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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지령 May 02. 2023

달 밝은 날에 달을 바라보며

사랑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연애시절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에 학교 야구장에서 지금의 남편과 봤던 달이 사랑의 단맛에 취해 신비롭게 보였던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고요와 적막이 병풍처럼 둘러 쌓인 학교 야구장에서 캄캄한 밤하늘에 빛을 발하고 있는 달빛이 무대 위 주인공을 비추는 핀라이트처럼

우리만을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 사랑이 특별하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에 취해 환각상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한데, 그날의 달 이후로 사랑의 취기에서 깬 지금까지도 달은 내게 환각상태의 착각이 아닌 환상적인(fantastic) 달로 남아있다.

 

달은 행성이 아닌 지구 주위를 도는 위성. 표면에 많은 분화구가 있고, 대기는 없다. 달은 그저 지구 곁을 맴도는 하나의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적 지식으로만 보면 내 기준에서 달은 매력이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이 거대한 돌덩이를 이토록 사랑하게 된 걸까? 그날의 달의 이미지가 신비롭게 각인된 탓도 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가 아니던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을 비는 표상이 달이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가 미지의 저편에 있던 시절에는 차고, 기우는 달의 모양이 옛사람들에게는 신비함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신의 전유물로 생각 되었을 지도...그래서 달에 소원을 빌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달에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스며 있다. 나는 언젠가부터  밤하늘에 번진 달무리가 간절한 소원들이 넘쳐흐른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달의 아우라는 우리 모두의 간절함 때문에 저리도 밝게 빛나는 것이라고…


제 작년 추석이었다. 남편이 코로나 1차 백신을 맞고, 부작용으로 응급실을 5번이나 갔었다. 남편은 숨쉬기가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간간히 백신부작용으로 사망하는 기사가 나왔으니 나와 아이는 남편의 모습에 극도로 예민해져 두렵고 불안했다. 남편의 부작용 증상 때문에 집에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추석에 친정도, 시댁도 가지 않은 채, 집에 있으니 아이는 불안하기도 하지만 심심한 상황. 친청 엄마는 아이만이라도 보내라고 했다. 친정에 가면 오빠네와 동생네 식구가 와있으니 집에서 날카로워져 있는 엄마 아빠와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이도 가겠다고 해서 아이만 친정에 보냈다. 추석연휴 며칠을 보내고 아이가 집에 오자,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 밥도 잘 먹고 잘 놀았어~근데 어린것이 티는 안내도 아빠 걱정을 꽤 하고 있었나 보드라. 추석날밤에  구름이 많이 껴서 달이 안 보였잖니~근데 창가로 가더니 손 모으고 소원을 빌더라. 그래서 내가 달도 안보이는데  소원비는거야? 그랬더니 고 기특한 것이

"할머니! 눈에 보이지 않는거지, 보름달이 안 뜬 건 아니예요~" 라고 말하더라고.."


아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암흙뒤에 가려진 떠있을 보름달에게 눈을감고, 두손을 모으고 빌었단다.

 “우리 아빠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우리 가족 지켜주세요...

아이는 놀면서도 아빠 걱정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온 세상의 따듯함을 모두 담아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그 후로 남편은 다시 건강해졌다. 달은 그저 소원을 빌어야 할 대상이 필요했던 우리가 만들어낸 표상일 뿐,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달이 아니라 우리의 간절함일지도 모른다. 소원을 들어주는 게 달이 아니라 해도 나는 달이 좋다. 각박한 세상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팩트가 아니라 믿음과 희망일 테니까. 우리의 마음을 간절하게 만드는 진심 어린 순간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어떤 것도 빈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달에 빌고 있는 소원은 사랑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  달 중에서도 보름달에 소원을 비는 이유는 사랑의 모습을 많이 담으려고  “쟁반 같이 둥근” 보름달에 비는 것이리라.

 

2023.02.05(음력 1.15.) 정월 대보름. 하늘이 어두워지고 밤이 찾아오자, 남편과 아이와 달이 잘 보이는 곳으로 걸어 나와 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각자 우리의 소원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소원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사랑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달은 달일 뿐이지만, 우리 모두의 사랑의 마음을 담고 있어서 저리도 밝게 빛나는 것일 테니까.




*  엄마의 그림책

달이 등장하는 그림책은 수없이 많습니다. 달을 좋아하는 저는 좋아하는 달그림책도 많은데요. 고심 끝에 골라봤습니다.  제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호랑나비가 달님에게 소원을 비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원이 꼭 사랑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달님은 소원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호랑나비의 소원을 외면할 수 없어 따뜻한 시선으로 호랑나비의 소원의 대상을 지켜봅니다. 호랑나비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간절함을 소리 내어 빌어보면 누군가가 듣고 그 사랑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리 내어 소원을 빌어 보고 싶어집니다.


저는 글에서 달이 지식적으로만 보면  기준에서는 매력이 없다고 썼지만 이 그림책은 달의 매력을  프로 느끼게 해주는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저도 이 그림책을 통해  달의 매력을 알아 버렸으니까요.^^

달에 앉아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요?

점프를 높이 해서 갈라진 틈을 건널 수 있다면요?

무엇보다도 달에 사는 생명체를 만날지도 모른다면요? 달에 대한 상상력이  무한히 뻗어가는 멋진 그림책입니다.


달에 비는 소원을 이야기했으니, "소원"에 관련된 그림책도 소개해 보겠습니다. 아이는 소원을 빌면서 자신이 비는 소원이  진짜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님을 알았어요. "공부를 잘하게 해 주세요" 아~그건 엄마소원이지.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그건 아빠소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요.  아이는 "소원"을 비는 과정을 통해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갑니다.  아이의 "진짜 내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림책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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