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이 와 내가 자고 있는 어스름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에 남편은 항상 살그머니 집을 나선다. 아무도 배웅하지 않는 써늘한 출근길.
가장의 무게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남편은 자고 있는 나를 일부러 깨우지는 않지만 항상 나지막이 "다녀올게"라며 인사를 건넨다. 나는이불속을 더 파고들며 마음 한 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무심하게 "응, 옷 따뜻하게 입고, 빙판길 조심하고 잘 다녀와~" 말한다.
남편이 오늘은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어린아이처럼 자고 있는 나와 보름이가 깰까 봐 방문 손잡이도 소리 없이 돌려 닫는 남편이 좀처럼 하는 행동은 아니다.
잠결에 반만 떠진 눈을 하고서 "왜 그래?"하고 물으니 "그냥... 요즘 걱정 많이 하는 거 같아서 안쓰러워서..." 한다.
나는 그 손길하나에 남편의 마음이 전해져
"아니야, 걱정 안 해. 잘 다녀와~"라고 답해주었다.
잠이 달아났다.
일찍 출근하는 그가 우리를 더 자게 배려하는 마음을 알기에...
나도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게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갑자기 눈에 눈물이 차올라 얼마만큼 울었다...
내가 미혼인 이십 대 때 공원에서 나이 지긋한 중년부부가 물건이 담긴 비닐봉지 몇 개를 기다란 막대기에 꿰어 걸고, 비닐봉지가 대롱 되는 막대기를 양쪽에서 들고 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어린아이 같은 중년의 부부모습이 유머스러워 메모해 놓았었다. 그때는 그 모습이 서로짐을 더 들기 싫어 티격태격하다 공평하게 들기 위해 생각해 내신 방법일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안 한 딱 이십 대 다운 상상력이었다. 결혼하고 지금 생각해 보니 서로 들겠다 하며 "그럼 함께 드소" 하고 나눠진 것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살아보니 그랬다. 짐을 더 지게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나눠지고 싶은 사람. 남편과 나는 인생의 길을 나란히 걷는 사람. 상대가 더 느리게 걸으면 보폭을 맞춰 함께 걷는 사람. 우리는 '동반자'다.
나는 이 '동반자'라는 명사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 마음속 깊이 아려온다. 무심히 지나치던 단어가 진심으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책. 보고 있음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꿈에서라도 할아버지와 만나 행복을 간직하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이십 대의 사랑 못지않은 깊은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갑자기 남편이 사랑스러울 수 있으니, 남편이 미울 때 이 그림책을 보면 "미우나 고우나 내 남편"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