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제주 4일 차에 접어서야 9박 10일의 일정이라면 동쪽과 서쪽에 숙소를 각각 잡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던 사람이 나다. 이렇게 된 이상 제주 동쪽을 섭렵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우도로 들어가는 것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할머니는 60세는 훌쩍 넘겼을 딸이 바닷바람에 감기라도 걸릴까 머플러를 손수 감아준다. 아마도 나는 평생 그 마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내 시선의 왼쪽편에 오밀조밀 앉아있는 중년 여성들은 건들이면 팡 터지는 봉숭아 씨앗 주머니 같다. 샛노란 맨투맨 티셔츠를 맞춰 입은 그녀들의 웃음소리는 10분 내내 그치지 않았다. 그녀들의 웃음소리에 내 입꼬리도 함께 올라간다.
우도 내 이동수단을 예약하고 가면 할인금액으로 이용할 수가 있는데 나는 전날까지도 우도를 진짜 갈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자전거를 골랐다. 대부분 전기 자전거를 타는데도 나는 호기롭게 일반 자전거를 택했다. 사실 겁쟁이라 그랬다. 자전거를 겨우 타는 내가 처음 접하는 전기 자전거를 탔다가 엄청난 사고를 낼 것 같아서 말이다. 미리 말하건데, 여러분 그냥 전기 자전거를 타셔라. 우도는 은근 오르막이 많다.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것은 우스깡스러운 전기차에 구겨 앉아 이동하는 것보다 멋진 일이었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중간중간 세워진 쉼터에 훌러덩 드러누웠다. 나는 우도를 가겠다고 결심한 나와 자전거를 타기로 한 나를 칭찬해주었다.
뭐 그리 대단할 일인가 싶지만 내가, 자전거를 스스로, 그것도 혼자서 타기로 결심한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이렇게 시시한 인간이다. 어쩌다 우도에 오게 된 걸까. 정자에 누워있는 나를 어리둥절 쳐다보는 동네 아저씨를 바라보며 물었다. 점점 멀어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립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전거를 타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우목동포구->망루등대->하고수동해수욕장->비양도->검멀레해변->우도봉 탐방길 초입까지 갔다가 언덕길에 좌절하고는 다시 하우목동포구->천진항 ->서빈백사 해수욕장 ->훈데르트힐즈리조트로 갔다. 쉽게 말해 우도 한 바퀴를 돌았고 6시간이 걸렸으며 자전거를 대략 5시간은 탔다는 말이다.
낯선 동네에 오면 습관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살 수 있을까? 나는 우도가 좋았지만 우도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생각만으로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우도는 섬이라는 것이 실감 나는 곳이었다. 섬사람들은 그 고립감과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내는 것일까.
어설프게 자전거를 타는 나를 걱정해 주던 눈길, 땅콩 아이스크림을 조심스럽게 만들고 친절하게 건네주던 눈길, 지쳐서 공허한 눈길로 바다를 바라보던 나를 알아봐 주던 눈길. 점점 멀어지고 싶어서 우도에 왔는데 나는 정작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어쩌면 나는 나를 좀 봐달라고 나를 좀 위로해 달라고 우도에 왔나.
제주로 돌아가는 배 위에 서서 발아래 펼쳐진 바다를 보았다. 언제나 바다를 보며 살지만 배를 타는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출렁거리는 바다는 작은 티스푼으로 일정하게 퍼먹고 남긴 투명한 젤리 같았다. 풍덩 뛰어들어도 심해로 가라앉지 않고 표면에서 튕기지 않을까.
다시 제주로 들어온 나는 그제야 첫 끼를 먹는다. 혼자 밥 먹는 일은 익숙하지만 저녁 시간 4인용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밥 먹는 일은 언제나 쫓기는 기분이 든다. 고등어 조림을 허겁지겁 먹고 자리를 일어났다.
우도보다 더 고립된 숙소에 도착했을 때 오늘 나는 위로를 받고 싶은 날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따끔한 충고를 받았다. 서러워서 울고 말았다. 그 충고의 본심을 모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매번 위로만 바라는 아이같은 내가 멍청하기도 했지만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