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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지령 Apr 17. 2023

귀중한 것보다 소중한 것

선물

어제 도서관에서 빌린 도서 반납 만기일이라 도서관에 갔다. 나는 책 욕심이 많아 다 못 읽을 것 같아도 이 책, 저 책 구경하는 재미에 카트를 끌고 가서 잔뜩 빌려오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 가까이에 작은 도서관이 생겨 여러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다 보니, 반납일자를 일일이 챙기지 못해 연체가 된 상황이었다. 연체가 되면 연체일 수만큼 책을 빌리지 못하는 게 페널티. 오늘은 책을 빌리지 못하겠구나 하며, 고개를 떨군 힘없는 강아지 풀처럼 체념한 채, 반납을 하고 돌아서는데! 내 눈에 운명처럼 들어온 문구.  “4월 세계 책의 날 이벤트! 연체자 연체일 면제 혜택”. 오 예~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한 책들 다시 주어 담고, 아이 책도 빌리러 갔더니 오늘은 “도서 대출 두배로 데이”기 까지~ 나는 아이와 함께 볼 그림책, 내가 볼 그림책을 마구 담았다. 예상을 뒤엎는 좋은 일에 내 얼굴엔 봄날 만개한 꽃처럼 기분 좋은 웃음이 퍼졌다. 선물이라는 단어는 이런 의미로 정의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뜻밖의 기쁨”.

 

호기심에, 집에 와서 “선물”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남에게 어떤 물건 따위를 선사함”이라고 되어있다. 감정은 쏙 빠지고, 딱딱한 사전적 정의네! 선물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감정적으로 따뜻한 색을 입혀줄 이야기를 알고 있다. 오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명작이라고 손꼽는 단편 중 하나다. 가난한 부부, 델라와 짐.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델라와 짐은 상대방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다. 돈이 부족한 델라는 자신의 아름다운 머리칼을 잘라 팔아 남편의 시계에 어울릴 만한 시계줄을 사고, 짐은 자신의 멋진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 장신구를 산다. 우물에서 길어 올린 넘칠 듯 찰랑찰랑한 두레박 마냥, 나는 이 책 내용을 되뇔 때마다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돈은 없고, 선물은 주고 싶고, 델라와 짐은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을 팔아,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데 그 선물이 쓸모가 없게 됐다. 그렇다 한들, 그 선물이 쓸모가 없는 것일까. 귀중한 것은 물질로서 가치가 있지만 소중한 것은 나에게 그 자체로 의미이다. 델라와 짐의 자신의 귀중한 물건과 소중한 당신을 위한 맞바꿈.  “당신은 나에게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해요”라고 의미함으로써 그들의 선물이 가치 있는 것 아니었을까?  나는 상상했다. 델라와 짐은 선물을 열어보고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을 것이라고. 쓸 수 없는 시계줄과 머리 장신구지만 가슴에 고이 품었겠지. 너의 마음이 너무나도 내 마음 같아서. 그 마음을 알아서.


나에게도 델라와 짐과 같은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귀중한 것을 맞바꾸어 건네어 받은 진심 어린 마음. 내가 옷에 관심 많은 사춘기 중학교 시절이었다. 엄마와 동생이랑 백화점 아이쇼핑을 갔다가, 마네킹이 입고 있는 하늘색 점퍼가 너무나 예뻐 보여 엄마에게 예쁘다고 말하면서 입고 싶다고 했다. 입고 싶었던 마음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까지도 정확이 기억나는 가격. 십칠만 원. 그 당시 우리 집은 아빠 혼자 버는 월급으로, 할머니와,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삼 남매가 살았다. 한 달에 정해진 돈으로, 꼬박꼬박 매일 십원단위까지 기재하는 가계부를 쓰며 알뜰살뜰 가정살림을 꾸려가던 엄마에게 십칠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으리라.  6 식구 살림에, 한참 커가는 세 아이의 식비에, 학원비에 빠듯한 경제사정. 알고 있었지만 철이 없어 입고 싶은 마음을 내비치자, 엄마는 너무 비싸 사줄 수 없다고 했다. 우리의 쇼핑은 말 그대로 아이쇼핑이 된 채 집에 왔다. 그 후 며칠이 지나서 엄마와 아빠가 저녁 외출을 하고 돌아온 밤, 엄마 손에 들린 커다란 쇼핑백. 엄마의 손에는 전에 백화점에서 봤던 그 하늘색 점퍼가 들려 있었다. 터덜터덜 힘 빠진 발걸음으로 매장을 지나치며  시무룩해진 딸의 아쉬움을 엄마는 알고 있었던 걸까?  빠듯한 살림을 꾸리는 귀중한 돈을 내고 사 온 딸을 위한 엄마의 진심 어린 마음.


