족주의와 산업 발달로 잔인해진 전면전을 막는 역할을 했다. 평화가 유지되었던 것은 보편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구체적인 조직인 오트피낭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의 마지막 25년은 군비 지출, 원자재 공급, 독립 주권 모두가 신용과 통화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독일은 비스마르크 시대에 통일을 하고 평화 시기를 이끌었으며,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등과 동맹을 맺으면서 자기의 위치를 강화했다.
소감: 이 책을 통해서 이전에는 종교나 반목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그 결과 경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던 기존의 나의 생각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이제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전쟁을 하고, 경제적 이득에 반하기 때문에 전쟁을 하지 않는, 이득(이익)이 즉 전쟁의 주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한한 이익 돈,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무한 이익. 이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에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
제2장 보수적인 1920년대, 혁명적인 1930년대 (p.134)
우리가 살고 있는 국제 체제의 진정한 성격은 그것이 무너지기 전에는 깨닫지 못한다. 1차 세계대전의 독일의 패배는 전쟁을 낳은 근본 원인 자체를 더욱 악화시켰다. 독일은 어마어마한 전쟁 배상금을 금으로 지불해야 했고, 알자스로렌 지방이 프랑스에 병합당하는 등, 베르사유 체제가 독일을 죽이려는 체제에 불과하다는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독일의 하층 부르주아로부터 민족주의 나치즘 발현의 배경이 되었다.
1930년대 초에 영국의 금본위제 포기, 뉴딜의 출범, 독일의 나치즘 시작, 등의 사건으로 국제연맹이 아니라 폐쇄형 제국들이 나타난다. 독일은 금리 생활자들에 대한 수탈을 하면서 나치 혁명의 터전을 닦았다. 여러 나라들에서 안정된 통화 기준을 회복한다는 것이 좌파 정권을 축출 하는 명분이 되었다. 섣부르게 유럽 통화의 안정화만 골몰하다가 통화위기가 발생했다. 그 충격은 유럽 나라들의 통화 가치가 사라졌다. 통화 가치가 사라지면서 사채업자들은 굉장한 부자가 되었다. 자본의 해외도피라는 현상도 일어났다. 통화문제는 국내 정치의 핵심 사안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 학자도 화폐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논란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금본위제는 계속 경제적 이상으로 남아 있어서 목표로 설정한 금과의 교환 비율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국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긴축 정책을 감수했다.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그것이 미국 달러의 가치 변동으로 이어졌다. 1933년 미국이 금 본위제를 탈퇴했고, 지난 10년 동안 세계의 단결과 연대의 상징인 금본위제는 사라졌다. 동시에 국제연맹도 오트피낭스도 모두 사라져서 전 세계를 묶어놓는 줄이 끊어졌다. 국제 사회는 나치즘의 발현, 뉴딜 정책,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 등의 사건의 목도했다. 19세기 문명의 특징은 경제라는 기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질요소는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준의 동기가 바로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는 인간 문명은 이제까지 존재한 적 없었다. 문제는 승전국들도 미국에 채무가 생긴 것이었다. 그래서 독일이 승전국에게 지불해야 되는 채무를 미국에게 지불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여유가 있으니까 그것을 장기적인 채무로 바꿔 놓았는데 독일은 그 어떤 채무도 이행하지 않겠다고 전쟁을 일으켰다.
