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②] 여전히 제자리인 남편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끌어냈지만, 어쩐지 결혼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잘 들리지 않습니다. 결혼한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고민과 질문을 나눈 책,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의 글 일부를 연재합니다.
이 매거진은 공동 연재입니다- 정현주 님의 글입니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모든 여성이 이런 식으로 아기를 낳고 키워 왔단 말인가…'
출산 직후 당혹스러움과 허망함과 약간의 배신감에 휩싸인 채, 나는 여성의 삶에 대해 마구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오만 가지 육아용품이 출시됐건만, 출산과 육아는 여전히 원시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줄 때까지 아픔을 참고 힘겨움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이상했다. 여자들은 왜 이런 고통스러운 일을 무수히 반복하며 인류를 존속시켜 왔을까?
아기가 생후 7개월이 됐을 무렵. 생계부양자로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일과 살림과 육아라는 아슬아슬한 저글링에 '개인시간'이라는 공 하나를 더 집어넣고는 남편과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틀렸다. 종이는 이미 찢어지고 구겨졌다. 나는 구겨진 종이를 남편에게 집어 던지고는 새로운 종이를 다시 내밀었다. 될 때까지 해보자고!
계속된 악다구니와 허우적거림 속에서도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옛 동네인 홍대입구역에 들러 추억이 깃든 골목을 걷다가 문득 친구들 생각이 났다.
'학창시절 내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오후 아홉 시. 나는 서른다섯 먹은 내 친구들이 각자의 집에서 아이들을 재우느라 컴컴한 방에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그 친구들과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맘카페 자유게시판 말고 어딜 가야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로부터 몇 달 뒤, 한 주간지에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나랑 친구인 나이. 82년생, 김지영. 나는 당장 서점으로 가 책을 샀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알아야겠다, 괴로움의 이유를
주인공 지영과 나는 공통점이 많았다. 우선 나이가 같았고, 나 역시 지영만큼이나 흔한 이름을 가졌다. 위로 언니, 밑으로 남동생이 있다. 결혼해서 딸을 낳았다. 그리고 결혼 생활과 육아가 무척 힘겨웠다.
많은 부분 지영에게 공감했지만 한편으로 그녀의 삶에 진저리가 났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면서도 지영을 그렇게 그려낸 것이 못내 불편했다. 항변하고 싶기도 했다. 난 지영과 다르다고. 모두가 다 저렇게 사는 건 아니라고. 그것을 지영 '개인'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우리 삶엔 '결혼과 출산'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그보다 앞서 '여성'이라는 굴레 안에서 형성된 비슷한 서사가 있었다. 여자로 태어나 딸, 여학생, 여직원, 여자 친구를 거쳐 아내, 며느리, 엄마가 되는 삶. 우리는 기어코 '엄마'라는 삶에 당도하고야 말았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줄곧 어딘가 불쾌하고 불만족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것이 내가 '여성'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인지, '나'라는 개인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인지 자주 헷갈렸다. 나는 혼자 고민하는 대신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페미니즘 모임'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우연히 엄마들끼리 함께하는 페미니즘 책모임 '부너미'를 알게 됐다('부너미'는 결혼하고 출산한 여성들이 모여 엄마들의 언어를 만들기 위해 페미니즘을 탐구하는 모임입니다).
시간은 늘 부족했고 이야기는 늘 차고 넘쳤다. 우리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공명을 일으킬 때, 각기 다른 경험치가 서로의 시야를 확장할 때, 깨달은 바가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나는 이것이 우리의 페미니즘, 엄마들의 페미니즘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목소리를 냈고, 움직였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도돌이표를 지나고 나면
슈퍼우먼이 될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나는 '어떤 아내 또는 엄마가 되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 역할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는 이상 '나'라는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선에서 감당하면 될 일이었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 아이를 나와 독립된 존재로 여기고자 했다. 모성애를 의심받을지언정, 나를 지키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비련의 주인공이 되지 않고 남편과 아이를 악역으로 등장시키지 않는 방법이었다.