엄마는 그때 왜 그걸 사주려고 결심했던 걸까? 나는 아직도 물어보지 못했다. 다만 그때의 엄마를 생각하면 사주고 싶지만 못 사주어 아팠을 엄마의 마음이 내 영혼에 못처럼 박혀 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했을 엄마의 시간들이 떠올라 내 목울대가 울렁인다. 그 당시 십칠만 원은 생활비였고, 학원비였을 귀중한 돈이었을 텐데. 엄마는 그 돈을 내 점퍼에 써버리고, 나 몰래 허리띠를 졸라맸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를 위해 쉽지 않았을 십칠만 원을 내어 주었던 엄마의 마음이 내가 살아가는 날들에 선물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때로 우리 엄마는 나를 위해  자신의 귀중한 것을 기꺼이 내어줌을 믿게 된  것. 그리하여  나는 존재 자체로 우리 엄마의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산 것.

그 믿음으로, 신입사원 시절, 구겨진 마음도 햇볕에 널어 말린 이불처럼 주름지지 않고, 말끔히 다시 펼 수 있었다. 선물 속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 한없이 겸허해지고 감사해진다. 그 이후로 나는 선물을 할 때 원칙이 생겼다. 선물하는 이에게 뜻밖의 기쁨이 될 것.  물건에 마음을 담을 것.





* 엄마의 그림책

이 이야기는 곰이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되면서  새롭고 멋진 곳으로 떠나는 곰의 이야기예요. 내용으로만 보면 제 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저는  마지막 장면이 서로가 선물을 건네는 처럼 느껴졌어요. 선물은 꼭 물건이 아니어도 되는거니까요. 여러 도시를 다니며  공연을 하지만 곰의  마음속에는 항상 고향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 마음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떠난 곰을 잊지 않고 기다려 온 친구들과 자신을 기다려 온 소중한 친구들을 위해 정성으로 연주하는 곰의 모습이 서로에게 진심 어린 선물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지요.

선물같은 아름다운 한장면이었어요.  결국 선물은 상대방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마음이니까요.


5남매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이 그림책은 김효은 작가님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요. 나의 귀중한 것을 소중한 사람에게 내어줄 줄 아는 마음이 선물이라면 아이들은 케이크의 장식 딸기 하나에도 예쁜 마음을 담아 선물처럼 건네네요. 아이들의 모습에 사랑스러움 퐁퐁~ 엄마미소도 퐁퐁~


선물하면 빼놓을 수 없는 존 버닝햄의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고 돌아왔는데... 아차차! 한 개를 빼먹으셨네요.

지친 순록들은 쉬게 하고 산타 혼자 집을 나섭니다.

너무 가난해서 부모님이 선물을 사줄 수 없는 하비 슬럼펜버거에게 줄 선물. 아주 멀고 먼 롤리 폴리 산꼭대기 오두막집에 사는 하비슬럼펜버거에게  산타할아버지는 무사히 선물을 갖다 줄 수 있을까요? 선물을 기다리는 하비슬럼펜버거의 마음을 헤아려 고단함을 이겨내고 길을 나서는 산타 할아버지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진심이 담긴 선물에 온 우주가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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