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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ae Shin Dec 22. 2022

용어@건축 12

건축    Architecture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건축'을 의심할 수 있을까?

나를 나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떠올려보자. 이 분들이 친부모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사람이 있을까? 출생의 비밀이 있어야 재미를 더하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고서야 부모님을 의심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건축사에게 ‘「건축(建築)」이 적절한 용어인가?’라는 의문은 ‘부모님이 친부모일까?‘라고 의심하는 정도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건축공학부 4년에 입학하고 건축대학원 5학기를 마친 필자도, 졸업 후 수년간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하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건축사사무소를 지금껏 운영하면서도 당연하게 건축(建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그 의미에 대해 곱씹어 보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숨쉬기 위해 필요한 공기가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건축(建築)」은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용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건축(建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할 수 록 ’이 용어가 적절한가?‘라는 의문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다른 건축사분들과 건축계의 다양한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건축(建築)」을 「건축(建築)」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할까?          


Architecture를 「건축(建築)」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적절할까?

「건축(建築)」이라는 용어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건축(建築)의 영문표현인 Architecture를 살펴보자. [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의 Architecture/Architect의 의미에 관한 연구 (서현, 2009) ]에 따르면, Architecture와 Architect는 고대 그리스 어휘인 ‘Archi’(우두머리)와 ‘tekton’(무엇인가를 만드는 제작공)의 합성어인 ‘architecton’(제작공의 관리자)과 라틴어 어휘인 ‘architectus’(커다란 작업의 계획자, 건물을 짓는 자에서 세상의 창조자까지 만드는 작업의 계획 감독의 주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Architect는 커다란 작업을 계획하는 주체이고, Architecture는 그 계획의 결과물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꼭 건축물을 계획하는 것 외에 거대한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세계관을 담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도 영어 표현으로 Architect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가 된다.          


다시 「건축(建築)」으로 돌아오자. 「건축(建築)」은 영어인 Architecture에 해당하는 현재의 우리말이다.  한자어인 건축(建築)은 세울 건(建) 자와 쌓을 축(築) 자를 사용하데, 필자의 이해로는 세우고(建) 쌓는다(築)는 의미는 서구권에서 사용하는 Architecture라는 용어의 의미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建築)」이 뜻하는 세우고 쌓는다는 행위가 Architecture가 의미하는 커다란 작업 또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작업의 범위에 포함될 수는 있겠지만 Architecture의 개념적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만 Architecture를 「건축(建築)」이라고 부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발음 차이가 있지만, 한자 문화권에 속한 중국, 일본, 베트남도 Architecture에 대응되는 용어로 우리처럼 「건축(建築)」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공통된 특징일 것이다.           


「건축(建築)」이라는  용어의 출현

그렇다면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건축(建築)」이라는 용어를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의 연구보고서인 [ 건축사의 호칭과 업무의 제도적 형성에 관한 연구 (2015) ]에서 「건축(建築)」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배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건축(建築)」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신조어로 만들어진지 겨우 100년이 조금 넘은 용어다. 일본에서는 19세기 말까지 Architecture에 대응어로 조가(造家:집을 짓다.)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동경대학교 건축학과의 옛 이름도 조가 학과였다고 한다. 변화는 서양식 건축 교육과 개념이 유입되면서 생긴다.

이토 쥬타(伊東忠太) ⓒ wikimedia.org

Architecture를 조가(造家)가 아니라 「건축(建築)」이라고 해야 한다는 이토 쥬타(伊東忠太) 등의 주장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 건축계는 스스로가 서양의 Architect처럼 전문성과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Architecture처럼 권위 있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순히 집을 짓는 사람과 구분하고자, 조가(造家)를 버리고, 「건축(建築)」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화가’, ‘조각가’, ‘미술가’를 부르는 것처럼 전문성과 권위를 갖는 ‘-가’라는 접미사를 「건축(建築)」에 붙였다는 설명이다. 「건축(建築)」이라는 용어는 이런 배경에서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신조어였다.          


영조(營造), 영건(營建)

일본에서 조가(造家)라는 용어를 사용하던 것처럼, 우리는 「건축(建築)」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에 어떤 용어를 사용했을까? 조선시대의 건설공사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영건도감의궤」나 토목이나 건축물 공사에 사용하던 조선시대 줄자인 「영조척」의 이름을 살펴보면, 영조(營造)또는 영건(營建)이라는 용어를 찾을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보이는 영(營)은 ‘경영하다’ 또는 ‘다스리다'라는 의미이므로 Architecure의 Archi- 와 유사하다. 또한 조(造)는 세우고 쌓는 건(建)과 축(築)을 포함하면서 짜 맞추는 가구식 구조 등 다양한 건축 기법을 포괄하는 의미여서 Architecture의 –tekton과 상통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낯설기는 하지만, 영조(營造) 또는 영건(營建)이라는 용어가 뜻하는 의미가 건축(建築)이라는 용어보다 더 Architecture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영건도감의궤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서양에 「건축십서」가 있다면, 중국에는 「영조 법식」이 있다. 「영조 법식」은 하나의 건축물을 짓기 위한 방법과 양식을 지칭하는 용어이면서, 북송시대 이계(李誡)가 편찬한 건축설계, 시공에 관한 이론서다. 이렇게 다양한 사료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Architecture에 해당하는 용어로써 오랜 기간 동안 「영조(營造)」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겠다.     

