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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Feb 28. 2018

명절의 풍경

[위기의 주부] 단 하루라도 불편한 이유 



1. 불량 며느리와 시어머니       


 나는 평상시 시가와의 관계, 며느리로서 정체성에 부대낌이 덜한 편이다. 시가와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지 못하기도 하지만, 결혼 준비부터 결혼 후에도 시어머니가 나에게 ‘며느리’라는 이유로 기대하시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 집은 그다지 가족주의적이지 않다. 아들만 둘에 남편은 차남인데 식구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서로 간에 간섭과 참견이 없다. 다른 집에서 중히 여기는 가족 행사라도 자기 볼 일 있으면 스스럼없이 빠지고, 누구 생일이라 해도 챙기지 않는 가풍이 있다. 그 덕인지 시어머니도 며느리들에게 딱히 관심이 없으시니. 나는 무척 감사하면서도 ‘불량 며느리’가 된 것 같아 좌불안석이었다. 왠지 나서서 가족여행이나 생일 모임을 꾸려야 할 것 같으면서도, 친정 식구도 못 챙기는 마당에 멀쩡한 두 아들 놔두고 내가 왜 하냐 싶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올해로 8년 차. 몇 달에 한 번 하는 안부인사가 어색하지 않아졌다.       


명절에도 불량했다. 시가는 대구, 친정은 전주. 우리 집은 경기도. 명절에 대한민국을 횡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이가 지금보다 어릴 땐 이번 추석엔 전주, 다음 설엔 대구를 가거나 명절 2.3주 전에 방문하는 등 갖은 요령을 피우며 차례에 여러 번 빠졌다. 이럴 수 있던 건 역시 시어머님이 깔아놓은 멍석 덕분이다.       


아버님은 둘째 아들이지만 큰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맏며느리가 된 시어머니는 '차례 음식 장만'을 없앴고 '포트럭'으로 바꿔버리셨다. 각 집마다 나물, 떡, 전, 고기를 나눠 맡아 사오든지 만들어오든지 (당연히 모두 '사 온다'.) 해서 명절 당일 아침에 큰집에 집결한다.      


어머니의 조용한 반란은 '명절 음식 준비 폐지'에 그치지 않고 몸소 차례를 재껴 버리는 데까지 이르셨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일을 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님의 사업이 망한 후(?) 실질적 생계부양자가 되셨고 이번 명절에도 근처 요양병원에서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신다. 명절 때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사람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신다. 돈 못 받는 명절 노동을 하느니' 병원에서 일하고 만다'라는 생각이 아니실지 감히 짐작해본다. 하지만 가족여행은 매우 반기시며 호시탐탐 명절 보이콧을 꿈꾸시니 시어머니의 소소한 일탈에 나는 고부 관계를 넘어선 연대를 느끼지만 가까이 가기엔 여전히 어려웠다.      






2. 단 하루라도여성이 철저히 배제된 차례와 겉도는 말들      


 명절 음식 준비라는 중노동은 없어졌지만 차례상 차리기는 남아있다. 친척들이 낯설어 내 무릎에만 앉아있던 딸아이가 사촌 언니와 잘 놀면서 나도 부엌일에 본격 투입되었다. 명절 음식 준비를 없앤 시어머니께서도 차례만큼은 어쩌지 못하셨다. 네 시간 동안 진행되는 남자들의 친목도모, 그들이 조상님께 절하고 큰 상에 모여 앉아 밥 먹는 동안 여자들이 좁은 부엌을 오고 가며 ‘서빙’을 하는 것이 내가 겪는 명절의 모습이다.      


 설날이라고 모두 모여 앉아 세배 주고받고 정겨운 덕담 나누는 시간도 없이 남자들끼리 쿵닥쿵닥 해치우니 여자들은 일꾼일 따름이다. 며느리들끼리도 좁은 부엌에 서서 눈인사 정도나 나누지 딱히 오고 가는 말도 없다. 조카들은 작은 방에 모여 티브이를 보며 지루한 시간을 때운다.       


 차례가 끝나면 거실의 넓고 긴 상에 남자들이 모인다. 반찬과 국과 밥을 날라주고 서둘러 작은 방에서 배를 곪으며 젓가락 빠는 아이들 밥을 푸려니 ‘밥이 되다,’ 국이 싱겁다.‘, ’ 간장을 가져오라 ‘는 호통이 날아왔다. 아이들 상에 놓을 반찬까지 모조리 큰 상으로 가버린 것도 속상한 데 이 와중에 반찬투정이라니. “다른 밥 없어요, 그냥 드세요!”라고 큰 며느리가 외쳤다. 크고 긴 상에 남자들이 넉넉히 자리 잡아 여유롭게 밥을 먹는 동안 손녀들 열 명과 며느리 다섯은 좁은 4인용 밥상에 겹겹이 끼여 앉았다. 형님들은 대접에 나물을 비벼 뚝딱 해치우고 나는 꿋꿋이 소고기 뭇국과 흰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면 며느리들은 남은 음식물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티브이 보는 남자들에게 커피와 과일 후식을 내놓는다. 정리가 끝나고 한 숨 돌리며 구석에 앉아 있는데 명절 미풍양속을 보여주는 뉴스 시청 중 서로 주고받을 말이 없으니 만만한 막내인 남편과 나에게 딴지가 걸렸다.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속뜻은 ‘둘째는 아들이어야지.’) 시어머니가 그 자리에 계셨다면 “아들 필요 없다! 하나만 잘 키워라.”라고 소리 내주셨겠지만 방어해줄 사람이 없어 썩소만 지었다. 친척끼리도 ‘하나면 됐다’ 파와 ‘둘째 있어야’ 파로 나뉘어 옥신각신 하는 중, ”둘째 안 낳을 거면 결혼을 왜 했냐.? 너희 부모님은 뭐라 안 하시냐? “라는 물음이 결국 내 입을 열게 했다.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 '애 데려가서 키워주실 거 아니면 낳으라고 말하지 마세요.' 라고 말했는데요. “ 어르신은 허허 웃으시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나중에 형님이 말하길 자기도 몇 년 전에 겪은 일이라며 ”10억 주면 낳을게요.“라고 하니 둘째 타령이 쏙 들어갔다고.     


