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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지령 Apr 12. 2023

"우리는 고래  모자(母子)"

동물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다가 나는 한 문장에 매료되었다.


"고래는 어미와 새끼가 무척 친해요.

유별난 경우는  평생 함께 살기도 한답니다."

 

                   (고래 책, 안드레아 안티노리 2018)


그 그림책은 고래에 관련된 책이었고, 나는 이 한 문장 때문에 고래를 동경하게 되었다. '고래들도 분명 친밀하게 교감하는 거야'.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확신했다. 어쩌면 저 친밀함은 교감과 소통이  조건이 아니라면 절대 이뤄질 수 없다. 눈을 감고 (고래는 어미와  새끼가 무척 친해요)를 다시 읇조리니 어미고래와 새끼고래의 교감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듯 상상이 되었다.

젖을 물려 키우고, 새끼를 낳기 위해 겨울에는 따뜻한 적도 쪽으로 이동하고, 여름에는 먹이가 풍부한 극지방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고래들에게는 우리들의 어부바같은  어미와 새끼만의 특별한 교감이 존재할 것이다. 새끼고래의 고단함을 알아주는 어미고래의 희생이 담긴 사랑이.. 나는 어미고래와 새끼고래가 교감한다고 상상하면 한없이 고래가 신비롭게 느껴진다. 내가 살면서  고래를 실제로 볼 수 있을까? 고래는 실제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희박성 때문에  나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지 모른다. 내가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면, 고래와 만나 고래의 매끈한 피부를  어루만지며  엄마라는 공통점을 가진 존재로서  진심 어린  교감을 나누고 싶다.


고래의 가장 큰 특징은 물속에 사는 포유류라는 점이다. 고래는  인간처럼  새끼를 낳아 젖을 물려 키운다. 물속에 살지만 물고기는 아니라서 아가미가 아닌 허파와 숨구멍을 통해 숨을 쉰다. 고래가 물줄기를 뿜어내는 것은 숨구멍을 통해 숨을 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미고래는 새끼를 낳자마자, 새끼고래가  첫 숨을  쉬게 하기 위해  바다수면 위로 새끼고래를 밀어 올려 숨을 쉬게 한다.


아이가 27개월 즈음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어 아이와 첫 분리를 하는 날.  나는 울었다.

엄연히 말하면 아이는 내 뱃속에서 나오면서  탯줄을 잘라  분리가 이루어졌다지만

아이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엄마와 아이사이의  정서적 결속이 강해지는 시기가 아니던가. 2년 남짓한 시간을 집 앞 슈퍼를 가도 언제나 한 몸처럼 업고 다니고, 어디든 같이 다녔는데 어린이집에 적응시킨다고  2시간가량 나와 분리시키는 첫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두고 오면서  어린이집 현관 밖으로 흘러나오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내 마음은 넘어져 피부가 까진 것처럼 쓰라렸다. 등원할 때 보름이가 타고 갔던 빠방이 비어진채로 끌고 오면서 엄마와 떨어진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등원하던 아침길. 꽃에 앉은 나비, 나무 위 참새를 가리키며 함박웃음 지었었는데... 돌아오는 길. 등원할 때 봤던 그 꽃에  나비, 나무의 참새를 홀로 보면서 아이가 처음 시작하는 홀로서기에  어찌나 마음이 짠하고 허전하던지 마음 한구석이 구멍나, 그 구멍으로 바람이  계속 새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집안에 들어서니  오랜만에 겪는 공간의 고요가 낯설어 멍하게 앉았는데  거실바닥에 나뒹구는 타요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륵... '그래  나도 이제 내 새끼가 제일 귀하구나. 나도 이제 진짜 엄마구나.'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미고래가 새끼를 낳자마자 새끼고래의 첫 숨을 위해 수면 위로 새끼고래를 밀어 올리는 것처럼

나는 그날 내 자식을 위해 온마음을 다하는 모성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개인 물품을 보내라는  문자를 받고 첫 숨을 시작하는 아이의 개인물품에 그냥 "보름"  아닌 "사랑하는 보름"이라고 이름을 써주었다. "사랑"이라는 말의 힘을 믿기 때문에, 사랑받고, 사랑을 나누는 아이로 크길 바라는 마음을 보름이 첫 물품에 담았다.


그 아이는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아이로 자라  올해 10살이 되었다. 우리는 고래처럼 우리만의 신호로 교감한다. 우리는 3분도 채 안 되는 짧은 등굣길을 함께 걸으면서 굴러다니는 나뭇잎을 보고 쥐인 줄 알고 놀라서  웃고, 봄꽃산책을 나가면 보름이는 나에게  봄꽃으로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주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정취를 알아차리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같이 들으며 따라 부르고,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나란히 누워  함께 책을 읽으며 울고 웃고, 우리만의  암호 같은 구호도 여러 개 만든다.


아이는 내 안의 아이를 깨운다. 내게 조금이라도  순수한 아이다운 마음이  있다면  그건 내 안의 고래와 같은 교감의 본능이 있기  때문일 거다.

그 교감의 본능이 나의 어렸을 적 마음을 소환시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한다. 우리는 오늘도 마주 보고  손뼉을 치며 우리만의  구호를 외친다.

 "우리는 고래 모자 (母子)!!! "




* 엄마의 그림책

고래에 관한 지식 그림책. 지식 그림책인데 고래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예요.  <안드레아 안티노리>의  다정한 설명에 매료되는 책. 는 이토록 다정한 지식책을 본 적이 없어요. 고래의 교감까지도 상상이 되어 글로 엮게 되는 영감을 주는 지식그림책이라니... 언빌리버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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