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지령 Aug 18. 2023

빈둥대는 시간  인정하기

방학

금요일 오후 수업이 끝나면 내 머리는 꽉 차서 터질 것 같다.
숫자들이 뒤엉키고, 온갖 전투와 강들, 거대한 공룡들과 마구 뒤섞인다.
그리고 시 한 편과 노래 세 곡, 구구단까지…
금요일 오후면 내 머릿속에는 남는 자리가 별로 없다.  
                             그림책 <가브리엘> 중에서…


로봇이 아닌 인간이 무언가를 계속
해 나가고 싶다면,  
쉬어야 할 때는 쉬어야 한다.


아이가 방학을 했다.  방학을 하면 세끼에, 간식까지 챙겨줘야 하니 엄마들 사이에서 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이가 방학하면, 엄마는 개학이다.” 그 우스갯소리가 공감이 되어 피식 웃고 말았다. 한동안 나는 아이의 끼니를 챙기느라 바빠질 것이다.


일터로 출근하는 것이 경제노동을 하는 어른의 일이라면, 아이들이 하는 일은 학교에 다니는 것. 그렇다면 방학은 좀 느슨해져도 될 일이다. 방학을 맞이하면서 아이가 원했던 체육 놀이교실을 신청하고, 피아노는 한 달 쉬어 가기로 했다. 빈둥대는 시간을 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는 방학이 수업을 쉬는 기간인 만큼 느슨해지는 시간도 아이의 인생에서는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이 헐렁한 시간을 인정하는 데에는 아이의 미래가 꼭 공부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일 것이다.  “삶은 성적이나 취직 같은 한 두 가지 변수로 좋아지거나 나빠질 만큼 단순하거나 만만하지 않다는 것, 부단한 사건의 이행 과정이지 고정된 문서의 취득 수집이 아니다.”는 은유작가의 말처럼, 삶은 공부로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 또한 살면서 터득하였기 때문이다.

 

방학이 되자, 어른의 눈에는 빈둥대는 것 같아 보여도, 아이의 헐렁한 시간은 그의 기준대로는 바쁘게 돌아갔다. 아이 방학일과는 7시에 시작되었다. 학기 중에는 학교에 늦지 않을 정도의 시간에 깨워줘야 간신히 일어나던 녀석이, 방학 아침에는 7시에 스스로 일어났다. 여기서 포인트는 7시가 아니라 “스스로”에 있다. 무엇이 그를 “스스로” 일어나게 하냐 말이다. 스스로 일어나서 하는 일이란 미디어  보기. 어린 시절 주말 아침에 하는 TV만화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시키는 일에는 불만만 수반하는 "수동" 이 있을 뿐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능동" 이 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미디어를 보는 아이의 시간을 인정해주고 싶었다. 내가 미디어를 보는 아이에게 건넨 말은 이것이었다. “열심히 학기를 보낸 자여. 누려라! “


게임도 많이 했다.  몰입하는 순간의 표정이란 이런걸까? 게임을 하는 아이표정은 집중하느라 입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삐뚤어지기도 하였다. 스스로 음악을 찾아 듣고 그 음악을 나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오케스트라도 듣고, 가요도 들었다. 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으면서는 여름숲에 와있는것 같다며 몇번이고 다시 들었다. 아이는 '주시크'의 음악을 좋아했다. 나에게 들려주기도 했는데, 요즘 스타일  음악으로  트렌디 하면서도 내가 듣기에도 좋았다. 아이는 음악을 자기 방식대로 느끼고 자신의 느낌을 말하고 있었다. 아이는 분명 이 헐렁한 시간을 자기만의 색을 찾아 유영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이 많으니,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게 방학 동안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더위도 잊은 채  나가서 놀았다. 더우면 더운 대로 땀 흘리면 그뿐이었다.  그가  생동하고 있음이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대는 한여름의 매미소리만큼이나 생생하였다.  나는 가끔 아이의 학원가는 길을 함께 배웅해주기도 했는데, 내가 너무 더워 헥헥 대니, 아이는 오히려 나를 격려한다. ”엄마. 여름은 원래 더운 거야. 그늘로 걷자.

