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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Feb 11. 2020

남편은 신랑도, 오빠도 아니다  

기혼여성들이 남편을 부르는 호칭, 그 불평등함에 대해  




 카페 한쪽에 앉아 노트북 켜고 글 쓰던 토요일 오후. 뒤쪽 테이블 앉아 있던 4-50대 여성 네 명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하게 됐다. 엿들을 의도는 아니었는데 특정 단어를 한 번 듣고 나니 유독 그 말만 또렷하게 들렸다.   

  

 “어제 우리 오빠 생일이었잖아”, “신랑 밥은 해주고 나왔어?”, “우리 신랑이 애 보고 있어.”


웅얼거리는 실내 소음 때문에 전후 사정과 맥락은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받아쓰기하듯이 내 귀에 지속적으로 들어온 낱말은 자신의 배우자를 일컫는 ‘신랑’ 또는 ‘오빠’라는 호칭이었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공기처럼 듣고 써왔던 말이 미묘한 냄새처럼 신경을 거슬리게 된 계기는 ‘엄마 페미니즘 탐구 모임’ ‘부너미’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결혼식 올리고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왜 ‘신랑’이라고 부르는 거죠?”      


 우리는 기혼여성이 겪는 가족 내 성별 불평등을 지속적으로 다루어왔고 부너미의 레이더망은 아무리 사소한 행동, 태도, 말이라고 해도 사정 봐주지 않고 예리하게 감지했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문제 제기 덕에 나 역시 ‘신랑’이라는 호칭을 낯설게 체감했다. 마땅하지 않다 느끼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무심결에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내들만 애타게 '신랑'을 찾는다 


결혼을 준비하거나 결혼식을 막 올린 부부를 일컫는 말, 신랑, 신부.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신혼이 지나고 아이들이 크고 중년이 한참 넘도록 자신의 남편을 신랑이라고 부른다. 나는 남편을 신랑으로 부를 만큼의 설렘이나 애틋함이 남아 있지 않아서인지 그 호칭이 입에 붙지는 않았지만 다른 이들이 말할 때 딱히 거슬림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반대의 경우에 대입해보니 기혼 여성들이 자주 쓰는 신랑이라는 호칭은 너무나 기이했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남자 동료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해보자. 

  “오늘 신부가 아이를 데리고 온다고 해서요”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여자 동료가 이런 말을 남긴다면 어떤가.  

  “오늘 신랑이 아이를 데리고 온다고 해서요.”      


 어감의 차이가 현저하게 느껴진다. 분명 신랑과 신부는 같은 상황에서 남성과 여성을 일컫는 수평적인 호칭인데 쓰임새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신랑이라는 말은 어색한 거부감 없이 읽히고, 신부라는 단어는 어법이 잘못된 문장처럼 느껴진다.      




  존칭어가 극도로 발달한 한국어에서 호칭은 관계의 역학을 정의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서로 간에 위계가 없다면 호칭 또한 상호 수평적이며 동일한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높임말이면 같이 높이고 하대면 같이 하대다. 적용 대상도 같아야 한다. 그러나 여자가 배우자를 향해 쓰는 호칭과 남자가 쓰는 호칭의 균형은 비틀려 있다.      


 ‘나는 당신을 평생도록 결혼식 때의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살겠어요’라는 매 순간 다짐인 걸까. 서로를 그리도 살갑게 여긴다면 남자 또한 자신의 배우자를 일컬어 ‘신부’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공적인 자리는 물론 동료나 친구들 앞에서.      


 그러나 한국의 남편들은 제삼자에게 ‘아내’ 또는 ‘처’, ‘부인’이라는 말조차 못 꺼내서 ‘와이프’, 또는 '마누라'라고  부르는 지경 아닌가. 이런 와중에 아내들만 결혼식의 풋풋함을 가득 새긴 신랑을 애타게 찾고 있다.      


