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 unit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10전이 뭡니까?
현장 작업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러저러해서 마당과 1층 바닥의 높이 차이를 10전(錢) 정도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설계를 의뢰하고 싶다는 토지주에게 연락이 왔다. 2층 규모의 주택으로 연면적 150헤베 정도 나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짧은 대화 속에서 전(錢)이나 헤베와 같은 용어가 등장했다. 일반인들 뿐만이 아니라 건축사를 포함한 다수의 건축분야 전문가들도 쉽게 자주 사용하는 용어들이지만 정작 정확한 뜻과 어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전(錢)’이나 ‘헤베’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그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전(錢)’은 센티미터(cm)를, ‘헤베’는 제곱미터(㎡)를 지칭한고 이야기한다. 건축 전공자에게 이 용어들의 의미와 어원을 묻기도 하는데 출처나 어원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이런 용어를 왜 사용할까? 대부분의 은어나 속어들이 그렇듯이 일단의 무리에서 특정 용어를 사용하지 않거나 못 알아들으면 그 무리에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錢)’과 ‘헤베’ 같은 용어를 왜 사용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남들도 자주 사용하니 서로 의사소통하기 편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널리 통용되는 말이라고 해서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그 사람을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현장에서 자주 사용되고, 건축사가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접하고 있는 전(錢)이라는 단위 용어를 살펴보자. 토목이나 건축 현장에서 1전(錢)은 10cm를 지칭 하지만, 전(錢)은 본래 화폐의 단위였다. 원 또는 환(圜)의 100분의 1을 뜻한다. 100전(錢)이 1 환(圜)인 셈이다. 화폐의 단위였던 전(錢)이 어쩌다가 길이의 단위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계량법이 공포되어 미터법 사용이 강제된 시기가 1961년이었고, 긴급통화조치로 10 환을 1원으로 화폐단위 전환이 단행된 시기가 1962년이었던 것을 미루어 생각해보면, 단위의 혼란기인 1960년대 초기에 화폐의 단위에서 100분의 1이라는 의미 가지고 있던 전(錢)이 100분의 1이라는 의미를 유지하며 길이 단위인 1m에 적용된 것은 아닐까? 짐작만 해본다. 아무튼 현재 전(錢)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1미터의 100분의 1인 1cm를 1전(錢)이라고 말한다. 단위의 변환기를 경험한 비전문가라면 모르겠지만, 건축전공자나 건축사가 전(錢)이라는 단위를 사용한다면 그를 전문가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헤베와 루베, 알고도 사용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현장뿐만 아니라 건축사사무소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헤베’는 무엇일까? 우선 길이, 면적, 부피의 단위를 살펴보자. 길이 단위의 제곱은 면적이 되고, 세제곱은 부피가 된다. 그래서 미터법에서는 길이 단위로 미터(m)를 사용하고, 면적 단위로 제곱미터(㎡), 부피 단위로 세제곱미터(㎥)를 사용한다. 한자 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면적과 부피 단위의 한자표기로 각각 평방(平方)과 입방(立方)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곱미터를 평방미터, 세제곱미터를 입방미터라고도 사용한다. 외래어에 발음이 비슷한 한자를 붙여서 사용하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미터(m)의 표기할 때 발음이 가장 비슷한 한자인 미(米)를 사용한다. 米는 쌀이라는 의미의 한자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길이 단위인 m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이유이다. 면적단위인 제곱미터(㎡)에 집중해보자. 우리는 ㎡를 제곱미터 또는 평방미터라고 부르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마찬가지로 평방미터(平方米)라고 한다. 이것을 줄여 평미(平米)라고도 한다.
몇 년 전 중국의 실시설계도면에서 평미(平米)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 ‘평평한 쌀‘이라고 이해하며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미(米)는 쌀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영어인 미터(meter)의 발음과 비슷한 미(米)를 미터(meter)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한다는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일본어 사전에서 평미(平米)를 검색하고 발음을 들어보면, '헤이베이' 또는 '헤이베'로 들린다. 그랬다. '헤베(へいべい)'는 제곱미터 즉 평방미터를 줄여서 사용하는 평미(平米)의 일본식 발음이다. 첨부된 QR코드를 통해 평미(平米)의 일본식 발음을 귀로 들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중국에서도 일본과 같이 평미(平米)라고 표기하는데, '피엉미' 또는 ’평미‘라고 발음한다. 그리고 세제곱미터 즉 입방미터(立方米)는 줄여서 입미(立米)라고 표기하는데, 중국에서는 ‘입미’ 그리고 일본에서는 ‘루이 베이’ 또는 ‘루이베’로 발음한다.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사용된 콘크리트 물량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루베(りゅうべい)’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헤베(へいべい)’, ‘루베(りゅうべい)’ 모두 사용을 지양해야 할 용어가 아닐까?