결혼 7년차. 페미니즘 모임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부너미까지 밀도 높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 황금비율을 찾은 것처럼 만족감이 찾아왔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과하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나'를 중심에 놓는 생활. '김지영이 가지 않은 길'에 들어선 나는 꽤 만족했고, 이렇게 해피엔딩일 줄 알았다.
우리 집에는 가부장이 없다. 나는 경제적·정서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하고 있지 않다. 그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우리 가정의 주 수입은 내 월급이지만, 남편도 부지런히 자신의 영역에서 경제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역할 수행을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 사이의 성 역할 규범은 꽤 무너졌고 그만큼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그랬다. 그런 줄 알았다. 처음 페미니즘을 만난 이후로 내 삶은 분명 바뀌었지만, 무언가는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 중심을 잃지 않으려 숨 한 번 크게 내쉬지 못하고 계속 긴장하고 있었는데,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혀 온 '집안일 분담' 문제에 또 다시 발목 잡혔고, 삐끗하는 순간 균형이 와르르 무너졌다.
얼마 전 남편과 카페에 마주앉았다. "당신과 같이 살고 싶지 않아." 남편은 내 말에 당황했고 발끈했다. "당신, 페미니즘 책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냐?" 책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사고방식을 문제 삼는 그 낡은 사고방식과 더불어, 지지리 바뀌지 않는 그의 생활방식이 문제였다.
어떻게든 집안일을 나누려고 했다.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알았고 자주 성공(?)했지만, 그 황금기는 길어야 몇 주간 지속될 뿐이었다.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다시 내 몫이 됐다. 그러면 나는 각성을 하고 집안일(가사노동뿐만 아니라 가정 유지를 위한 모든 것)을 재편성한다. 한동안은 다 이룬 것 같은데, 오래지 않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수없이 반복되는 도돌이표를 지나고 나면 남편과 내가 비슷하게 짐을 짊어지는 날이 올까? 인생에 일시정지 버튼이 있다면, 잠깐 눌러놓고 기다리고 싶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시계는 멈추지 않고, 우리는 나이를 먹고, 대부분의 집안일은 여전히 '엄마' 몫이다.
김지영씨, 잘 지내나요?
자, 이제 다시 한번 이성을 부여잡고, 나의 황금 비율을 되찾기 위해 그와 또 다시 길고 긴 대화를 이어가야 할까(지금까지 숱하게 해 왔고 아마 앞으로도 해야 할 대화)? 그리고 그 결심과 약속을 실천할 기회를 줘야 할까? 계속 노력, 노오력, 노오오력(실은 항상 내 쪽에서 먼저 요구, 요오구, 요오오구) 하다 보면 질적으로 다른 결혼 생활을 하게 될까? 아니면 서로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약간의 포기를 해야 할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아직 가 보지 않은 인생의 처음을 매번 경험하고 있다. 고민하고 헤매고 돌아 나오고 다시 걸음을 뗀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되 우리 가족 모두에게 더 좋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하리라.
다행히도 페미니즘은 나의 감각에 더듬이를 세우고 내 안에 차오르는 생각과 말들을 따라가고자 하는 의지를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마주치는 고정관념과 사회 규범과 관습이라는 척력에 밀리지 않을 약간의 근육도 만들어 주었다. 산 넘어 산이지만 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에서부터 김지영의 뒷이야기 또는 김지영과는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 나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그 책을 읽었을 수많은 '김지영'들을 위해 먼저 입을 열었을 뿐이다.
그동안 우리들의 삶은 조금 더 나아졌을까? '김지영'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어떤 이야기든 좋으니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어쩌면 작은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모두들, 잘, 지내나요?
글 : 정현주 | 일복 많은 생계부양형 직장맘. 하루를 꽉 채우는 ‘해야 할 일’들 사이에‘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든 껴 넣는 것이 목표.
덧붙이는 글 | 책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가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