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 -> 만장굴 -> 함덕 해변
사려니 숲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숙소와 멀고 혼자 걷기에는 무서운 숲이라는 걸 알아서 비자림을 갔다. 여행 중 처음으로 식사할 곳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비자림 근처에 있는 ‘도어스 오픈’. 내가 찾은 곳이라 그런지 역시 사람 한 명이 없다. 이래서 먹고살 수 있을 것인가 싶은데, 누가 누굴 걱정하나. 지금. 나는 샌드위치와 필터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샌드위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것은 여행 중 먹었던 음식 중 가장 정성이 많이 들어간 음식같이 느껴졌다.
샌드위치는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어 각각의 맛을 느꼈지만, 재료의 종류가 많아서 어떤 맛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겠는 맛이었다. 서로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욕심이 과한 맛이다. 샌드위치야말로 단순한 식자재로 최고의 맛을 낼 수가 있는데. 샌드위치 맛까지 기가 막히길 바랬다면 그 또한 욕심이겠지.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가 흘러나오는 차분하고 조용한 식당. 바람에 물결치는 푸른 밭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정작 비자나무보다 단풍나무를 보면 환호성을 질렀다. 내 눈엔 비자나무만 보였다. 비자나무는 억척스러워 보였다. 깃털 같은 나뭇잎들은 언뜻 보면 억척스러운 몸뚱이에 비해 보들보들해 보였지만 사실 그들 또한 억척스러웠다. 바글바글했다.
나는 억척스러운 비자나무를 보며 경외심을 느끼기보단 억척스러워지기 싫었다. 애쓰기가 싫었다. 그냥 막살고 싶었다. 매 순간 하고 싶은 것을 쫓아 그냥 되는대로 살고 싶어졌다.
막살고 싶은 여자는 동쪽을 섭렵하고 싶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만장굴을 찾았다. 이곳은 학생들의 단체 여행지 같아 보였지만 어두컴컴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 맘에 들었다. 어두컴컴한 곳을 홀로 걸었다. 남자와 있는 여자들은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기대어 걸었고 남자들은 기꺼이 손을 내밀며 기대에 부흥했다. 나는 넘어져서 골반이 부서지지는 말아야지 다짐하며 걸었다.
만장굴에 마을이 형성되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예쁘고 멋있는 외모는 아무 의미 없지 않을까. 그곳에선 체취가 향기로운 인간이 최고 인기인이 되지 않을까. 이딴 생각을 했다. 여기서도 사랑받는 것에 연연하다니.
내 체취는 성인이 되어서도 아기 젖 비린내가 나서 부모님은 나를 ‘삐리’라고 불렀었다. 내가 지나갈 때 훅 끼치는 그 특유의 체취 때문에 나를 알아보는 이도 있었다. 그는 나의 체취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내게서 악취가 나는 것처럼 나를 대한다. 감정은 그런 것이다.
만장굴을 돌아 나오는 길. 지쳐 보이는 외국인들이 이 굴을 끝까지 가도 지금과 같은 풍경인지를 묻는다. 물론 같은 풍경이라는 건 없다. 하지만 그에게 실망감을 주기 싫어서 풍경이 똑같으니 네가 더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외국인들은 다소 기쁜 얼굴을 하고 굴을 빠져나간다.
함덕 해변을 찾았다. 차 안에서 전복 김밥을 우물우물 씹어 삼키며 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엄마와 언니와 함께 서우봉을 올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이렇게 혼자 차 안에서 전복 김밥을 먹게 될 것을 몰랐다. 인생이 이렇다.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괜찮은 건지도 모른다. 나쁘지 않다. 요즘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나쁘지 않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