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곧대로 들을 자유
나는 좀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 반 전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단체기합을 받고 있을 때였다. 선생이 우리를 향해 고개 들라고 냅다 소리를 질러서 당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나 말고는 다들 눈치 보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것이다.
언어영역만은 매번 만점의 성적을 유지했는데도 그 선생은 유독 나를 싫어했었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서 있는 내가 기가 막혔던지 그녀는 고개 들라고 너 혼자 뻔뻔하게 고개를 드냐며 소리를 빽 질러댔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난 고개를 들라고 해서 든 것뿐인데!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을 보며 우월함을 느끼고 싶었는데 눈치도 없는 애가 멀뚱히 자기를 바라봐서 당황스러웠을까?
당시 나는 단체기합을 받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어서 반성할 것이 없었고 눈치 볼 필요성도 못 느꼈다. 평소 감정 변화가 심한 그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게 못 견디게 싫었고 그것이 내 얼굴에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아마도 그녀는 내가 싫었을 거다.
다들 그녀의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서 벌벌 떨면서 수업을 들었지만 난 꿋꿋하게 내 페이스를 유지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이 괜찮냐고 위로를 할 정도로 매번 구박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게 기어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당차거나 반항적인 기질의 학생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반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다만 돌려 말하는 화법을 너무나 싫어한다. 그녀가 만약에 온갖 치사한 방법으로 나를 구박하는 대신 싫은 점을 정확하게 말해줬다면 나는 어쩌면 비위에 거슬리지 않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매번 느낀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의 피로감을 확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해도 본인이 이상하게 비칠 수 있겠다고 생각하거나, 납득되지 않는 일들을 그럴듯하게 말하고 싶을 때, 혹은 본인의 진짜 목적을 자신의 진짜 목적이 아닌 척하며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봐 주길 바랄 때 돌려 말한다.
경청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라 돌려 말하는 자를 만날 때면 내 시간과 에너지가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그럴 경우 나는 ‘그래서 원하는 게 정확히 뭔가요?’라고 묻는다. 물론 이 질문은 아무에게나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경우라면 언제든지 되묻는다.
그것이 내 에너지와 시간을 아끼며 일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니 못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