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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지령 Apr 21. 2023

삶도 흐르고, 친구도 흐르고

마흔 넘은 여자의 삶에 친구란...

결혼직후 나는 남편의 직장에 따라 경남 진주에서 산 적이 있다. 나는 경기도에서만 30년을 살아왔건만... 주말부부가 싫어  타지생활을 선택한 것이었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부모님으로부터 첫 독립이었기에 신혼생활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다. 결혼하기 전까지의 결혼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동화 속 결말처럼 걱정도, 불화도 없는 소꿉놀이 같은 환상에 가깝다. 그러다 결혼을 하면 환상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어제 같은 오늘 , 오늘 같은 내일처럼 반복되는 현실이 된다.


식탁을  예쁘게  플레이팅 하는 결혼생활의 소꿉놀이가 시시해지고, 신혼의 근사한 식사시간은  어제 먹다 남은 음식으로 끼니 때우기로 바뀐 채, 결혼생활이 현실감각으로 익숙해질 즈음, 나는 지독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지역에서 나는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아처럼 느껴졌다. 경상도 사람들의 어투가 내게는  낯설고, 익숙해지지 않았다. 말투하나가 조금 다를 뿐인데, 국적도 같은  나라에서 나는 그때 왜 그렇게 이방인 같았을까... 깊은 바다밑으로 가라앉은  난파선처럼 나는 침전했다.


지역에 적응 못한 채로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은 지 7개월이 지난 즈음,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있는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우리는 "아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기에 금세 친구가 되었다. 아이의 성별이 같았고 심지어 생일도 같은 날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집을 일주일에 한 번씩 번갈아 오가고  버스 타고 진주 시내를 함께 다니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집에서 같이 음식을 해 먹었다. 그때 나는 아이와 둘 뿐인 것 같은 타지생활의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 흑백의 내 마음이 점차 병아리 같은 밝은 노란색의 기운이 스미는 걸 느꼈다. 그녀를 알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진주에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바다밖의 첫 호흡이었다.

그 후 아이가 3살이 되었을 무렵, 남편의 발령으로 다시 경기도로 오게 되었다.

비록 짧은 인연이 된 친구였지만 나는 그 시절의 그녀가  보여 준 우정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었다.


나는 경기도에서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알게 되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그녀는 나와 아이를 초대해 제주도의 귀한 식재료로 건강하고 훌륭한 음식을 자주 대접해 주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서로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마음을 알아줘, 육아의 무게를 덜 수 있었다. 더 이상 친구는 나이가 조건이 되지 않았다. 그건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지금도 아이 덕분에 친해진 아이친구의 엄마들.. 서로 아이들의 생일을 챙겨주고 음식을 나눠먹고 남편들까지도 친해져 아이친구 가족과 캠핑을 함께 가는 사이가 되었다.


올해로 결혼 11년. 내 나이 43살. 아이 낳아 기르고 남편 따라 살다 보니 이제 옛 친구가 거의 남지 않았다. 마흔 넘은 여자의 삶에 친구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멀어져 가는 존재였다.

깔깔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듯 끊이지 않던 어릴 때 친구들, 시큰한 땀냄새가 달큼한 냄새처럼 느껴질 때까지 고무줄놀이를 함께 했었다. 수줍은 소녀들의 맑은 웃음이 묻어나던  꿈 많던 학창 시절 친구들, 미래와 연애를 함께 고민하고, 젊음을 만끽한 대학시절 친구들... 너희들도 어디선가 다들 잘 살고 있겠지?


강물이 흐르듯, 삶도 흐르고, 친구도 흐른다.

현재의 삶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친구다. 그러니 허전해 말기를... 현재 내 곁의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기를... 옛 친구들이 기억 저편의 어린 나와 함께하듯 현재 가까운 사람들과 내 오늘의 삶을 나눈다면 그것이 우정이 아니면 또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 엄마의 그림책

친구 이야기를 하는 그림책은 너무 많아요. 하지만 언제나 저의 원픽은 이지은 작가의 "친구의 전설"입니다. 성격이 다른 호랑이와 꼬리꽃이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재미있고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어요. 우리가 친구가 되고 멀어지는 시간이 존재한대도 서로를 기억한다면 언제든 우정 이니까요. 다음 해에 다시 피어나는 꼬리꽃처럼 말이지요. 이지은 작가님의 추천대로  애니메이션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OST인 "인생의 회전목마"를 들으며 이 그림책을  보시면 진한 감동으로 느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저에게 묵직한 여운으로 다가왔던 그림책입니다.

한 번쯤 친구사이가 이유 없이 멀어졌던 경험 없으신가요? 저는 중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친해져서 제 의지와 상관없이 단짝 친구와 멀어진 경험이 있습니다. "이유 없이 멀어지는 친구도 있어, 그것 또한  관계 속에서 겪는 과정일 뿐"이라고 저의 어린 시절에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아 참  따스했어요.  저는 끝끝내 그 친구와는 멀어졌지만 그림책 속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흩날리는 벚꽃의 아름다운 그림과 아이의 마음을 그림책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우리 친구 처음 사귈 때, 그 친구랑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경계하는 이중적 마음이 누구나 있을 거예요. 친구지만 가끔은 나도 모르게 비교하고 경쟁도 하지요~그렇지만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 하면서  저도 모르게 경계가 허물어져서  친구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그림책이에요.

처음 관계 맺기에서 우정이 되기까지 우리에게는 어떤 시간과 어떤 마음의 나눔이  필요한 걸까요? 넌지시 저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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