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의 몸
여행을 다녀온 후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휘리릭 넘겨보는데 내모습에 시선이 멈춘다. '언제 저렇게 아줌마가 됐을까?' 나는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에다, 탄수화물 중독자! 임신을 했을때," 배속의 아기가 먹고 싶대~"라는 핑계를 대면서 밤마다 과일과 빵을 먹었다. 그 결과는 뻔했다. 나는 임신 당시 내인생 최고 몸무게를 갱신했다. 20kg의 살이 찐 것이다.
한때, sns에 배경음악이 흐르면서 "전 여친이 그립다"는 문장과 함께 여러장 사진이 시간순으로 뜨는 릴스영상이 화제였다. 전 여친은 다름아닌 결혼전의 와이프. 남편들이 올리는 영상이었다. 결혼전 아내의 모습과, 결혼 하고 아이를 낳은 후 180도 달라진 아내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같은사람이라고?"비포와 애프터가 너무도 달라 나도 모르게 의심하며 몇번을 다시 봤다.
이번 여행이후, 핸드폰 사진첩 속 내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나도 비포와 애프터가 너무 다르지. 웃프다. 웃퍼~' 내 사진을 보다가 릴스 영상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는데, 이상하게 조금 슬펐다. 나도 한때는 멋 내기 좋아하던 아가씨였는데… 옷맵시 때문에 하이힐을 신고, 굶는 다이어트를 하고 머리를 예쁘게 어루만지고 화장을 하던… '그런 시절이 있기나 했었나'꿈을 꾼 것 같다. 지금의 나를 보면 이십 대의 늘씬했던 내 몸을 말하는 것이 마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아이를 낳으면서 아이를 유달리 많이 업어 주었다. 아이를 업었던 이유는 우선 안는 것보다 업으니 시야가 넓어져 활동하기에 편했고, 나에게는 안는 것보다 허리에 무리가 덜 갔으며, 아이가 앞이 아닌 등에 있으니 두 손이 좀 더 자유로웠다. 나는 어디를 가든 아이를 업고 다녔다. 아이가 4~5살때였나? 한번은 걸을 수 있는 애를 업고 다니니 길 가시던 어르신이 "엄마 힘들게 하지말고, 걸어다녀!!" 하며 아이에게 핀잔을 준적도 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같은 아이를 업는것은 나에게 아이를 지키는 일이었다. 아이를 업으면 무게만 더 나갈 뿐 우리는 한 몸이 되었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할때도 업고 쇼핑을 했다. 유모차를 태우면 한 층을 내려가더라도 엘레베이터를 타야하지만 업으면 에스컬레이터를 타도 되니 이동의 편리성에서 어부바를 택한 것이다. 아이를 업어야하니 면 티셔츠에 활동성 편한 바지를 입고, 머리카락이 아이 얼굴에 닿으면 안되니 머리는 한쪽으로 질끈 묶고, 넘어지면 큰일이지. 가장 편한 운동화를 신었다. 어쩐지 내 모양새가 서글프다가도, 곤히 잠든 아이에게 내 등은 안전한 너의세계. 사는동안 아이보다 좋은것이 뭐가 있을까, 너보다 소중한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 나는 또 아무래도 좋았다. 아이는 5살이 될 때까지도 어부바를 퍽이나 좋아하였다.
그래서였을까? 남자아이인 나의 아이와 나 사이의 남다른 애착과 유대는 오랫동안 한 몸이었던 시간들을 지나 온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올해 12살이 된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나를 꼭 껴안으며, 엄마 잘 잤냐며 다정한 아침인사를 건낸다. 때로는 엄지 척 손짓과 함께 ‘엄마 굳, 엄마 그레잇, 엄마 엑설런트’라는 본인이 만든 3단 콤보 구호를 외치며 애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나라고 아이를 낳고 다이어트를 안 해 봤을까? 굶기도 해 보고, 운동도 해보고, 다양한 다이어트를 해봤다. 그 덕에 얻은 건 줄어들었다가 잘 늘어나는 탄력 잃은 고무줄 같은 몸뿐이다. 꾸준한 다이어트가 아니니 살은 빠졌다가도 금세 요요가 찾아왔다. 임신과 출산을 계기로 180도로 완전히 바뀐 내 몸을 바라보면서 이제 더 이상 20대의 몸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해도, 그때의 어부바가 나에게 있어서 결코 겪어 본 적도 없고, 잊을 수 없는 내 몸에 대한 기억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등을 대고 앉으면 업히려고 달려와 작은 손으로 내 목을 두르던 감촉, 내 등에 기댄 채 잠들었던 아이의 체온과 등에서 버둥거렸던 아이의 자그마한 몸짓들, 업고 화장실까지 같이 갔던 한 몸 같은 답답함, 아이의 몸무게만큼이나 내 다리에 전해지던 하중. 그런 고단함 속에서도 내가 믿었던 것은 “내 등은 안전한 너의 세계”라는 것. 그것은 내가 처음 내주었던 무조건적인 사랑의 형태였다.
"몸은 노화를 겪으며 낡는데 그 낡은 몸이 결코 낡을 수 없는 기억을 담고 있다.”< 아무튼, 메모/정혜윤/위고/2020>
우연히 찾은 책의 글귀에서, 나도 모르게 내몸에 새겨졌던 아이의 몸짓들이 되살아났다.
아이도 그때의 ‘안전한 세계’를 기억할까? 나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형태가 아이의 몸속에 자신도 모르게 스미기를 바랐다. 영문도 모른 채 업혔던 그 몸의 기억이 아이에게 다른 사랑의 모양으로 자라기를 바라면서.
* 엄마의 그림책
처음 학교를 가게 된 체스터는 낯선 환경이 불안합니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체스터에게 엄마가 멋진 비밀을 알려줍니다. "학교에 있어도 집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
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답은 이미 표지에도 나와 있어요. 사랑이 담긴 엄마의 손에 대한 기억은 불안도 몰고 갈 만큼의 힘이 있다고 넌지시 이야기해 줍니다. 체스터는 불안을 가라앉히고 마음이 편해졌을까요? 평온한 숲의 아름다운 밤풍경이 체스터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어 집니다.
그 어떤 그림책보다도 사랑을 담고 있는 사랑스러운 그림책. 아기 고릴라는 놀러 나왔다가 온종일 안고 있는 다른 동물 친구들을 보았는데요. 안아달라는 아기 고릴라를 엄마 고릴라가 꼬옥 안아줍니다. 아기 고릴라는 자신이 받은 사랑의 힘으로 다른 친구들을 안아줍니다. 몸에 담긴 사랑의 기억은 사랑을 배우게 하죠. 제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그림과 짧은 글로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아 제게 놀라움을 안겨줬던 그림책, "안아 줘!"
오늘부터 더 열심히 안아주세요~우리 아이들은 몸에 담은 기억으로 사랑을 배워나갈 거예요~^^
* 위 글은 글쓰는 여자들의 매거진 "2W 매거진" 3월호 "나의 몸 이야기"에 실린 제 글을 그림책 소개를 더하여 브런치에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