 할 말 없으니 묻는 안부 인사라고 생각한다. 학연이나 조직, 아니면 가족으로 밖에 정체성 확인이 되지 않는데, 공통분모가 뭐가 있겠나. 오랜만에 만나 "요즘 책 뭐 읽어?"라고 물을 수도 없고. 그래도 이번 명절엔 평창 동계 올림픽이 끼어 어색한 대화 단절의 윤활유가 되어줘서 참말로 다행이었다.     


 명절을 피하고 싶지만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이 반갑기도 하다. 이렇게라도 안 보면 어느 핑계로 일가친척이 집결할까. 차례라는 형식이 사라지면 친척들이 자발적으로 모일 구실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또 형제 관계조차 아내를 통해 의존해온 연로하신 아버님들은 아내들이 친척 관계 유지, 조상 차례와 제사를 위한 노력에서 손을 놓으면 어찌할까도 궁금해진다. 직접 하실까.             







3. 조용하고 은밀하게  


남편은 결혼 초기 이런 시댁이 없다며 나보고 복 받았다고, 감사하라며 으스댔다. 왜 이런 처지에 황송해야 할까, 시가 차례에 가서 일해 주는 나에게 남편이 고마워하지 못할망정. 나는 물론 시어머니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나에게 며느리 노릇을 덜 시켜 주셔서 나를 덜 부려먹어서 감사한 게 아니다. 맏며느리로 최전선에서 작은 것부터 바꿔주고 계시기 때문에 같은 여성으로서 어머니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시가로 가는 길은 불편하다. 나에게 주어지는 노동의 양이 적다 해도 며느리 역할을 사사 건건 강요받지 않는다 해도, 명절과 차례에 담긴 모습 하나하나에 속이 편하지 않다. 이만큼에 감사하며 입을 꾹 다물고, 내 처지는 그래도 낫다며 안도하면서 불편함을 외면해야 할까. 일 년에 한두 번, 조선시대로 타임슬립 해서 차례상을 차릴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차오르던 차, 책에서 이 문단을 발견했다.      


명절 증후군은 단지 1년에 한두 번 과도한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고충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가정에서의 여성 착취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 제의에 대한 여성들의 신체적 거부반응을 뜻한다. '명절 하루 일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속 좁게 구는 거야? '처럼 멍청한 소리도 없다그날 하루 우리는 364일 겪어온 차별과 착취를 어머님과 아버님과 서방님과 아가씨들 앞에서 19세기 버전으로 응축해 겪으며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여성의 운명에 몸서리치고 있는 것이다문제는 노동의 강도가 아니다아무리 궁리해도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 노동의 합목적성이 비극의 원인이다. "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미래에서 온 며느리 박선영   

  

364일을 차별 없이 산다 해도 단 하루 혹은 이틀 동안 사회와 시대에 놓인 여성의 위치를 집약해서 확인한다. 대 가족이 모인 공적인 자리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성씨 다른 조상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고 그릇을 씻고 구석에 앉아 쭈그려 남은 밥을 먹는다는 건, 단 하루 이틀이라고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도 상징적이다.      

차례가 끝나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형님과 영화를 보러 갔다. 남편의 조상을 위해 수고한 우리에게도 보상은 필요하니까. 형님은 나에게 슬며시 말을 건다. “동서, 우리 친정은 제사 안 지내거든. 아버님 어머님 돌아가시면 성당의 위령미사로 대체하는 게 어때?” 형님과 아주버님, 조카까지 얼마 전 세례를 받은 후 성당에 나간다고 했다. 아까 부엌에서 큰 형님이 “요즘은 차례를 한 번으로 줄이는 추세다.”라고 넌지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머님은 공공연하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차례와 제사를 없애시겠다고 말하고 다니신다. 


내 주변 여자들은 노회 한 어른들 앞에서 봉기를 일으키지 못하지만, 명절의 의미조차 무색하게 하는 차례라는 짐을, 제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조용하고 은밀한 준비를 하고 있다. 말없는 동조와 연대를 통해. 나는? 친정에서 남편 옆구리를 푹 찌르며 설거지를 부탁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다음 명절부턴 각자 부모님 집을 번갈아가며 먼저 가자고 말했다.      


누군가 도미노를 툭 치기를 기다리는, 언제든 와르르 무너질 준비가 되어있는 아슬아슬한 명절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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