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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머리 제이슨 Apr 04. 2022

지극히 평범하지 않음

어떤 치과의사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제대로 된 양치질을 하려면 최대한 작은 칫솔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의사선생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초소형 칫솔을 꺼내어 보였다. 면봉만 한 크기의 칫솔이었다. 인터뷰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의사는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처음부터 이런 걸 쓰라고 하면 너무 가혹하니까... 조금씩 더 작은 칫솔로 갈아타면서 최종적으로 이렇게 작은 걸 써보라고 제안했다. 


인터뷰를 본 후, 지금 쓰고 있는 것보다 좀 더 작은 칫솔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동네 이마트에 들러 장을 보는 날이었다. 하지만 칫솔 코너에 들어서자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말하자면, 지극히 평범한 칫솔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조금 작고 단단하고 심플하며 저렴한 칫솔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미세모, 더블액션 트위스트모, 초극세모, 2중모, 3중모... 칫솔 코너에 서로 다른 디자인의 칫솔만 50종류는 넘게 걸려 있었다. 


나는 완전히 질려버렸다. 모든 선택지를 둘러봐도 내가 찾는 지극히 평범한 칫솔은 없었다. 90년대 양아치 고딩들이 젤을 발라 세운 헤어스타일처럼 뻣뻣하고 단조로운 칫솔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가늘고 부드럽거나, 희한한 실리콘 돌기가 붙어있거나 아무튼 필살기가 붙어 있는 칫솔들 뿐이었다. 


무한 경쟁 시대에 칫솔 같은 걸 팔아보려니 어떻게든 차별화를 둬야 한다는 마음은 잘 알겠다. 하지만 이래서야 뭐,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희소한 것이 되어버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자인의 역할이자, 디자인의 책임이자, 디자인의 망령이다. 평범한 디자인은 아무도 찾지 않기 때문에, 평범한 디자인은 희소하다. 


.


요즘은 거의 옷을 사지 않지만, 옷에 관심이 많을 때도 그런 고민에 빠지곤 했다. 한 번은 재킷을 사기 위해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가장 평범한 디자인의 재킷을 사고 싶었다. 적당한 색의, 적당한 핏의, 장식 같은 건 없는. 로고도 없고 포인트도 없는 심플한 재킷. 그게 필요했다. 


하지만 모든 가게를 돌아다녀도 그런 재킷은 없었다. 팔꿈치에 이상한 패치가 달려있거나, 목덜미에 이상한 금속 장식이 있는 식이었다. 아니면 가슴팍에 지나치게 큰 로고가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아니면 이유 없이 큰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내가 원한 건 그저 아무것도 없는 심플한 재킷이었는데.


40분 정도를 돌아다니다 드디어 그런 재킷을 찾게 되었다. 짙은 회색에 장식은 없고, 근사한 핏을 가지고 있었다. 살짝 걸쳐보니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태그를 뒤집어 가격을 확인해 보았다. 가격은 1,200만 원이었다... 밖으로 나가 브랜드를 확인하니 질 샌더(Jil Sander)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음을 위해 1,200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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