중국의「영조법식」 ⓒ wikimedia.org
조선시대 건축 전문가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어떤 사람들이 크고 작은 공사를 계획하고 총괄 즉 영조(營造)했거나 영건(營建)의궤를 작성했었을까? 이런 역할을 했던 사람이 있다면, 조선시대의 Architect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경복궁과 한양도성을 건설한 김사행이 있다. 김사행은 고려 때 원나라에 보내졌던 환관인데, 그곳에서 건축에 대한 견문을 쌓고 익혔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유학파인 셈이다. 고려로 돌아온 그는 공민왕의 명으로 노국공주 묘역을 조성하고 총예를 크게 받았다. 환관이긴 했지만, 토목과 건축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 후 나라가 바뀌어도 김사행 같은 전문가는 더욱 필요했던 모양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는데 그 책임자로 김사행을 등용한 것이다. 태조에게 김사행이 있었다면, 태종과 세종에게는 박자청이 있었다. 박자청은 노비 출신이었지만, 김사행을 도와 경복궁과 한양도성 공사를 하면서 계획과 공사까지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유학파 스승에게 수학한 국내파인 셈이다. 정도전 세력과 대립하던 태종은 경복궁을 놔두고 창덕궁을 건설하는데, 박자청을 책임자로 세웠다. 창덕궁 외에도 경복궁 경회루, 성균관 문묘, 청계천 정비, 중랑천 살곶이 다리 그리고 제릉, 건원릉과 헌릉까지 건축에서 토목분야는 물론 다수의 왕실 묘역까지 박자청의 손을 거쳤다. 세종대의 인재 장영실이 종 3품까지 올랐는데, 박자청은 종 1품까지 올랐다고 하니 그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겠다.          

김사행이 총괄하여 건설한 경복궁 / 왼쪽 : 북궐도형, 오른쪽 : 경회루

환관 출신 김사행과 노비 출신 박자청과 달리 높은 신분으로 건축계획을 한 경우도 있다. 은퇴를 앞둔 퇴계 이황 선생이 대목수였던 법연 스님과 서로 서찰을 주고받으며, 도산서당의 건축계획을 상의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후학에게 학문을 전하는 공간이니 지금 우리가 건축 공간의 주제와 개념을 설정하듯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었을 것이다. 건축계획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왼쪽 : 퇴계이황 표준영정(1974,이유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오른쪽 : 도산서당

가문의 종갓집들이 건축적 특징을 갖는 경우도 있었다. 해남 윤 씨 가옥들은 공통적으로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한다. 조리를 하는 부엌에는 지붕으로 환기가 되도록 용마루에 솟을 창을 둔 것과 사랑채 서쪽에 덧 지붕을 설치한 것이 특징들이다. 실학 가문으로 외국서적들을 다수 보유하면서 깊은 서향 빛으로부터 책들을 보호하고자 이런 건축적 특징이 생겼다고 한다. 종가인 녹우당은 물론이고, 분가한 다른 종가에도 공통적으로 반영되었다. 더욱이 윤선도는 보길도에 본인만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낙서재, 동천석실, 세연정 등 다수의 건축물을 남겼다. 

왼쪽 : 윤선도 초상 ⓒ 해남 윤씨 귤정공파 종친회 / 오른쪽 : 녹우당(해남 윤 씨)의 건축적 특징인 사랑채 덧지붕과 환기이 있는 솟을 지붕

경주에는 양동마을 출신 회재 이언적이 있다.  양동마을은 본래 경주 월성 손 씨의 집성촌이었는데, 혼인을 계기 여주 이 씨가 함께 살게 되었다. 외가인 월성 손 씨의 종택 ‘서백당’에서 나고 자란 회재 이언적은 외가의 건축적 공간구조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회재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향단은 그 공간 구성과 건축적 완성도가 남다른데, 그의 건축적 재능이 십분 발현된 것이라 생각한다. 은퇴 후 고향에 내려온 회재 이언적은 자신의 거처인 독락당을 스스로 구상했다. 한쪽은 맞배 다른 한쪽은 팔작으로 비대칭인 지붕 형태가 독특하고, 담장에 살창을 설치해서 시선을 확장하고 계곡으로 연결한 것은 훌륭한 건축적 장치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모두 목재를 다루면서 직접 공사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획을 하고 과정을 관리하는 역할을 훌륭히 해낸 Architect였다.           

왼쪽 : 회재 이언적 / 오른쪽 : 양쪽이 서로 다른 비대칭의 독특한 지붕모양을 한 독락당


영조(營造)와 건축(建築)

조선시대까지 영조(營造)라는 용어가 지금의 건축(建築)처럼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에 와서 건축(建築)을 버리고 영조(營造)나 다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건축(建築)이라는 용어가 그 의미와 개념을 표현하는데 적절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뇌는 언어학적으로 건축(建築)이라고 쓰고 Architecture라고 읽고 있는 것 같다.     


오랜 기간 이 땅에서 사용되었던 영조(營造)나 영건(營建)이라는 용어는 이미 도태되었다. 19세기 말 논란 속에 자리 잡은 건축(建築)은 지난 100년에 걸쳐 확고한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새로운 개념이나 재료를 개발하고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인식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연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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