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리와 버드>(2024)
2025년 10월 20일 월요일, 용산 CGV 아이파크몰에서 프란츠 로고포스 감독의 <베일리와 버드>(2024) 프리미엄 영화 시사회가 진행했다. <베일리와 버드>는 12살 소녀 베일리가 아버지 버그와 무관심한 가운데, 집 밖에서 관심과 모험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베일리는 기이하고 자유로운 인물 '버드'를 만나게 되고, 둘은 찰나지만 영원한 비행을 시작하게 되는 영화다.
※본 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씨네픽 시사회 초청으로 참석했습니다.
영화 <베일리와 버드>는 영국 빈민가와 하층 집단의 삶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드러내는 동시에, 영상 문법의 실험을 통해 그 감정을 극대화한다. 영화는 단순히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어른이 되기엔 너무 이르고, 아이로 남기엔 세상이 벅찬 열두 살 '베일리'와 어느 날 갑자기 만난 인물인 버드와 함께 찰나이지만 영원할 비행을 시작한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희망과 개인의 책임감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이 영화가 현실의 무게를 담아내는 방식은 인상적이다. 핸드헬드 촬영 기법을 활용한 투박하고 거침없는 촬영 방식은 영국 빈민층의 삶이 지닌 날것 그대로의 불안정성과 역동성을 효과적으로 배가한다. 화면이 흔들리고 거칠게 움직이는 이 방식은 관객을 베일리의 혼란스러운 일상 속으로 밀어 넣으며 즉각적인 공감을 유도한다.
여기에 더해 베일리의 휴대폰 촬영이 영화 전반에 걸쳐 활용되면서 현대적인 방식과 감성을 더합니다. 이는 베일리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록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이자, 동시에 십 대의 주관적인 시선을 반영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고전적인 다큐멘터리 방식의 촬영과 베일리의 셀프 카메라가 교차하면서, 영화는 현실과 개인의 내면을 오가는 입체적인 질감을 완성한다.
베일리가 살아가는 빈민층의 환경, 도시와 집 주변은 흔히 볼 수 있는 그래피티로 가득 차 있다. 보통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나 저항 정신이 담긴 문구가 즐비해 있지만, 벽 한편에 새겨진 “Don’t you worry”라는 문장은 마치 사회의 위협과 매정함 속에서도 따뜻함과 작은 위로를 건네는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 문구는 베일리와 그녀의 가족이 살아가는 고단한 삶을 잠시나마 감싸 안는 보호막처럼 느껴지며, 영화 전체에 미묘한 희망의 톤을 불어넣는다.
베일리가 들판에서 비박을 한 다음날, 우연히 버드가 등장한다. 그의 존재는 특이하다. 기둥이나 담벼락 위에 서 있어 그녀를 빤히 바라보거나 하늘하늘한 움직임을 보이곤 한다. 그리고, 갑자기 베일리의 삶에 등장하여 함께 순수한 시간을 보내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우리는 살면서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존재, 함께 있어주고픈 존재를 무의식 중에 원할 때가 있다. 버드의 정체는 베일리에게 있어 바로 그러한 무조건적인 존재이자 믿음을 상징한다. 그와 함께하는 짧은 순간들은 베일리가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비는 환경이 된다. 버드는 베일리의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게 해주는 자유와 해방의 메신저인 셈이다.
베일리는 영국의 흔한 성씨일 수 있지만, 본래 단어의 뜻은 흥미롭게도 ‘성채 안의 안뜰’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와 같은 이름의 의미처럼 베일리는 동생들과 어머니를 포함한 자신의 무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호자(Guard)’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버드가 베일리의 자유를 드러내도록 도와주는 존재였다면, 베일리는 그 자유를 누릴 수 없는 현실에서 동생들을 보호하고 삶을 이어가게 하는 책임감 그 자체로 대비된다. 아버지 버그는 어떠한가. 이름 그대로 그의 문신은 지네와 벌레 문신이 그려져 있는 철없는 아버지처럼 다가온다. 징그럽고, 위험해 보일 수 있지만, 벌레라고 다 못된 해충은 아니다. 나를 지켜주는 익충도 존재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위협감이 없어지곤 한다. 아버지 버그가 바로 그러하다. 베일리를 무시하고, 이기적인 태도처럼 보여도 한 번도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 부성애를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다양한 비유적 표현을 곳곳에 연출한다. 버그의 부성애, 버드를 통해 베일리가 꿈꾸는 해방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베일리라는 이름의 무게를 통해 그녀가 스스로 짊어진 가족을 향한 헌신적인 사랑과 보호 본능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베일리와 버드>는 거친 영상미를 통해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동시에, ‘자유’와 ‘수호’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고 성장하는 한 소녀의 초상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2024년 영국에서 개봉했던 <베일리와 버드>는 2025년 10월 29일 한국에서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