잠깐을 걸었는데, 목에서는 땀줄기가 흐르고,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여름은 원래 더운 거니까.


결국 산다는 건, 자신만의 삶의  길을 내어
 “나” 로 향하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완전한 해방감은 될 수 없어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해방감정도는 느끼게  해  주고 싶다. 10살 다운 자연스러움 같은 것.

생각해 보면, 아이는 원래 그런 것이었다. 더워도 더운 줄 모르고,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노는 존재. 놀고 싶어서, 노는 것 앞에 놓인 장애물들은 개의치 않는 무뎃포들.

여름햇살을 누리고, 여름의 열기 속에서 아이답게, 건강하게 방학을 보내면 아이는  좀 더 행복한 아이로 한 뼘 더 자랄 것 같았다.  나는 방학이 능력가짓수 늘리기가 아닌, 아이만의 길을 내는 시간이길 바랐다. 그만의 생각이 크고, 발견이 있는... 정말로 아이는 가치를 발견해가고 있었다.  원래 더운 여름을 견디는 법, 땀을 흘리며 생동하는 기분 같은 것들을.

어쩌면  빈둥대는 시간은 그냥 쉼이 다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꽉 찬 그릇에는 더 이상 어떤 것도 담을 수 없듯이, 그저 쉬는 것만으로, 꽉 찼던 두뇌를 리프레쉬하고, 다시 새 학기를 시작할 수 있는 건강한 에너지는 충전할 것이다.


반면, 아이가 방학을 하면서 내 시간은 조각났다. 2시간씩 이어지던 독서는 끊어지고, 쓰던 글에 집중하지 못했고, 붙어있던 생각들은 쪼개지고 흩어졌다. 엄마들의 개학이니 어찌하랴.

곧 있으면 아이가 개학을 한다. 야호~엄마들의 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세끼에서의 해방감에 한숨 돌려도 될 것이다. 나도 그때는 집안일에도, 밥 하는 일에도 좀 느슨해질 참이다. 때로는 하릴없이 빈둥대기도 하면서.




*  엄마의 그림책

"금요일 오후 수업이 끝나면 내 머리는 꽉 차서 터질 것 같다"는 첫 문장이 요즘  아이들의 속 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했어요.

금요일 방과 후, 가브리엘은 바쁘고 복잡한 도시의 일상을 떠나 시골 할아버지댁으로 떠나는데요.

시골에 들어서자,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지고, 색색의 하늘이 춤을 춥니다.

가브리엘은 머리와 가슴과 두 귀를 활짝 열어 시골을, 자연을 마음껏 호흡합니다.

할아버지와 마당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는 가브리엘 얼굴이 편안해 보여 제 마음도 편안해졌어요.

쉴 때야 비로소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이 속삭이듯 반짝입니다.

그림을 그린 '쥘리에뜨 라 그랑주'의 수채화 그림이 아름다워요. 면지의 밤하늘도 놓치지 마세요.^^


이명애 작가님이 작업하신 글 없는 그림책이에요.

여자는 바다로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한여름에 검은 패딩을 입고, 얼굴은 새파래요.

휴가지에서도 선뜻 휴가를 못 즐기는데요. 길고양이를 따라나선 길에, 여자만의 장소에서 진정한 쉼을 느낀 후에야 여자는 얼굴색이  차츰 돌아오기 사작합니다.

지면을 꽉 채우는 글 없이 보여주는 바다의 노을장면은  독자에게도 휴가를 선물합니다.

아름다운 노을그림에, 저도 넋 놓고 노을멍을 하며  에너지를 다시 얻습니다. ^^

여자의 파란 얼굴과 검은 패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요?

글이 없어 더 예술작품이 되는 그림책  "휴가".

일로 바쁜 우리의 일상에 쉼이 주는 가치를 그림만으로도 멋지고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위대한 도시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