 여기에까지 이르니 신랑이라 부르는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뜨끔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나서서 호칭을 고쳐주면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속으로만 ‘신랑, 아니야. 아니라고요!’라고 중얼거린다.         


   



 

'오빠'라는 호칭은 문제 없습니까? 



신랑이라는 호칭의 문제점은 부너미 모임에서 쉽게 동의했다. 그러나 의외의 장벽에 다시 부딪혔다. 남편을 일컫는 또 다른 말, ‘오빠’였다.      


 “‘오빠’라는 호칭은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좀 아니라고 보거든요.”

 “왜요? 연애할 때부터 오빠였고, 오빠라는 말이 익숙해서 계속 부르는 건데요?”     

 

 나름 성평등주의자들인데 오빠라는 말이 '반평등'한 호칭이라는 말에 다들 반발했다.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오빠라는 호칭부터 버린 나는, 따지자면 ‘반 오빠파’였다. 공식적인 부부가 되었으니 우리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겠다는 생각 했고, 아무래도 지인이나 친척들 앞에서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그렇다고 딱히 큰 문제라곤 여기지 않았다. 각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나보다 10개월 먼저 태어났고 연도로는 고작 1년 차가 난다. 우리가 막 데이트를 시작했을 때 남편은 나를 “나리씨”라고 불렀고 나는 아마도 “저기요.”였던 거 같다. 남편이 먼저 서로 말을 놓자며 제안했고 자기를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내가 그를 ‘오빠’라고 불러주고 말을 놓는다는 건  ‘친근한’ 남성으로 대한다는 의미였고, 비로소 그도 나를 자기보다 무려 10개월이나 어린 연하의 여성으로서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나리야”라고 불렀다. 그래서 우리는 친해졌는가. 가까워짐은 맞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그건 일종의 서열 정리였다.     

 




남편은 연상의 아내를 누나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누구와 관계 맺을 때 나이를 우선 확인한다. 나이차가 나는데도 존칭 한다는 건 거리를 두고 예의를 차리는 사이라는 말이다. 우린 이 긴장을 없애기 위해 연장자가 말을 놓는다. 서로를 서열 상태에 위치시킴이 친근함의 표식인 거다.      


 여기에 상대 성별이 달라지면 존칭은 좀 더 미묘한 뉘앙스를 띤다. 특히 ‘오빠’는 단순히 남자 연장자에게 쓰는 호칭만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선배라거나 직급을 섞어 부르던 남자들은 조금 친분이 쌓이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자신을 ‘오빠가~’라고 슬금슬금 자칭하곤 했다. 느끼하게 내뱉는 말에 토가 쏠리는 것 같았지만, 내가 오히려 그들을 사람이 아닌 남자로 대하는 과대 반응은 아닐까 싶어서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면 눈 딱 감고 오빠라고 해줬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어떤 남자들에게 향하는 ‘오빠’는 ‘언니’와 비슷한 무성적 어감으로 남기도 했다.       


 하지만 동성친구처럼 편해진 상태가 아니고서 하는 오빠는 여전히 불온한 함의를 지닌다. 친족관계를 떠난 오빠라는 말이 얼마나 이상한지는 동급 어인 ‘누나’의 쓰임으로 알 수 있다. 남자들은 연상의 여자와 이성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누나’라는 말부터 뗀다. 이승기가 부르는 '누나, 넌 내 여자니까'는 결국 '너라고 부를게'로 끝난다. 


누나는 가족 중 연장자를 향한 말이며, 한국사회에서는 연장자에게는 그만한 서열 권력이 주어지게 되고, 로맨스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그런 힘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결혼하고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남편도 연상의 아내를 누나라고 부르지 않는다. 만약 누나라고 부른다면 그 말은 역설적으로 아내를 연장자로 대우하는 척하면서 당신을 여자로 보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이건 배우자에 대한 존중이 아닌, 명백한 무시와 모욕으로 행사된다.      






