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네네 당연히 저도 당하고 살았습니다.

by 윤비

초등학교 때 주말마다 불교학교를 다녔었는데, 그때 첨으로 성희롱이라는 걸 당했었다. 그 가해자는 방문객도 신자도 아닌 스님이었는데 어린 맘에도 ‘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땡중이었을 그(아니 그 새끼)는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자기 손가락 하나를 내 앞니에 걸릴 정도로 집어놓고 ‘이것이 고기 맛이다’라고 말했었다. 내가 고기 맛을 모를 리도 없었고 고기 맛을 묻지도 않았는데 말이다.(심지어 그건 고기 맛도 아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뭐야 더럽게! 눈빛은 왜 저래?’ 씩씩거리다,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이 기분이 길에서 자기 고추 내놓고 애잔하게 쳐다보는 아저씨를 볼 때와 비슷한 기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명백한 성희롱이었다.


내가 조금 더 컸을 무렵엔 집 근처 골목길에 나보다 3~4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애들이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틈을 만들어 놓고 옹기종기 서 있었는데 내가 그곳을 지나갈 때 그 애들은 내 가슴이 그들의 몸에 닿도록 몸을 밀착시켰다. 그 애들은 눈빛을 교환하며 키득거렸다.


여자로 태어났다면 당연하게도(?) 인지할 수 조차 없는 수많은 성희롱을 겪었을 것이다. 나는 회사에 취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성희롱의 역사가 시작된 것 같다.


첫 면접 때 회장의 개인 골프연습장에 갔던 경험을 이야기 한 바 있다. 사실 이것이 회장과의 첫 만남은 아니었다. 회장은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나를 보고 ‘자넨 누군가?’라고 불러 세워 한참을 뜯어본 바 있다. 정직원이 된 뒤로는 내가 어디에 있든 수많은 사람들 중 나를 발견해냈고 그때마다 반드시 내 외모를 칭찬했다. 심지어 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순간에도 그 칭찬은 멈추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다가 일제히 나를 쳐다봤었다.


회장님이 윤 비리를 좋아한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회장이 참석하는 자리에 나를 앞장 세우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외부 관계자에게 디자인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나, 보고 자리에서도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게 했다. 그때마다 그는 냉랭한 모습으로 서있는 내게


‘자네는 외모 칭찬하는데 전혀 기쁜 표정이 아니구먼?’

‘참 도도하네 허허 근데 나는 말이야 고양잇과보다는 강아지과 사람이 좋네만?’

‘고양이는 주인도 못 알아보고 손톱을 세우고 말이야, 개는 충성스럽고 주인을 잘 섬긴단 말이지’


이 사람은 나를 고양이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 개 같은 소리를 지껄여대는 동안에 사람들은 나더러 웃으라는 신호를 보내거나 혹은 회장님의 유머감각을 치켜세웠다.


회사 사장을 비롯한 모든 임원들이 굽신 거리는 그 자리에서 ‘그런 말씀이 성희롱인 건 알고 계시느냐? 불쾌하니 그만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의 말은 썩 유쾌하지 않으니 난 웃지 않겠다 라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회장에게 보고하는 자리는 명목상 1년에 2번 하는 발주 보고였으나 사실 그의 인생 경험담을 듣는 것이 주목적이었는데, 그 인생 경험담은 다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 나는 돈이 많다.

2. 나는 천재다.

3. 나는 나이는 많지만 잘생겼고 힘이 세다.


합기도 3급인 그는 75년 동안 약 9,900명의 사람들과 대적하여 단 한 번도,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싸움에서 패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50세가 넘은 배 부장을 단상 위로 불러서 자신을 주먹으로 치면 막아보겠다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봐도 힘 없이 쭈욱 내려 뻗는 배 부장의 주먹을 검지 하나로 툭 치니 배 부장의 팔과 어깨가 휙 돌아간다. 한껏 신난 그는 돌아 간 부장의 손목을 잡아채서 등 뒤로 꺾어 보이며 승리의 미소를 보인다. 그 뒤로 꽤 여러 번 얍얍! 하며 엉거주춤한 합기도 동작을 시현했다.


매번 ‘여기에 처녀가 몇 명 있느냐’고 물었고(결혼 안 한 사람이 몇이냐 묻지 않고 꼭 ‘처녀’라는 표현을 썼다) 그때부터 처녀에 대한 칭송이 시작되었는데 그들을 꽃에 비유하며 꽃 중에 으뜸은 하얀 꽃이며 동남아인이나 흑인(물론 회장은 흑인 대신 깜둥이란 표현을 쎴다)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에 열변을 토했다. 실화다. 나는 이런 연설을 일 년에 2번씩 꼬박꼬박 듣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내가 다른 임원에게 보고를 할 때도 다른 사람들보다 수월하게 보고를 마치면 누군가는 그랬다.


‘너를 좋아해서 탈없이 넘어간 거야’

‘네가 예뻐서 그래’


그들이 뱉은 말 한마디가 나의 노력, 능력, 성과까지 모두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과연 몰랐을까 이쯤 되면 내가 굉장한 미녀인 줄 알겠다.(아쉽지만 아니다) 이젠 같은 동료마저 칭찬이랍시고 내 외모 평가를 하기 시작했고, 불쾌하니 그만하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줬으나 그 입을 좀처럼 닥칠 생각을 하지 않아 상사에게 보고했다.


이천똥이 업체가 있는 자리건, 회의 자리 건 시도 때도 없이 내 외모 평가를 하고 다녀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니 조치를 취해달라고 말이다. 그 조치라는 것은 징계도 아니고 ‘너 이 새끼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들리게 하면 혼날 줄 알아’라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그 뒤로 더 이상 내 외모를 언급하는 일은 없었다.


그 수많은 성희롱을 당하면서도 나는 딱 한번 내 목소리를 냈다. 그것도 상대방이 나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같은 직위의 동료였을 때만 말이다. 성희롱이 명백하지만 상대방이 직위가 높거나 주위 사람들이 별거 아닌 일로 분위기를 몰아가면 당사자는 더욱더 그 부당함을 말하기 힘들어진다. 그 부당함을 말함으로써 얻게 될 부당함 들이 발목을 잡는다.


나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상황을 개선시키기 힘들다. 이것은 가해자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되풀이되는데 보통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피해자의 대처방법이나 태도를 비난하는 것은 상황을 개선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회장의 성희롱으로부터는 벗어난 것 같다. 20대에는 일부러 화장도 안 하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구석에 있어도 날 찾아내던 그가 시간이 흘러 내가 20대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외모가 되자 점차 다른 ‘처녀’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회장이 변했기 때문에 내 상황도 변하게 됐다.


그러나 이것을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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