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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롬 Jan 18. 2021

방대하고도 아기자기한 모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에 포뇨> 이후로 본 3번째 지브리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어렸을 때 이 영화가 TV로 나와 보려고 했을 때 엄마가 "이런 거 보면 꿈에 악몽으로 나온다"라고 말해 괜스레 무서워서 급하게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이후 시간이 지나서야 보고 이번에 또 봤으니 3번째로 영화를 접한다. 그때에 느꼈던 요괴의 두려움과 내면의 공포는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그저 요괴 가오나시가 귀엽게 느껴지고, 하쿠의 친절함이 멋있다고 생각 든다. 어쩌면 대중탕에서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성장하는 '센'처럼 나도 여러 경험들과 시간의 흐름으로 자연스레 성장해버린 게 아닐까.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틸컷

아기자기함

 영화 속 작은 설정들과  움직임으로 아기자기함을 연출하고 동시에 신스틸러로 만들어버리는 장면들이 더러 있다. 보오와 유바바의 새가 각각 생쥐와 작디작은 새로 변해 이루어지는 둘의 콤비는 귀여움과 깜찍함을 선사한다. 가오나시는 대중탕에서 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난리 치는 장면 이후 제니바를 찾아가기 위한 후반 시퀀스에서 보오와 새랑 함께 독보적인 신스틸러 트리오가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제니바네 집에서 홍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보오와 새는 방아를 돌렸다 쉬었다를 반복하고 가오나시는 센과 제니바의 대화를 무시하며 혼자 몰래 치즈케이크를 다 먹는 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과 차분함을 전달해준다. 그밖에 대중탕의 뒷배경 속 사소한 물품 행렬 디테일, 밤하늘과 바다의 풍경, 캐릭터들의 행동들이 영화에서 아기자기한 연출로 표현한다.


방대함 

아기자기함과 반대로 영화 속 방대함은 터널을 건너간 세상의 세계관이다. 이름을 잊어버리면 원래 있는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설정, 신들을 모시는 대중탕이라는 배경과 요괴, 두꺼비 등이 그들을 맞이하며 운영하는 시스템 등을 표현한 미야자키 감독의 상상력은 가히 엄청나다. 추가적으로 영화가 방대하다고 느낀 이유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자연의 연출이다. 대중탕을 가기 위한 넓은 들판과 작은 시냇가, 대중탕 앞에 놓여 있는 바다와 푸른 하늘은 자연의 편안함을 보여준다. 한편, 사람들의 욕심으로 강이 오염되어 개중탕으로 찾아왔지만, 도리어 오물의 신(神)인 줄 알고 오해받았던 강의 신 등장 장면은 자연의 편안함을 악용한 인간의 잘못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장면이기도 하다.


센과 치히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장 큰 백미는 역시 치히로의 성장 과정이다. 그녀가 대중탕에서 일하며 겪는 여러 사건들이 그녀의 순수한 마음가짐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들은 치히로의 예쁜 마음을 다 같이 느끼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치히로는 이름을 유바바에게 빼앗겨 센이 되어도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고 부모님을 구해내겠다는 신념을 삼아 고난을 딛고,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어쩌면 다들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도 치히로가 갖고 있는 순수함과 이름을 잊지 않겠다와 같은 확고한 신념을 통해 문제를 해쳐나가는 모습을 본받고 싶거나 그러지 못하는 현실의 대리만족이 아닐까. 센이 치히로라는 이름을 다시 찾고 싶어하는 것처럼  누군가도 자신의 잃어버린 추억 혹은 그 무언가를 찾고 싶어하는 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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