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지령 Aug 15. 2023

가벼움의 미학

그저 좋아서 쓰기

올해 내가 마음먹은 것이 있다면

내 글을  서랍 속 일기장에 히는 글로 놔두지  나누고 공유하는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브런치" 도전.

브런치는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두 번째 도전에서 브런치 작가로 승인받았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동아리 모임도 시작하였다.


누군가에게  비쳐지는 내 모습은  한 단면일 뿐이지만, 내  안에는 여럿의 내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각도를 가진 입체도형이지, 평면도형인 사람은 없다.

동네에서 나는 보름이 엄마, 가족에게는 아내, 며느리, 딸일 뿐이라서 역할로서 내가 존재할 뿐, 내 글을 보여준 적도, 글을 쓴다는 말을 한 적도 없었다.

글쓰기동아리 모임에서 나는 또 다른 내가 되었다.

서로의 글을 진정성 있게 읽고 나누는 대화는 보름이 엄마로서 살아온 삶과는 다른 것이었다.

평면적인 나로 살아오다가, 입체적인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저 쓰려고 애쓰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나에게는  아이가 화제가 아닌, 책이나 글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와 시간 있다는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좋아서 하는 글쓰기인데, 쓰다보니 나를 짓누르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쓸수록 글쓰기가 어려웠고, 하고 싶은 말은 부유하는 먼지처럼  머릿속 허공을 떠다닐 뿐, 글로 표현되지도,  풀어내는 것도 잘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엉킨 실타래처럼

머릿속에 엉켜있는 생각들이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보여주는 글쓰기를 시작하다 보니 잘 쓰고 싶은 욕심이 글쓰기를 어렵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먹었는데 글쓰기가 고통스럽다. 잘 쓰고 싶은데 생각대로 잘 안되니 그렇다.

'어떻게 저렇게 쓰지?'

잘 쓰사람의 글을 보면 마냥 부러웠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렇게 매번 글쓰기에 온 힘을 쏟으면 오래 못하는데...

진부한 방법이지만 초심을 떠올렸다. 그저 쓰는 게 좋아서 썼던 시간들. 쓰는 내가 좋았던 시간들.


"행복해질 필요가 없다고
굳게 믿을 수 있게 된 그날부터
내 마음속에는 행복이 깃들기 시작했다"

앙드레지드, (지상의 양식)
                  
                 - 박웅현, (문장과 순간) 중에서-



마음을 가볍게 비울때 비로소
다시 보이는 본질.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고,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싶다는 무거움을 덜어내고, 그저 쓰는 행위로 내 안의 말을 쏟아낼 때  비로소 내 눈을 가렸던 본질에 다시 눈을 뜬다. 그저 좋아서 썼던것일 뿐. 써서 행복했으니.  

그 본질을 보고나니 내게 글쓰기는 적어도  내 삶을 인정하고, 나를 돌아보고, 나로서 행복한 삶은 살 수있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웅크린 나를 일으켜 안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브런치는 그렇게 써지는대로 써내려간다.




*  엄마의 그림책

이범재 작가님의 그림책들을 저와 아이 모두 좋아했어요.

알에서 나온 애벌레들은 모두가 나비를 꿈꾸지만 작은 애벌레는 나비를 꿈꾸지 않아요.  작은 애벌레는 생각합니다.

"어떻게 모두 꿈이 같을 수 있지?"

어느 날 작은 애벌레는 빨갛게 되어 나타납니다.

풀잎이 아닌, 꽃잎을 먹었거든요. 작은 애벌레는  꽃들을 찾아다니며 먹습니다.

모두가 번데기가 되는 동안 작은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지 못했어요.

작은 애벌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풀잎보다 꽃을 더 좋아하고 하늘보다 숲을 더 사랑한 작은 애벌레는 그저 좋아하는 행위로 행복을 느낍니다.  그런 자신을 사랑합니다.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아서 하는  그 시간만

으로도 행복이 있음을 믿게 합니다.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리는 레이먼.

어느 날 형이 자신의 그림을 비웃자, 레이먼은 의기소침해집니다.

"꽃병을 그렸는데 꽃병처럼 보이지 않아."

 뜻대로 그려지지 않자, 레이먼은 자신의 그림을 구겨버리고, 급기야 그림 그리기를 포기해 버립니다. 이 모습을 본 여동생이 레이먼의 구겨진 그림을 갖고 도망치고, 이에 화가 난  레이먼이 여동생을 쫒다가  놀라운 광경을  맞닥뜨립니다. 여동생의 방, 벽에는 레이먼이 구겨버렸던 그림이 가득 붙여있었거든요. 여동생의 격려 한마디에 레이먼은 느끼는 대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레이먼은 깨달았던 거죠. 그림은 꼭 무언가를 똑같이 따라 그리는 과제가 아니라 내 안의 느낌을 표현하는 즐거운 놀이라는 사실을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그림이 진정한 나만의 그림이 되듯이, 글쓰기도 그렇다고 제게 말을 건넵니다.^^


새미는 제목에도 드러나듯이 지하도에서 혼자 춤추고 노래하는 길거리 가수입니다.  동네 꼬마들과 개들도 새미를 따라다니며 춤을 춥니다.

새미는 서커스단원도 되고 어마어마한 스타디움에서 공연도하고, 부와 인기를 얻은 티브이 가수가 되기도 합니다.

인기는 손으로 움켜쥘수록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은 것일까요? 인기는 한낮의 단잠처럼 달콤하지만 짧았습니다. 재기에 실패한 새미는 부와 인기를 모두 잃고,  혼자 춤추고 노래했던 그 지하도로 돌아갑니다.

그저 노래하기 위해서 말이죠.

지하도로 돌아온 새미가 다시 혼자 노래하고 춤추면서 저에게  건네었던 격려는 다음과 같은 한마디였어요.

" 실로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 속 눈부시게 빛나는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