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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Feb 23. 2023

우리는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결혼 생활도 그렇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이 따라와 주지 않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절대 안 변해.’ 모든 것이 바뀌는데 왜 그 사람만 변하지 않겠는가. 상대방은 변하고 있다. 다만 내가 원하는 변화가 아닐 뿐. 그렇게 점차 변함없기를 바랐던 사람이 제발 변하길 바라는 사람이 되어간다.   

   

어김없이 스타벅스에 앉아 사람들의 대화를 들었다. 할머니들은 남편들이 ‘한국기행’을 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끌끌 찼다. ‘한국기행’이 최애 프로그램인 나로서는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대부분의 부부들은 본인 기준에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상대방을 비난하며 부부생활을 이어나갈 것이다. 실제로 부모님을 24시간 취재하듯 지켜본 결과 그들은 정말 별것 아닌 일에도 서로를 비난했다. 어찌나 일상적인 일인지 본인들은 그것이 ‘비난’ 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게 몇십 년 동안 같이 살 수 있었던 비결일지도.      


그런 부부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평온하게 살아가는 부부들도 있겠지. 어쨌든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들은 일찌감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같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결혼 생활도 그렇다.      


상대방이 바뀌길 바랐던 나의 어리석음을 알지만, 그것을 써먹고 싶지 않다. 같이 살아보기 위해 애쓰기도 싫고, 헤어지기 위해 노력하기도 싫은, 그러니까 그와 관련된 일이라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은 상태다. 나는 인정이 아니라 포기를 했다.     


서로의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다. 이것이 최악의 결혼 생활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최악의 시나리오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우리는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일 또한 대부분이다.   

 

같은 공간에서 말 한마디 없이 누군가와 지낸 경험이 있다면 이것이 얼마나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나는 반년 넘게 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람이 아니라 해골이 되어서는 여러 사람 놀라게 했었지만, 지금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    

  

몇 년 전의 똑같은 상황일 때는 온종일 가슴이 미친 듯이 뛰어서 잘 수가 없었다. 그때와 다른 건 그저 내 마음, 그것 하나뿐이다. 그렇지만 적응하면 안 될 것 같은 지금의 삶에 적응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을 여전히 잘 모르겠다. 현재의 나의 상태를 믿어야 할지 내 생각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생각은 내가 아닌 걸 안다. 나는 지금의 내 상태를 더 믿는다. 내 생각이 뭐라고 하든 내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면 지금은 이게 내가 살 길이다.     


거울을 보니 해골 같았던 나는 다시 예뻐졌다. 아직 젊고 심지어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도 하였다. 편의점 아줌마도 내게 생년월일을 물어보지 않았던가?!(계속 기뻐하고 있다) 불과 며칠 전에 터질 것 같은 목련꽃 봉오리를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어제도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찔찔 울었지만, 그래도 나는 알아차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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