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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Feb 20. 2023

아줌마가 미안해

역시 다운점퍼도 클래식이지!

나의 코트 취향은 좀 까다롭다. 여성스러운 디테일은 안된다. 그러니까 둥근 깃이나 높은 허리선에 달린 비죠 같은 것들 말이다. 몸의 라인을 강조하는 절개선이 있어도 안되고 오버핏은 이제는 입으면 묘하게 나이 들어 보여서 꺼린다. 얇은 이너용 다운재킷을 껴입어도 될 정도의 핏이 좋다.

    

저렴해도 나일론 함량이 높은 소재 역시 사양이다. 형태가 잡히지 않는 부드럽거나 얇은 소재가 아니라 적당히 볼륨감 있으면서 딱딱해서 입었을 때 딱 떨어지는 핏이 나오는 울 함량이 최소 80~90%는 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코트. 휴. 그러니까 코트는 성별이나 연령대를 가늠할 수 없는 클래식 한 것을 선호한다.    

  

맘에 드는 코트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워서 취향에 맞는 코트를 발견하면 색상별로 사기도 했다. 그렇게 얼어 죽어도 코트만을 고집했던 외길 인생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백수에겐 딱 떨어지는 코트를 입고 외출할 일이 별로 없다. 가볍고 뜨뜻한 다운점퍼 하나 사서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온라인 광클과 백화점 오픈런까지 시도했음에도 구매하지 못했던 다운점퍼를 23년도 버전이 출시되자마자 구매를 했더랬다.     


앞가슴, 등판, 소매까지 로고가 딱 박힌 번쩍이는 다운점퍼를 입고 외출하던 날. 나는 다시 집안으로 뛰쳐 들어가고 싶었다. 로고가 드러난 옷을 입는 것은 생각보다 부끄러웠다. 로고는 1개여도 충분한데 말이다. 자수로고를 2개를 줄이면 원자재 가격이 낮춰지는데 이렇게 3개를 때려 박은 건, 역시 소비자가 원해서 그런가.     


한때 의류업계 종사자로서 기성복의 디테일은 결국 판매율에 따라 정해져 있다. 분명 로고 1개짜리 보다 3개짜리의 디자인이 판매율이 높았음이 틀림없다는 말인데, 역시 나는 안 팔리는 취향을 가진 사람인가 보다. 어쩜 인간이 이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지?     

같은 옷을 입은 학생들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들었다. 애들아. 아줌마가 미안해..  

    

부끄러워하는 것치곤, 나는 꽤나 그 옷을 잘 입고 다닌다. 엊그제도 그 번쩍이는 것을 입고 도서관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 4캔을 샀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나를 유심히 보고는 몇 년생이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굉장히 기뻤지만 마스크 안에 승천하는 광대를 숨기고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82년 생이요..’ 아주머니는 황당한 듯 어머나 웃는다. ‘요즘 마스크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아니 그 말은 하지 말지. 아무튼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다운점퍼도 클래식이지. 아줌마는 계속 이 옷을 입을 것 같다. 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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