제21장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 (p.586)
19세기 문명이 막을 내린 것은 사회적 삶의 요건들과 시장 사이의 갈등이었다. 시장사회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경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기 이익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경제생활이 자기 이익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자연적인 것도 아니고 예외적인 것이다. 인간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스럽게 시장을 발생시켰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종의 영구불변의 특징이라고 여겨졌으나, 이러한 행태는 원시적 상태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시장은 국가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만들어졌다. 전쟁 이후에 노동력 토지 화폐는 시장에서 떨어져 나왔다. 임금계약은 더 이상 사적인 계약이 아니며, 토지는 협동조합 지방자치제 공공기관들에게 토지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화폐도 시장에서 떨어져 나와서 정부는 투자의 방향을 지도하고 저축률을 조절한다. 19세의 경제학은 고정환율제가 시행되는 영역이었으며 금본위제가 작동하면서 강대국들이 전체 국가들의 질서를 관리하는 형태였다. 강대국들이 약소국에게 돈을 빌려주면 돌려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제사회에는 무정부주의적 국가 주권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 간섭이 정당화되었다. 금본위제가 사라졌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협력은 더 가능해졌다. 국제통화의 가치에 따라서 국내 경제를 조정해야 될 필요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사멸은 새로운 자유시대의 개막이다. 그런데 사회의 자유를 위한 계획과 통제가 자유의 부정이라고 공격당한다. 이런 사회에서 환상에 불과한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면 사회라는 실제를 부정하든지, 아니면 사회실제를 받아들여서 자유를 부정하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전자는 자유주의자이고 후자는 파시스트이다. 자유주의 경제는 자유가 유토피아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자유 시장에 근접하고자 애쓰는 방향으로 우리를 오도했다. 사회 속에서 개인은 스스로 대가를 지불하면서 아무에게도 빚지는 일 없이 살아왔으니 사회와 관계없다는 것이다. (p.601) 그러나 사람들은 마음속의 의견이나 욕망을 가지게 되면 권력의 창출 과정이나 경제적 가치 평가의 구성 과정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이를 빠져나갈 수가 없다. 즉 사회적 활동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시장 유토피아를 벗어나면 사회실제 현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p.601)
인류의 의식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서 그 모습이 결정된다. 권력과 강제는 인간 사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의 실제를 깨달았을 때 자유라는 것이 인간을 파멸하는 치명적 유혹이라고 생각하면 파시즘이고, 이러한 인간의 현실 속에서도 사회 속에서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은 사회주의이다. 오언은 기독교가 사회 실제 현실을 묵살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기독교는 개인화를 주장했을 뿐이고 이로 인해 일어나는 인간으로부터의 소외는 인간들의 협동에 근거한 공동체에서 종식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인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지지하는 것이 오언의 주장이다. 복음서의 가르침은 충분한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의 발견은 자유의 종말일 수도 있고 그것의 재탄생일 수도 있다. (p.603). 인간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기초로 이승에서의 삶의 의미를 쌓아 올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사회실제 현실을 불평 없이 묵묵하게 받아들이는 이상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제거할 수 있는 불의와 비자유는 모조리 제거하겠다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된다. (p.604).
시장 사회에 대한 진정한 비판은 그것이 경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회가 경제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 그것의 경제가 개인의 자기 이익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p. 587
폴라니는 시장에서의 물물교환이 인간 경제활동의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현상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 개념은 마치 중세의 교회가 면죄부를 사면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사람들을 세뇌하였던 것과 같은 근거 없이 주입된 관념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중세인들의 이런 믿음에 대해서 어이없다고 여기듯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미래의 어느 인류는 어이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폴라니의 주장은 인간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는 산업 혁명 즈음에나 일어난 매우 새로운 행위라는 것이다. 산업 혁명 이전의 모든 시대에 인간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경제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건 맞는 주장인 것 같다.
자유주의 경제는 자유라는 우리의 이상을 그릇된 방향으로 오도했다. …. 사회 전체에 어떤 경제적 재난이 닥친다고 해도, 거기에서 개인적 이득을 본 것이 아니라면 그 개인은 또 자신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개인은 “스스로 대가를 지불하면서”, “아무에게도 빚지는 일 없이” 살아왔으니, 권력이나 경제적 가치 평가와 같은 사회악과 전혀 연계되지 않은 것이다. pp. 600~601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기능이 무너지면서 자유가 중요하게 되었다는 폴라니의 생각은 참 흥미롭다. 인간은 중세 장원의 예속에서 탈출하고, 시장 경제의 속박에서도 벗어나서 드디어 인간이라는 종이 개체의 자유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개체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드디어 생각해야 한다. 폴라니에게 이 ‘자유’란 개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체들이 적절한 자유를 누리도록 ‘사회’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사회’ 전체를 자유롭게 만드는 ‘규제’나 ‘규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거대한 전환은 빈부격차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인식하지 않고 사회의 집단 개념으로 접근한다. 한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사회의 다른 집단들의 지지를 받을 때 그 행동이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가난한 집단'과 '부유한 집단'을 하나의 묶음으로 나눌 수도 없이 서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다르다. 그래서 '집단'개념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개인'의 수가 많은 것이 도움이 될 것도 같다.
이 책은 굉장히 어려운 책이라고 한다. 경제학과에서도 이 책은 어려워서 시험에도 안 나온다고 한다. 한편, 혼돈의 시대를 그린 역사책인 거대한 전환을 읽으면서 한 치 앞도 모르는 새로운 시대가 나아갈 방향을 암중 모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 방향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완전하지 못한 채로 의도하지 않은 수레바퀴 속으로 굴러 들어가는 것처럼 시대가 흘러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큰 흐름을 조망하면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혼란과 방향 상실과 미래에 대한 무지가 혼돈의 시대를 겪었던 이전 많은 사람들이 겪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내 정답은 알지 못한 채 혼돈 속에서 암중 모색하면서 생명을 유지하다가 사라져 가는구나. 새로운 산업 사회를 맞이하는 이 시대의 혼란이 그 시대의 혼란에 비추어 낯설지 않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