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2020) -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데이비드 하비 지음, 선순환
현대 자본주의는 일반인이 일상적으로 알지 못하는 거대한 물류량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부산항의 컨테이너는 63 빌딩을 눕혀놓은 정도의 크기인데, 그런 컨테이너 배 열몇 척이 부산, 광양, 중국을 거쳐서 다시 부산을 찍고 미국 서부 항구에 물건을 내려놓고 온다. 이런 시스템이 매일매일 노선버스처럼 움직인다고 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물류량이 조절되고 운용된다. 우리의 인식의 범위를 초월하는 크기로 움직이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하비는 급진적인 지리학자이다. 공간적인 불평등이 만연하고 있다는 점을 연구의 시작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현대 신자유주의 시대에 전 지구적으로 동요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 2007~8년 금융위기 이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시행한 통화 팽창, 양적 완화 등은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오히려 더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복잡하고 정교한 금융 시스템을 가진 투기 경제로 진입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봉건제도에서도 벗어나고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 자유는 직업의 불안정과 공존하는 자유이다.
신자유주의는 기업도 개인도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기를 요구하므로 기업가 계층도 노동자계층도 한 개의 집단으로 결합되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이합집산하는 형태이다.
신자유주의와 자본가 계급에 대해서 얘기할 때 저는 이들이 완전히 동질적인 자본가 계급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환경 규제는 찬성하지만 금융 규제는 반대합니다. 코크 형제는 둘 다 반대하죠. 블룸버그는 연방정부가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막대한 돈을 쓰는 데 반대합니다. 코크 형제도 이와 똑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기후변화와 총기 규제에 대해서는 코크 형제를 비롯한 여러 자본가 계급과 의견이 다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의견이 같습니다....(중략)... 미국의 정치를 움직이는 집단은 소수의 초부유층과 기업입니다. 미국에는 정당이 하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 정당 내에 두 가지 파가 있을 뿐이죠. 이 정당을 월스트리트당이라고 부릅시다. 이 정당의 반에 돈을 대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코크 형제 패거리들입니다. 이것을 공화당파라고 할 수 있죠. 다른 반쪽에 돈을 대는 사람들은 마이클 블룸버그, 톱 스타이어, 조지 소로스 등의 패거리인데, 이들은 민주당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쪽 모두 자본가의 자금 지원에 좌지우지됩니다. (p.85)
민주주의의 삼권 분립에서는 입법, 사법, 행정의 분리를 이야기하지만 어디에도 국가의 주권이 자본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원칙이 있었어도 자본은 주권과 결합했을 테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이제까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자본 독재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는 없다. 인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시대가 있기는 했었던가?
클린턴 이래 거의 모든 미재무부 장관은 골드만삭스 출신입니다. 이것은 국가 채권을 소지한 자들이 국가권력을 어떻게 좌지우지했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지표입니다. (p.137)
골드만삭스 출신은 어떤 정책을 위해서 재원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얼마큼의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러니 재무부 장관으로 매우 적합하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니 골드만삭스를 위시한 월가에게 유리한 정책만을 펼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중국도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고전주의 경제학의 우두머리인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자들을 영입하여 경제적 성공을 이루어내었다.
영국 및 서유럽에서 상인들이 자본은 형성하기 시작할 때 살았던 셰익스피어는 상품 경제에 대해 <존 왕, The History of King John>의 2막 1장에서 사람들이 상품의 노예가 되는 과정에 대해 썼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 과정과 상품 모두에서 소외된다. 그리고 보상적 소비를 통해서 만족을 얻으려고 부추겨진다. 그러나 보상적 소비인 미디어 시청, 관광 등의 행동 안에서도 역시 소외되긴 마찬가지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가장 신자유주의적이지 않은 중국, 한국, 대만, 싱가포르에서 가장 잘 대처를 했다.
이렇게 딜레마적인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도 스스로 바뀌어야 된다. 그리고 이제는 과학기술이 노동의 힘을 대체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노동 시간을 줄이고 각 개인들이 개체성을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얻게 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개발을 할 권리를 얻기 위해서 노동자는 집단적 행동을 해야 한다. 코로나 같은 비상 상황에서 머리를 모아서 집단적으로 사회적 행동을 바꾸었듯이, 자본의 독식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머리를 모아서 집단적 행동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다.
<거대한 전환>에서 폴라니는 산업 사회에서 착취의 자유, 과도한 수익을 올리려는 자유 등의 나쁜 자유와 양심, 언론, 집회의 자유 등 좋은 자유가 생겨났다고 말한다(p.93). 그런데 '시장 경제를 지나면, 다시 말해 시장 경제를 넘어서게 되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자유의 시대가 시작될 수 있다'라고 서술한다. 시장 경제를 버려야 진정한 자유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하비는
법적 자유 및 실제 자유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광범위해지고 보편화될 수 있다. 규제와 관리를 통해 소수뿐 아닌 모든 이들이 자유를 성취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산업 사회가 만인에게 제공하는 여유와 안전을 통해 새로운 자유들이 창출될 것이며, 이는 해묵은 자유와 시민권 위에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이러한 사회야말로 정의와 자유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p.94)
라고 폴라니의 책을 인용한다. 이런 의견은 1960년대 68 혁명 세대의 정치적 의제와 비슷하다. 폴라니는 이러한 자신의 이상이 '진보 이상주의(liberal utopianism)' 때문에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폴라니는 진보 이상주의 속에서 "계획과 통제는 자유를 부정하는 것으로 공격받고 있다. 사람들은 기업의 자유와 사유재산이 자유의 핵심이라고 선언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폴라니는 '사회'라는 것은 온전히 지켜내기 위한 계획과 통제 안에서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생존 방식인 '사회'라는 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인간 역사에서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장 경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의식주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폴라니는 주장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가 없었으면 나는 3년 전에 죽었다. 3년 전에 맹장염으로 응급실로 실려 들어가서 4시간 만에 수술실로 바로 들어갔다. 자본주의가 없었으면 이만큼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나 같은 무명인에게 그 의료 기술을 시행해 줄 만큼 보편화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없었으면 6년 전에 코로나에 걸렸을 때 아마 응급실에서 고열을 잡아주지 못해서 죽었을 것이다. 사실 그만큼도 못하고 예닐곱 살 때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다 폐렴에 걸려서 죽었을 것이다. 나는 자본주의 덕분에 배부르고 등 따습게 자본주의의 꽃잎 위에서 노니듯이 이제까지 살아왔다.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니 배은망덕도 이런 배은망덕이 없다. 자본주의가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에게 보편복지를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자본주의가 없었으면 기술이 이렇게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이 태어나려면,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현재는 궤멸해야 한다. 아마 스스로 궤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