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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Mar 04. 2018

몸으로 읽는 책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며




몇 년 간 책 읽기에 게을렀다. 아니 읽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해두자.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집안 살림을 하면서 가끔 얼마 벌지도 못하는 돈을 벌겠다면서 바둥거리며 책 읽기는 밀쳐졌다. 기껏해야 이동하는 교통수단 안에서 시간 때우기로, 잠들기 전 수면제로 쓰였다.     


책만 읽으며 사는 삶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스펙으로 환원되지 않는 공부를 하겠다고 철학책들 뒤적거리며 설치던 때도 있었다. 책 읽기를 열렬히 사랑했던 그때, 나는 앎이 주는 쾌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믿어온 통념이 깨지는 짜릿함에 중독되니 웬만한 것들은 시시해졌다. 나의 고민을 설명할 언어를 책에서 찾았고 어느 길을 걸어야 할지도 책에서 점지받았다. 책에 담긴 지혜와 지식을 따라가면 사는 일이 두렵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한 때 거실과 방 가득히 채웠던 500여 권이 넘던 나의 책. 한번 읽고 다시 읽지 않을 책은 매년 바로바로 처분했는데도 그만큼이 늘 있었다. 다 읽은 건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읽으리라 각오하며 보물처럼 소중히 다루던 책들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 책들을 버릴 날이 오면 내 삶이 전면적으로 달라지는 때일 것이라고.  

   

그 날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아기를 낳고 키우며 힘들 때마다 습관처럼 책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위로받고 싶었고 깨달음을 얻고 싶었다. 막막함에 책장을 훑어보았고 전에 좋아했던 책을 펼쳤다. 그런데 단 한자도 눈에 들어오지도 읽히지도 않았다. 한때 강렬함으로 읽었던 책이 지금은 읽히지 않는 책이 되어버렸다. 믿었던 책에 대한 배신감이 휘몰아쳤다. 책들을 바라볼 때마다 중압감을 느꼈다. 처절하게 읽었던 책들인데 왜 지금 아무 소용이 없지? 왜 읽히지 않지? 대체 이 책은 다 뭐지? 삶에 필요하지 않은 텍스트가 대체 무슨 소용이지? 그래서 책들을 버렸다. 백 권 정도 남기고 사 백여 권을 팔고 주고 기증했다. 


버릴 때의 단호한 결기는 어디로 갔는지 뒤늦게 후회하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버릴 필요는 없었는데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그렇게 끊어내지 않았다면 책읽기를 다시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처음으로 돌아왔다. 한 동안의 소강상태를 지나자 다시 책에 마음이 갔다.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말고, 내 몸이 원하는 책을 읽자. 유희로, 시간 죽이기로, 때로는 위로를 받고자 책을 펼쳤다. 더디고 게으른 몸풀기를 지나고 조금씩 몽글몽글 의욕이 들어왔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말해주는 책, 나의 아우성을 설명할 언어를 주는 책, 나의 질문을 구성할 힘을 줄 수 있는 책을 찾기로 했다.  


나는 다독하는 편은 아니다. 권 수 세어가며 1년에 백 권 채우기 목표로 읽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한 권의 책을 두 번 세 번 읽고 또 읽고 반복한다. 얼마나 많이 읽고 어떤 지식을 습득하였는지는 이제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어떤 책의 어느 문장이 나를 통과하며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고 돌이킬 수 없는 어느 지점으로 이끌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몸으로 읽는 책 읽기 하고 싶다. 내 몸 어딘가에 새기게 된 <씨앗 문장>을 중심으로 책 읽고-쓰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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