총체적 난국
길이와 면적단위는 일본식 용어를 부적절하게 사용해서 문제라면, 조명기구의 단위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 언제부턴가 조명기구의 밝기를 나타내는 단위에 와트(W)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백열등과 형광등을 주로 사용했던 시기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밝기를 나타낼 때 와트(W)를 사용해도 의사소통이 되긴 했다. 백열등이 수명을 다하면, 같은 와트(W)의 백열등을 구입하면 되었고, 더 밝게 사용하고 싶다면 와트(W) 값이 보다 큰 것을 사용하면 되었다. 밝기 단위로 와트(W)를 사용한 것은 잘 못 되었지만, 밝기와 와트(W) 수가 어느 정도 비례했기 때문이다. 대충 비슷하게 맞았던 이 공식이 소비전력(W)은 낮으면서도 더 밝은 전구가 등장하면서 혼란이 시작했다.
60W 백열전구와 20W 삼파장 전구 그리고 10W LED 전구의 밝기가 비슷한 상황이다. LED 전구의 밝기 정보를 ‘60W 백열전구 대체’ 또는 ‘20W 삼파장램프 대체’라고 표기하는 제품이 많다. 적정한 조도(럭스, lux)를 계획하려면 조명의 광량(루멘, lm)을 확인해야 필요한 밝기를 위한 조명 개수를 계획할 수 있는데 이런 부정확한 표기를 마주하면 난감하다. 해외 조명기기 업체들은 밝기를 국제표준에 맞춰 루멘(lm) 값으로 표기한다. 반면 국내 제품들은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밝기에 해당하는 루멘(lm) 값을 표기하지 않는 제품이 보인다. 전문가 입장에서 제품의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고 정확한 계획을 하기가 어렵다.
색깔의 단위, 색온도(K)
색을 표현하는 말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경우가 많다. 피부색은 밝은 사람도 있고 어두운 사람도 있어서 매우 다양하다. 지구의 태양 복사량 분포에 따라 피부의 멜라닌이 발달한 정도에 따라 피부색이 달라지는데, 특정 색을 살색이라고 부르는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흰색 피부나 검은색 피부의 사람의 인권을 차별한다는 점에서 2002년 국가인권위는 기술표준원에 ‘살색’을 ‘살구색‘으로 개정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결국 인종차별적이고 부적절한 용여인 '살색'은 2005년 살구색으로 개정되었다. 이렇게 인권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조명의 색깔 표현에도 문제가 많다. '전구색'은 무슨 색인가?
우리는 백열전구가 보여주는 빛의 색을 '백열전구색'이 아닌 '전구색'이라고 부른다. 백색 전구는 전구색과 비교해서 백색에 가깝다고 붙은 이름인데 심지어 백색도 아니다. 주광색은 낮의 태양광 색으로 빛의 삼원색이 모두 혼합된 온전한 백색의 전구를 의미한다. 혼돈은 이제부터다. 전구의 제품 설명에서 주광색은 밝은 흰색, 주백색은 은은한 흰색, 온백색은 밝은 주황색, 전구색은 따뜻한 주황색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문학적인 표현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제품 설명에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부끄럽고 절망적이다. 빛의 색은 K(kelvin) 값으로 표기하는데, 2700K에서 6000K 범위의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학작품이 아니고서야 지정한 색을 정확히 전달하려면 적합한 단위와 정확한 수치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외국팀과 협력하거나 해외 프로젝트의 도면에 ’은은한 흰색‘이라고 표기할 수 없다. 전문가라면 조명을 지정하고 빛의 색을 이 캘빈(K) 값으로 표기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약속, 단위
세종대왕은 쉬우면서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훈민정음도 만드셨지만, 신생국가였던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단위 기준인 도량형도 통일시켰다고 한다. 세종조에 갖춘 이 단위의 기준 척도들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이 척도들은 황동으로 만들어진 사각 유척으로 제작되어 표준 척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쉽고 자유로운 문자도 필요하지만, 정확한 단위도 함께 있어야 했던 것이다. 건축분야에서 사용했던 기준으로는 목공척이라고도 불렸던 영조척(營造尺)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대한민국에 이르는 20세기 초반 모든 분야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 전통적인 단위와 근대적인 단위가 혼용되었고, 잘못된 단위나 용어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1959년 국제 미터법 협약에 가입하고, 1961년 법으로 계량법을 재정, 공포했다.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단위를 잇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단위는 옮고 그름의 문제이기보다는 사회가 합의한 약속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표준으로 합의된 길이 단위와 면적단위를 사용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특히 건축사와 같은 전문가부터 정확한 의사소통과 정보전달을 위해 표준 단위와 용어를 사용해야겠다.
어원과 출처도 모르면서 ‘전’이나 ‘헤베’, ‘루베’ 같은 용어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전문가 생색을 내는 일은 우리에게 무척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위만큼이라도 익숙지 않고 편하지 않더라도 적절한 단위를 사용하려는 인식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