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는 참 좋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답을 찾아가는 실마리를 주는 질문이다. 그리고 나와 문제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단순하고 명료한 질문이다. 김영민 님은 '무엇인가' 시리즈를 몇 권 내신 것 같은데, 이 책은 그런 책들 중 신간이다.
김영민 님은 공부를 많이 하시는 분이어서 그런지 책에 새로운 정보가 많다. 처음 듣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읽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고전 한문에서 ‘인간(人間)’이란 표현은 인간이 아니라 ‘세상’을 뜻한다. … 보다시피 ‘사람’을 나타낼 때는 사람 ‘인’ 자를 쓰고 ‘세상’을 나타낼 때는 ‘인간’이라는 단어를 썼다. p.22
일본학 연구자 남근우에 따르면, “이 모가리 상태에 있는 천황은 생리적으로는 분명히 죽은 것이겠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 죽음의 선고가 내려진 게 아니다.” 그리고 이 시체 안치 기간은 가변적이다. 마침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었다고 판단되어야 비로소 본격적인 장례가 치러지고 후계 의식이 진행된다. 그때 죽지 않고 이어진다는 천황령을 계승하는 의식이 거행되는데, 그것이 바로 다이죠사이(大嘗祭)다. 오리구치 시노부에 따르면 이 다이죠사이 의례에서 후계자는 천황의 시체와 동침을 한다. 그것도 신체를 시체에 부착시키고서. p.61
김영민 님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과거, 현대, 미래(?)를 나누어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개념들을 뒤집고자 하는 의도의 글을 썼다. '우리나라의 건국 개념은 홍익인간이 아니라 웅녀의 참을성과 변화에 대한 의지에 나타나있는 것이다.'라는 등. 다이죠사이 등 책에서 알려주는 사실 자체가 매우 전문적이고 흥미로운 데다가, 저자는 글솜씨가 있어서 모든 글을 재미나게 썼다. 재미있으면서 동시에 의미를 담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김영민 님은 젊어서 평론 부분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 박완서 님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후광이 있어서 그런지, 그분의 글은 다 재미있게 느껴진다.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통해 ‘권력’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그는 권력에 관심이 많다. 정치학 전공이기도 하고. 영화와 책 등에서 권력을 분석하는 취미가 있는 작가이다. 권력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요소이니 무시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나는 나니까, 내 말을 따라라! 이것이 쿠데타의 궁극적 논리다. 지금부터 나의 권위를 받아들여라! … 나는 나이므로 너희들은 나를 받아들여라! 따지지 마라! 따지면, 그 어떤 것도 정당하지 않으므로. p.138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구절을 통해서 한국에서 '권력'이 저지르는 행위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잔인한 가해자는 무력한 피해자를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134쪽)로 만들어 버리고 싶어 한다. 잘난 척하지 마라, 인권? 잘난 척하지 마라, 존엄? 잘난 척하지 마라. 너희는 결국 쓰레기다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상대가 자신처럼 비천해지기를 바라는 이들은 상대를 서슴없이 고문한다. …. 왜 이토록 잔인해지는가? 그들은 누군가 존엄을 지키는 모습을 참지 못한다. 그들의 존엄을 통해 자신의 비열함이 드러나게 되니까. p.144
영화 <해탄적일천>
야반도주라는 혁명적 사태를 치러냈지만, 알고 보면 의탁 대상을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사랑이란 말로 치장했을 뿐, 결혼은 결국 또 다른 타자에의 의존이었던 것으로 판명된다. 바로 그 의존성 때문에 결혼 생활도 위기에 처한다. 야반도주라는 큰 희생을 치르고 결혼했다고 생각하기에, 남편에게 그만큼 큰 보상과 관심을 요구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가정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p.156
남편의 애인은 자리를 비웃는다. “사랑이라뇨. 이 세상엔 사랑은 없고 충동만 있어요.” 이 지점에 이르자 억압에 저항하여 주체적인 참사랑을 성취했다는 자리의 낭만적 서사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서사가 무너지자 해변에서 실종된 사람이 실제 남편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비로소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아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자리는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해변을 떠난다. p.157
저자의 서술은 참 적확하다. ‘소년이 온다’에서 가해자가 잔혹한 이유를 말한다. ‘해탄적일천’에서 주체적 삶을 이야기한다. 한국의 공허한 발전을 이야기한다. 김윤식 님의 신입생에게 주는 말을 빌려 자유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소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Before I die, I want to… 벽에 적혀있는 소원은 소원이 아니다. 지루하게 이어지다가 마지막 한 문장으로 촌철살인을 이루어낸, 마음에 박히는 글이었다.)
오직 공허한 사람들만이 그 공허를 느끼지 못한다 p.174
“군은 다만 태어나졌을 따름, 던져진 존재였던 것, 어디에 던져졌던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아니겠는가. 거기 군은 혼자 던져졌고 따라서 불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혼자 있음, 불안, 무서움, 이 삼각형의 도식이 군의 본래의 모습이었다.” p.179
그러나 내게도 소원이 있다. 나는 내 소원을 공공연하게 벽에 적을 수 없다. 그러지 말고 소원을 말해 보라고? 소원을 떠올리는 순간, 난 눈물이 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p.232
이 부분을 읽고 나는 가슴을 쳤다. 나의 소원도 이러한데. 소원이란 것은 이런 것이지.
에필로그에서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고통에 관한 글에서는 다양한 연구 사례가 나와있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이러한 소신공양의 사례에서 한층 놀라웠던 것은 그에 임한 스님들이 대개 자세를 크게 흔들리지 않고 결가부좌 상태를 유지했다는 사실이었다. p.290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고통 관련 심리 기제를 연구하는 학자인 레이철 조프니스(Rachel Zoffness)는 이 두 사례를 통해 고통과 상처는 별개의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에 따르면 특히 만성적인 고통은 그저 개인 신체의 증상에 그치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신체 해당 부위의 즉각적인 반응이라기보다는 뇌의 판단을 거친 복합적인 경험이다. 즉 뇌는 매번 여러 관련 정보를 수합하여 이번에는 어느 정도 고통을 느낄지 스스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뇌의 판단에는 자신의 정체성, 환경 등 사회적 맥락까지 깊이 연루되어 있다. p.292
이 앨범 커버는 이전에도 많이 보았지만, 이 사진을 보면서도 나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영민 님의 글을 읽으면서, 특히 소신공양을 하는 스님과 끓인 라면 냄비의 손잡이도 못 잡는 자신과 비교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진이 얼마나 무서운 사진인지를 실감했다. 고통은 고통을 느끼기로 결심한 자들에게만 오는 것이라는, 놀랍고도 무서운 글로 이 책이 마무리되었다.
한국이란 무엇인가는 한국이라는 나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소비되는 영화들, 혹은 한국 사람들에 대한 단상을 다양한 영화, 책, 현상을 통해서 보여주고, 연구의 결과들을 덧붙여서 쓴 책이다. 워낙 글솜씨가 좋으셔서 무슨 내용을 읽어도 다 재미있다. 공부는 그만큼 노력한 것이겠지만, 글솜씨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