그보다 못하고 싶다. 그보다 낮아지고 싶다.
오빠라고 부르면서!  



 그러면 내가 그와 데이트를 시작하며 ‘오빠’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건 어떤 이유였을까. 내가 만난 당시의 남편은, 통상적인 남성다움과는 꽤 거리가 있는, 소심하고 내향적인 남자였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향적이며 추진력이 있는 나는, 가뜩이나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는 마당에 언제든 그를 리드하거나 넘어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를 향한 ‘오빠’라는 호칭은 내가 그를 연장자로서 대우해주고 성별 긴장감을 유지하는 장치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와 내가 차마 동등해지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우리 관계를 주도할 힘이 나에게 오지 않길 바란 것이다. 로맨스를 위해.       


 남자들이 로맨스를 위해 누나를 버린다면, 여자는 남자와 로맨스를 위해 오빠를 받아들인다. 남성에게 나이에 따른 권력을 주고 그만한 힘을 행사하게 하며 존중감을 유지한다. 단지 사장님, 선배, 과장님과 같이 딱딱한 권위가 아니라 오빠라는, 얼핏 느끼기엔 다정한 말로 권력을 '낭만화'한다. 친근함의 외피만 썼을 뿐이지, 위계와 서열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익숙한 통념에 따른 것이었다. 


 결혼하고서도 여자가 남자를 오빠를 부르는 건 여전히 서열상 아래에 있다는 재확인에 다름 아니다. 부부 관계에서 이런 식의 위계는 과연 옳은가.  현대 사회의 부부는 상하관계도 나이에 따른 권력이나 역할이 분배되는 관계도 아니어야 한다. 지극히 수평적으로 협업하는 동료에 가깝다. 

 

 오빠라는 말은 아내를 파트너이거나 동료라는 자리에서 지운다. '여동생'과 같이 오빠의 휘하에 있는 보호하거나 지켜줘야하는 위치로 내려가게 한다. 


 서로 편하면 그만 아니라고? 


 요즘 가족 내 호칭 성차별 문제가 이슈화 되고 있다. 시댁은 시가로 바꾸고 도련님이나 아가씨, 장인어른, 장모님 등의 호칭 역시 수정하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익숙함을 버리는 건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호칭이 서로에게 편하다면 불평등이 더 편하다는 말과 다름없다.  우리 삶의 불평등은 공기 같아서 일부러 낯설게 보려 하지 않으면 감지되지 않는다.  








'누구야'에서 '여보'로, 더 나아가 '누구씨'로  



 결혼하고서 나는 남편을 '여보'라고 불렀다. 남편에게도 나를 여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야’ 자를 떼지 못하고 ‘여보야’라고 불렀다. 이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닭살이라며 귀엽다고 반색했지만 나는 소름 돋게 싫었다.  나중에야 파악했다.      


 ‘야’라는 명백한 하대를 고수한 것은 어쨌건 그가 나를 자기보다 낮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음을 무의식 중에 반영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나를 마찬가지로 ‘여보’로 불러주기를 또렷하게 요청했다. '여보야', '나리야'는 금지어다. 그는 노력하겠다고 했고 호칭을 바꿨다.  


 부너미 멤버 중 한 분은 “오빠”와 “누구야”에서 서로에게 “누구 씨”라는 호칭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자리 잡았다고 했다. 호칭만 바꾸었 뿐인데 남편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누구씨라고 부르면 상대방을 훨씬 존중하게 된다.  나의 바람 역시 우리가 서로를 ‘누구 씨’라고 부르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부부 사이가 너무 서먹해지는 것 아니냐고? 아니 나는 그렇게 되고 싶다. 


우리는 서로 동등하며 수평적 위치에 있는 관계라는 것, 그러므로 서로에 대한 거리와 동시에 존중을 담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며 살고 싶다. 관계의 친근함보다 중요한 건 관계의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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