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의 힘

나를 버티게 했던 원동력

by 윤비
아마도 찰지게 회사 욕을 하는 것을 들었음이 틀림없다.


사장은 한 달에 한번 수십 명의 직원들을 회의실에 몰아놓고 자유로운 질의응답을 하며 토론을 하자고 했지만 U자형 테이블의 정 중앙에 앉아 직원 하나하나를 지목하며 토론하기를 시킴으로써 회의는 청문회가 되었다. 내 눈에 그는 토론이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그런 그가 토론이라는 방식으로 30년간 이어져온 수직적인 회사 문화를 바꾸고자 했다는 것이 놀라울 다름이었다.


각 부서는 이런 청문회 시간을 줄이고자 아무도 듣지 않을 수 십장의 자료를 만들어와 발표를 했고 매번 그 쓸데없는 자료를 만들고 발표해야 하는 나는 압박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사장은 결론도 없고 성과도 없는 5시간의 시간 동안 같은 안건에 대한 정보를 다 같이 공유했다는 것에만 큰 만족을 가지는 것 같았다. 분석만 하고 실행은 되지 않는 삽질의 시간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는데 코로나가 터짐으로써 이 회의는 휴정 상태에 들어갔다.


쓸데없는 회의와 자료를 줄여 일의 효율을 높이고 실행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시대 아니던가 그걸 사장만 모르는 것 같다. 사장에게 이 무용한 회의에 대한 직원들의 생각을 전달하지는 못할망정 쓸데없는 자료를 만들게 한 부서장들의 태도도 화가 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회의 중 사장에게 회장의 전화가 오면 그는 마치 회장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온몸을 조아리며 전화통화를 했고(칠순을 앞에 두고 있다) 전무는 사장에게 이사는 전무에게 부장은 이사에게 그 조아림이 대물림되었다. 이런 문화는 사람이 전부 바뀌지 않는 이상 바뀌기 어려운 것이고 이곳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래 다닌 부서장 때문에 젊은 직원들이 의견을 제대로 내지 못한다 더니만 사장 본인은 가끔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부서장들에게 불 같은 화를 냈다. 회사는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체 점차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고 코로나로 직격타를 맞고 있는 요즘 그는 변화를 외치고 있는데 그래 변화 좋다 이거다 하지만 그는 토론을 모르는 것처럼 변화도 모르며 자신은 절대 변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는 듯하다.


변화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니 당연히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 목표마저 명확하지 않고 수십 가지로 설정해놔서 업무 방향성 없이 전 부서가 우왕좌왕이다. 쓸데없는 업무는 더 많이 생겼고 회사에 대한 신뢰도는 더 떨어졌다.


회사생활 17년 만에 단축근무를 하며 월급이 삭감되었다. 회사는 그래 봤자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라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직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선택이라 했다. 그냥 ‘회사가 어려워 다 같이 고통분담을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했으니 양해해 주길 바란다’라고 말할 순 없었을까. 게다가 첫 번째 단축근무를 시작한 후 사장은 직원들이 퇴근한 빈 사무실을 보며 ‘허무하다’며 또 회의를 소집했으며 단축근무를 하라고 진짜 다들 단축근무를 시행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결국 차, 부장급 이상은 자. 발. 적.으로 정상근무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회사는 각종 갑질과 업무태만으로 거래처와 회사에 명백한 피해를 준 사람을 감사 팀에 투서까지 들어갔으나 그 정도의 일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부당하다고 결론지으며 스스로 퇴사를 결정한 사람을 굳이 붙잡아 다른 부서로 발령 냈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리를 저질러야 해고당하는 것일까 회사는 여태껏 성실하게 일해서 성과를 낸 직원들에게 보상 한번 준 적은 없었고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는 직원들과 월급 스틸러들은 해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사장의 지시로 몇 명의 직원들이 지난 광화문 집회에 다녀와서 버젓이 출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실로 오랜만에 살의를 느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회사에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회사는 항상 그 익숙함을 건너뛴 새로운 경악을 선사해 준다. 마치 하루라도 퇴사 생각을 안 하는 날이 없기를 바라는 것처럼


회사 생활을 하며 나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온갖 부당함을 겪는 일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너무 빈번해서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루라도 회사와 관련된 욕을 하지 않으면 체증이 생겼고 누구에게라도 뱉어내야만 내가 살 것 같았다. 하지만 한바탕 욕을 쏟아낸 뒤엔 항상 조잘거린 내 주둥이를 항상 원망하여 ‘그래 저 사람들처럼 되지는 말자’라고 번듯하게 포장했는데 이건 꽤나 괜찮은 짓이었다. 험담을 까고 나서 내게 돌아온 독을 다시 배출하는 과정이라고 번듯하게 포장하고 싶지만 그래 이건 자기 합리화가 확실하다.


나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생각보다 무례한 사람은 넘치고 넘쳤다. 특히 농담을 가장한 무례함이 빈번했는데 보통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례함이 솔직함이라 생각하거나 혹은 굉장히 유머러스하다고 여긴다는 거다. 몇몇은 진심으로 무례한 짓임을 모를 수도 있으나 사실 대다수는 자신이 무례한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은 무례함을 가장한 농담으로 상대방에게 적의를 표현한다. 그리고 불쾌감을 드러내는 상대방을 두고 농담도 구분하지 못하는 예민한 사람 취급하는 게 그들의 정형적인 레퍼토리다.


다음은 내가 직접 보고 겪은 사례이며 모두 한 사람이 저지른 일이다.


거래처의 방문이 있을 경우 의례적으로 담당자가 음료를 준비하는데 그걸 본 한 부장은 나의 동기를 가리키며 ‘늙은 레지가 타는 거라 맛이 있을지 모르겠네 호호호’라는 믿을 수 없는 말했고(레지:일본어 다방 따위에서 손님을 접대하며 차를 나르는 여자) 미혼인 후배의 가슴 언저리에 물기가 뭍은 것을 보고 ‘젖 나온 줄 알았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본인 기분이 나쁘면(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사받기를 거부하고 책상 위의 물건을 함부로 집어던진다거나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혹시 나도 농담이랍시고 남을 불쾌하게 하진 않았는지 기분이 태도가 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 보게 됐다. 그리고 나 역시 저 정도의 무례함은 아니지만 기분이 태도가 되었던 적이 많았다는 걸 알았고 그럴 때마다 주문을 건다 ‘괜찮다 괜찮다 저 사람 입장에선 저럴 수 있다.’를 무한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상대방의 입장이 이해가 될 때도 생기게 되더라는 거다. 비록 30% 정도의 확률이지만


살면서 남 욕하지 말라는 격언을 수 없이 들어왔지만 난 그때마다 너무 이상적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럼 욕먹을 만한 사람 욕할 때마다 내가 죄악감을 느껴야만 하나?


나는 욕할 만할 사람(물론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을 욕함으로써 버티기를 버틸 수 있었다.(게다가 어휘능력도 좋아졌음) 물론 본보기로 따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극히 드물었고 대신 앞서 말한 대로 절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행태들은 실제로 도움이 됐다.


이것은 어쩌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싫은 일을 덜 하는 삶이 목표인 내게 맞는 솔루션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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